아직 내가 경찰업무에 적응을 못마쳤을 때, 그래도 그날은 조금 평화롭다 싶었다. 모두 조용히 창밖의 봄 햇살의 눈부심을 바라보며 각자 자기들의 일을 하던 중이었다. 그 조용한 분위기가 공기마저 무겁게 만드는 것 같은 정말 그런날이었다. 그 찰나에 나는 약간의 무료함을 느껴 커피 한잔을 마시러 정수기 앞으로 걸어가는 순간 이었다.
"에에에에용에용!!"
사이렌 소리까지도 그 무거운 공기를 깨지는 못했다. 그러나 상황근무자의 한마디에 상황은 반전이 되었다.
"XX빌딩 앞! 흉기 난동 및 자살소동입니다! 코드0!!"
경찰은 신고내용의 위급성을 따져 코드0부터 5까지의 단위를 부여한다. 코드0은 여성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연락이 두절되는 것, 아동이 납치되는 것, 누군가 흉기를 소지한 채 난동을 부리는 등 가장 급박한 상황이란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나는 차에 타게되어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현장으로 가면서 그렇게 많은 내용의 무전과 연락을 받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안개 같이 몰려든 시민들 속에서 그녀를 보았다. 우리 모두는 승용차 안에서 소주를 마신 채 커터컬로 자살을 시도하려는 울부짖는 여성을 보고 있었다. 본인의 불만사항을 들어달라며 자살소동을 하는 것이었는데 내눈에는 마치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한 여성을 보는 것 같았다. 차문은 잠겨있었다.
"제발 날 좀 보시라구요!!" 팀장님의 말에 유리창 너머 그녀는 울부짖으며 칼과 요구사항이 적힌 종이를 흔들었다. 투명한 1cm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팀장님과 나, 그리고 그녀가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지원나온 형사들, 다른 지구대의 경찰들, 무엇보다 우리를 중심원으로 구름처럼 몰려드는 시민들이 모여 현장은 태풍의 눈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칼을 자신의 손에 가져다 댔다. 그녀가 칼을 흔들 때마다 내 마음도 흔들렸다. 우리는 신속시 작전을 짰다. 운전석의 그녀는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다. 팀장님이 왼쪽에서 그녀의 시선을 유도한다. 그 뒤 오른쪽에서 차문을 강개 개방, 신속히 차속으로 몸을 던져 칼을 빼앗고 운전석 문을 열어 구조한다.
그녀가 종이에 글을 적었다. "나 지금 죽어" 라고 운전석 옆의 우리에게 보이는 그 순간, 조수석에서 달려든 경찰이 왼손으로 그녀의 오른손을 제압하고 경찰의 오른손은 그녀의 머리를 유리창쪽으로 쳐박아 넣으면서 동시에 문을 개방했다. "덜컥" 그 순간 대치중인 우리는 그녀를 휘어잡아 차밖으로 끌어냈다.
그제서야 나는 나를 보고 있었던 수많은 카메라들을 마주하였다. 애써 카메라들과 다가오는 시민들을 무시하며 나는 그녀를 지구대로 대리고 갔다. 그녀의 사정은 딱했다. 안주도 없이 들이킨 소주는 그래도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것들을 치우는 것은 내 몫이었지만 나는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가 궁금했다.
그날 내가 느꼈던 두번째 놀라움은 상황이 종료되고 순식간에 다시 우리는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다시 우리는 조용한 햇살히 따스하게 비치우는 지구대에서 홀로 술주정을 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던 것 같다. 목이 쉬어라 그녀를 설득하던 팀장님과 주임님 또, 치타 같이 순식간에 그녀를 제압하던 선배님들을 보며 이 일이 꽤나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쥐꼬리만한 월급과는 다르게 "보람"이라는 가치의 맛이 얼마나 달달한지를 느끼게 된 것이다.
'어쩌면 경찰된 것이 잘한 선택이었을지도?'
사실 지금도 가끔 경찰을 그만둬야하나 생각하는 나이지만 그날만큼은 푸른셔츠에 어울리는 푸른 자부심과 기쁨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날은 내게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