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미혼 여성의 일상
올해로 나는 앞자리 숫자가 바뀐 마흔 살 미혼 여성이 되었다. 작년 연말부터 유달리 지난 삶에 대한 사유와 살아갈 날들에 대한 고민으로 밤잠을 설쳤더랬다. 스무 살, 서른 살에는 느끼지 못했던 어른이라는 중압감이 어쩌면 나에겐 조금 늦게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나이에 맞는 말버릇, 행동, 생각, 차림새까지 이제는 모른 척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이에 직면한 것 같다. 그래서 연말에는 말버릇을 고쳐보겠다고 각종 강연과 모임을 쫓아다녔더랬다. 도움은 됐지만 꾸준히 실천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기에 부던히 애를 쓰는 중이나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을 감출 길이 없다.
유독 세일러복을 좋아하던 나는 이제 이 옷들과도 이별의 기로에 놓여있다. 하지만 취향이라는 건 쉽게 포기가 안 되더라. 평생 이상형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매일 어거지로 이 옷들을 껴입고 출근을 하면서도 막상 입고나가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마음이 껄끄러워진다. 늙는다는 게 겁나거나 두렵지는 않다만 상당히 거슬리고 불편한 것만은 확실하다.
언젠가 30대 중반의 어떤 여성분이 나에게 그 나이쯤 되면 뭐가 다른가요?라고 묻기에 이런 대답을 한 적이 있다. 보통은 이 나이쯤 되면 결혼을 해서 아이와 남편을 케어하느라 내가 마흔이 된 줄도 모르고 지나가버린다고. 하지만 오롯이 혼자 맞이하는 마흔의 나이는 뭐랄까. 지금부터 까딱 잘 못 살면 내 인생 진짜 X된다는 사이렌이 자동반사적으로 온 몸에 웨옹웨옹하고 울리는 게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어른 들에겐 늘 이런 질문을 받는다. 처자는 왜 결혼을 못 했누? 얼굴도 이쁘고 유머도 있고 성격도 좋은데 어디 딴데 문제가 있나? 하물며 얼마 전 선이 들어왔는데 단도직입적으로 아이 낳기 힘든 나이라며 보지도 안고 팽당한 적도 있다. 내 자궁.. 건강해..
물론 이것은 마흔 미혼 여성이 견뎌야 하는 일종의 고문이기에 나는 그럴 때마다 과거세 내 죄업을 씻는다 생각하며 버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외국어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언젠가 대한민국을 떠나겠다는 나름의 각오다. 대한민국은 노처녀에 대한 잣대가 정말 무섭다. 물론 타국에선 인종차별을 겪어야겠지만, 노처녀에 대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편견이 인종차별과 뭐가 그리 다른가하는 게 내 지론이다.
오늘은 신년 맞이 첫 소개팅이 있었다. 이 나이쯤 되니 한 번 한 번 들어오는 소개팅이 너무나 귀하고 소중하다. 독서를 하다가 잠시 졸았고 느즈막이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가서 몸을 씻다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런 것도 체력이 차고 넘치는 스무 살에 많이 했었어야.. 그렇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와 메이크업 유튜브를 보면서 정성스럽게 화장을 했다. 나쁘지 않았지만 눈밑은 여전히 어두웠다. 흠..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으니 너의 마지막 임무를 다하려무나! 세일러복으로 갈아 입고 부츠를 신고 총총 집을 나섰다.
주말 토요일은 거리에 커플과 젊은 친구들로 에너지가 넘쳤다. 이들을 구경하며 나도 그 속에 있다는 약간의 소속감을 느꼈다. 영포티.. 아무튼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무서운 예감은 틀리지 않고 그 순간 내 신년 소개팅은 만남이 아닌 비즈니스 접대 모드로 바뀌게 됐다. 3살 연하의 동생에게 밥을 사 먹이고 차 한잔 나누며 얘기 들어주고 집으로 조심히 돌려보냈다. 먼 길 만나러 와준 고마움이 컸지만 그건 그거고 저건 저거고 이건 이거다. 애프터는 거절했다. (이 마저도 고맙누..)
오늘 마흔의 고뇌에 대해 쭉 얘길 했지만 마흔이 되어서 좋은 점도 있다. 스무 살, 서른 살에 그리 조급하던 것들이 갑자기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잠잠해진다는 것이다. 곳곳에 쓰러진 나무, 부서진 집들, 널브러진 쓰레기들처럼 마음의 상처가 있지만 그것들을 고스란히 안은 채로 고요해진다는 것이다. 또 누가 뒤에서 내 욕을 하면 앞에서 욕해줄 용기가 생기고 앞에서 욕하면 너는 떠들어라 무시할 수 있는 담력도 생긴다. 하찮은 일에 허둥대거나 아둥바둥하지 않게되며 사람을 가려서 내 인생에 담게 된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귀신같이 가려내는 촉과 감이 생기고 사건사고가 터져도 당황하거나 혼비백산 하지 않고 해결할 방법을 먼저 찾게된다. 떠나가는 사람에 집착하지 않고 오는 사람에 감사하게 된다. 젊을 땐 그 젊음과 건강,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몰랐다면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하고 유일한 것들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젠 어르신들이 선배님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친구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연민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또 뭐가 있더라.. 아마도 마흔으로 좀 더 살다보면 좋은 점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겠지?
솔직히 처음엔 결혼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내가 가져보지 못한 안정감이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야심한 밤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내 삶을 사유할 수 있는 기쁨은 혼자가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닐까. 오늘에서야 비로소 혼자라는 행복감을 느꼈던 하루다. 인생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고 장단점이 있으니 당분간은 혼자라서 좋은 장점만 파보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