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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Nov 21.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52화

실화 소설

  보다 못한 금희가 대양에게 연락했다.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회사에서 일하던 대양은 못 오는 대신 월 정액 사이트에 가입해 양이 아이패드로 드라마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응원 전화와 함께.


  그동안 밤낮없이 일하느라 놓쳤던 드라마를 아무 생각 없이 실컷 보고 나니 양의 기분이 슬며시 나아졌다.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엄마, 거울 좀. 나 눈이 뻑뻑해. 너무 오래 봤나 봐. 좀 부은 것도 같아.”


  “양아!”


  “응?”


  “눈이 너무 빨개! 간호사를 부를게!”


  양이 거울로 보니 툭 불거져서 붕어눈 같았다. 두 눈동자에 온통 빨간 핏발이 서 있었다.


  처음 보는 간호사가 왔다 가자 원석이 왔다.


  “선생님! 저 드라마를 오래 봐서인지 붕어눈이 됐어요.”


  “아, 이런! 진짜군요! 봅시다.”


  양의 눈을 들여다보던 원석이 말했다.


  “혈소판이 낮아서 일어난 현상 같습니다. 어제 노란 피를 2개나 놨는데도 워낙 낮은 상태라서 이 정도도 무리였던 겁니다. 오늘은 4개를 드려 보죠. 그래도 눈이 안 가라앉으면 안과 진료를 의뢰하겠습니다. 다른 이상이 있을 가능성도 확인해야 하니까요. 지금부턴 TV도 금집니다!”






  양은 가만히 눈을 감고 혈소판을 맞았다. 열이 나서 어질어질한 머리와 불편한 눈, 쑤시는 목, 저린 발목으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3번째로 노란 피가 다 들어갔을 무렵 수액도 거의 떨어졌다. 간호사가 들어와 모두 새로 갈고 나가자, 양은 잠깐 잠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다리가 저려서 깬 양은 병실에서라도 움직이려고 커튼을 열고 나섰다. 이때 뒤에서 자지러지는 금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 피! 피! 양아, 피!”


  양이 돌아보자 걸어온 길을 따라 새빨간 피가 떨어져 있었다. 양이 멈춘 자리는 가슴에서 나온 피가 흘러내려 고이고 있었다.


  금희가 재빨리 비상벨을 누르고 살펴보니, 수액에 연결된 링거 줄이 빠져 있었다.


  양의 침대 옆 바닥에는 수액이 질펀했다.


  아무래도 샌 지 오래 같았다.


  그런데도 벨소리에 달려온 간호사는 아무런 설명도 미안한 표정도 없이 새 줄을 가져와 기계적으로 링거 줄을 갈았다. 금희는 화가 났다.


  “아까 수액을 갈 때 잘못한 거죳?”


  “링거 줄이 덜 끼워졌던 것 같아요.”


  “근데 그렇게 줄만 갈아도 되는 거예욧? 수액이 이렇게 많이 흐르고 피가 이렇게 떨어질 만큼 줄이 바닥에 한참 닿았잖아욧? 줄을 따라 히크만에 세균이라도 들어갔으면 어떡할 거예요? 질질 흐르던 수액은 또 어떻고요? 그걸 그냥 쓴다고욧?”


  “보호자 분! 괜찮을 거예요! 압력 차이 때문에 몸 안의 피가 내려온 거라서 바깥의 균이 들어갔을 가능성은 없어요!”


  “확신해욧? 히크만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런 일이 없어도 히크만을 통해 감염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아는 간호사면서! 히크만은 심장 정맥에 바로 연결돼서 위험하다는 거 몰라욧?”


  “그렇게 걱정되시면! 수액까지 다 갈아 드릴게요! 기다리세요!”


  간호사는 신경질적인 손길로 링거 줄과 수액을 챙겨 나갔다. 바닥을 어지럽힌 수액과 피를 치우는 일은 금희의 몫이었다. 


  “지가 잘못해서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네! 이게 무슨 경우래?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나 참, 무슨 간호사가 저래? 병원장이 문제야! 맘에 안 든다고 사람들을 다 자르고 대화도 거부하니, 어제까지 일하던 직장에서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라는 문자를 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겠어? 나라도 파업하겠네! 아니, 대화를 안 할 거면 제대로 된 간호사라도 불러 놓던지, 이게 뭐하는 짓이래? 파업이 길어지면 안 되는데 큰일이네, 큰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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