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그만둘 수 없는 노인

정리하는 글

by 이서명


상담실 문을 열면 익숙한 공기가 감돈다. 오래된 서류철에서 나는 종이 냄새, 저마다 다른 방향제로 덮으려 애썼지만 끝내 섞이고 마는 땀 냄새, 그리고 창문을 닫아두면 눅눅하게 가라앉는 먼지 냄새까지. 커피를 마시려다 식은 채로 책상에 남겨진 종이컵과 이따금 울리는 전화벨 소리, 저마다 다른 고민을 안고 앉아있는 이들의 시선이 하나 둘 머물다 떠난다.


그날도 한 남자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낡은 회색 점퍼, 무릎이 튀어나온 검은 바지, 허리춤이 헐거운 듯 연신 바지를 끌어올렸다. 운동화는 닳아 있고, 굽은 허리는 지난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흔적 같았다. 그는 자리로 안내받으며 작게 인사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몸에서는 세월의 냄새가 났다. 그는 자리에 앉아 말없이 손을 문질렀다. 오른손 손가락에는 손톱이 없고, 왼손 손톱 밑에는 기름때가 끼어 있었으며,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의 손이, 그가 살아온 날들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제가 일을 구할 수 있을까요?"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모자 쓴 얼굴에는 깊게 팬 주름이 있고, 턱에는 하얗게 올라온 수염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

"이 나이에 말입니다."

그가 자신의 나이를 말하기 전에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60이 넘었다. 80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마치 하나의 공식처럼 같은 말을 한다.

"이 나이에 일을 구할 수 있을까요?"

질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확인이기도 했다. 스스로 가능성이 없다고 믿으면서도, 어쩌면 누군가 가능하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듯했다.

상담사는 할 수 없는 한계를 명확히 말해줘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80세가 가깝거나 넘으신 분들은 접수를 거절하지만, 신청서라도 쓰고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하나하나 짚어가며 같이 작성해서 클립을 꼽고 접수하겠다고 하면,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며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평생을 공장에서 일했다. 선반 기계를 돌렸고, 때로는 포장 작업도 했다. 젊을 때는 손이 빠르다고 인정받았고, 체력이 좋아 초과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작은 부품 하나 제대로 집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옛날에는 참 쉬웠어요. 그냥 몸으로 하면 됐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몸이 말을 안 들어요."

그의 손을 다시 봤다. 거칠고, 터지고, 때로는 찢어졌을 손. 그 손으로 그는 가족을 먹여 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의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기업들은 빠른 손을 원했다. 젊은 근육을 찾았다. 나이가 들면 일자리도 줄어든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이대로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가끔 멍해질 때가 있어요. 하루 종일 가만히 있다가, 내가 뭘 하고 있었지 싶어요."

그는 말했다.

"돈도 문제지만, 그냥... 그래요.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우리는 흔히 노인이 되면 쉴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쉼이 없다. 삶에서 일이 사라지면, 일과 함께 그들의 이름도 사라진다. 그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이 끝났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할 수 있는 걸 찾아봐요."

그날 이후 그는 여러 곳에 면접을 봤다. 한 곳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거절당했고, 다른 곳에서는 경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점점 지쳐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고, 그는 결국 학교 경비 자리를 얻게 되었다. "이제라도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웃음 속에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자신이 다시 사회의 일부가 되었다는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노인의 일자리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는다. 언젠가는 우리도 같은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나이에 일을 구할 수 있을까요?"

그때가 되어서야 허둥지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우리가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 모두가 같은 문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그들의 이름이 다시금 불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들이 "어르신"이라는 단어 속에 갇히지 않도록, 그저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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