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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Nov 21.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53화

실화 소설

  일요일이 되자, 파업의 바람은 더 거세졌다.


  3일 동안의 파업 효과가 노조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병원장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이참에 문제의 싹을 다 뽑아 버리겠다며 입맛에 맞는 대체 인력을 부르고 꿈쩍도 안했다.


  화가 난 노조는 최대한 많은 노조원을 불러들였다. 환자들의 밥과 병실 청소를 담당하던 직원들까지 자리를 박차고 시위 현장으로 떠났다.


  로비는 빨간 띠를 두른 사람들로 빼곡하고 굳게 쥐어진 주먹은 더 높이 올라갔으며 노동가는 더 크게 울렸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병실마다 쓰레기가 쌓이고, 점심부터는 외부 도시락이 들어온다는 얘기가 돌았다.


  “오늘부턴 식당에 설거지할 사람도 없답니다.”


  “설마 우리한테까지 그럴까요?”


  “격리 병동 환자들은 면역력이 낮아서 쇠로 된 숟가락과 젓가락도 뜨겁게 소독해서 은박지에 싸서 들어오는 형편인데 설마 그럴라고.”


  “환자를 위해서, 더 좋은 의료 환경을 만들려고 파업을 한다는 사람들이 설마 환자들을 위험에 빠뜨리겠어요? 그럼 우리 애더러 죽으란 소린데요!”


  배선실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111병동 사람들은 병원 노조가 아픈 환자를, 살아 있는 사람을, 누군가의 가족을 죽음으로 내모는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점심부터 정말로 외부 도시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날 양의 과립구는 671. 1회용 종이그릇에 담긴 밥과 된장국에 반찬 몇 가지, 비닐에 싸인 플라스틱 수저.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양은 조심스러웠다.


  “밥 냄새가 이상해. 국 맛도. 상한 거 아니야? 그만 먹으면 안 돼?”


  양의 물음에 금희의 주름이 깊어졌다.


  “약 먹으려면 밥 먹어야지. 그래도 한번 먹어 보자. 설마 못 먹을 걸 줬겠어?”


  금희의 말에 마지못해 양은 손으로 코를 막고 몇 숟갈을 더 먹었다.


  “윽. 더 이상은 진짜 못 먹겠어! 어떡하지, 엄마? 계속 이런 밥이 들어오면?”


  “정말 걱정이네… 일단 약부터 먹자. 자, 여기 약, 물.”


  “싫어. 지금은 물도 못 마시겠어. 이따가 먹을게.”


  한참 지나서야 양은 금희가 챙겨 둔 피임약을 먹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매일 같은 시간에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이미 평소보다 30분이나 늦었다.


  “…웩! 웩, 웩, 웩!”


  약을 먹은 지 20초도 안 돼 양은 토했다. 화장실로 달려갈 틈도 없었다. 바닥이 엉망진창이 되면서 병실에 메스꺼운 냄새가 번졌다. 금희가 정신없이 바닥을 닦는 사이, 양은 죽을힘을 다해 걸어가 세면대를 잡고 더 나올 게 없을 때까지 게웠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항암 시작하셔서 힘드실 텐데 냄새가 심해서… 세면대도 제가 금방 뚫고 치울게요. 조금만 참아 주세요.”


  금희는 옆자리의 미자에게 계속해서 사과했다. 양에게 괜찮으냐고 묻거나 등을 두드려 주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빨리 치워야 하는 상황이 금희와 양을 지치게 했다.


  금희는 급한 마음에 맨손으로 세면대의 토사물을 휴지통에 마구 쓸어 담았다. 금희의 속까지 뒤집을 정도로 시큼한 냄새가 코로 파고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넋이 나간 양이 침대에 앉아 있는데 이번에는 설사의 기운이 몰려왔다.


  양은 아픈 다리를 끌며 최대한 빨리 화장실로 갔다. 설사가 쏟아지는데도 변기에 소독약을 뿌려서 닦고 앉아야 하는 자신의 상황에 기가 막혔다. 좍좍 이어지는 설사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양은 변기에 앉아 울었다.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가고 화장실을 나설 즈음에는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몸에 경련까지 일었다.


  그러다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누군가 몸속에서 내장을 비틀고 쥐어짜는 듯했다. 이런 통증은 처음이었다. 저절로 애원이 나왔다.


  “아악! 아악! 엄마, 엄마! 나, 배가 아파! 너무 아파! 나 좀 살려 줘! 빨리 의사 좀 불러 줘! 살려 줘!”


  금희가 미친 듯이 비상벨을 눌렀다. 보통의 한 번이 아니라 끊임없이 울리는 비상벨에 바로 원석이 달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서, 선생님! 저 배가 너무 아파요! 죽을 것 같아요! 저 좀 살려… 주세요! 살려 줘요! 엉엉.”


  원석은 놀랐다. 양의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었다. 원석은 마음을 추스르고 침착하려 애썼다.


  “어디가, 어떻게 아픕니까?”


  “여기, 여기요! 아랫배가… 뒤틀어지는 것처럼 아파요! 죽겠어요!”


  미처 다 치우지 못한 개수대의 건더기와 냄새에 원석은 양이 토했음을 알았다.


  “혹시 하양 씨가 토했습니까?”


  “네, 점심 맛이 이상하다더니 갑자기 애가 토했어요. 그러더니 설사에, 경련에, 배가 아프대요. 도시락이 잘못된 걸까요?”


  “하양 씨, 배 좀 봅시다. 아프더라도 조금만 참아요.”


  “악! 아아아악! 누르는 데마다 다 아파요!”


  “아무래도… 장에 탈이 난 것 같습니다.”


  “도시락 때문이죳?”


  “어머님,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항암제가 장 안의 정상적인 세균까지 다 죽여 버리면 이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거면 다행인데… 일단 복부 X-ray를 찍어 보겠습니다. 결과를 봐서 CT 촬영도 할지 고민해 보죠.”


  “선생님, 뭐든지 빨리! 빨리 진행해 주세요. 너무 아파요.”


  “지금 바로 가서 지시하겠습니다. 조금만 참아요.”


  “잠깐만요! 선생님, 피임약은요? 다시 먹여야 할까요? 애가 먹자마자 토했거든요!”


  “바로 토했으면 위까지 안 내려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시 드시죠.”


  “네. 양아, 엄마가 간호사한테 말해서 다시 받아올게. 조금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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