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 미혼 여성의 일상
나는 올해로 마흔 살이 된 미혼 여성이다. 마흔 살.. 참 어느 나이대 보다도 받아들이기 힘든 나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삼십대 '청년'의 범주에 속했던 내가 이제 중년의 카테고리로 분류되다니.. 조심스레 브레이크 밟아가며 확장 중인 내 정신 세계와 달리 나이만 혼자 풀악셀 밟고 앞서 가 버리는 듯한 기분이다. 이러다 내 세계가 제대로 다 채워지고 자라지도 못한 채 쥐도새도 모르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까 겁이 난다. 이게 바로 중년의 위기, 중년의 두려움, 중년의 공포라는 것인지..
나는 현재 꽤 규모가 큰 요양병원의 영양사로 근무하고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업무가 환자 식이변경인데 그러다보면 전날 또는 당일 새벽에 돌아가신 환자분들을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된다. 하루에 많으면 서너 분, 적으면 한 두 분이 영면하신다. 임종이 확인되면 내가 다음으로 하는 일은 그 분의 명찰을 찾아 정리하는 일이다. 처음엔 이런 행위조차도 마음이 껄끄럽고 불편했는데 이제는 기계적으로 이름표를 정리하는 내 모습을 보며 이게 맞나? 물음표를 던지면서도 바쁜 업무에 치이다보면 어느새 그 생각들도 파편처럼 흩어져버린다. 요양병원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러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이다.
우리 병원에 입원하시는 환자분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연령대부터 입원 사유도 제각각이다. 또 가족들이 간병인인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각 병동의 공동간병인이 환자분들을 케어한다. 이처럼 늘 곁에서 부모님 또는 자녀를 돌보는 가족이 있는가하면 가끔 찾아와 얼굴만 비추는 가족도 있다. 또는 누구 한 명 찾아오는 이가 없는 분도 계신다. 가끔 업무를 보다가 중환자실 앞을 지나칠 때면 가족들이 환자분 성함을 부르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 분들의 눈물이 내 코끝까지 차올라서 코가 시큰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면 마음이 더 시큰거리고 아프다.
이런 풍경들을 매일 마주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본의 아니게 인생과 삶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사유하게 되는데 최근 갑작스러운 부고 연락을 연이어 받게 되면서 어느새 사유가 번뇌와 고뇌로 변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꽤 친분이 있던 타 부서 직원의 부고 소식을 듣게된 것이다. 그 분의 나이는 고작해야 만 40세. 아직은 어린 두 자녀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무엇보다 매일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이었기에 병원 전체가 술렁였고 환자들 역시 큰 충격에 휩싸였다. 퇴근 후 장례식장에 도착한 나는 그분의 영정 사진 앞에 선 순간 황망한 심정에 그저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이후 산란한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나서며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 그 의미를 한참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나는 내 20대와 30대를 모두 꿈을 이루는데에만 바쳤다. 그래서 꿈을 이뤘냐 하면 그러지도 못했다.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달려온 것이 그저 형태없는 희망고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30대의 끝자락에 와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건강을 무리했고 곁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지쳐 떠나보냈다. 그렇게 커리어도 사람도 돈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소위 실패한 인생에서 원래 전공이었던 영양사라는 직업으로 다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산다는 건 이런 것일까..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인생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았는데.. 이렇게 삶의 의미를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만 들었다. 죽음 앞에선 이런 고뇌와 번뇌조차도 한낯 가벼운 먼지처럼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러다 불현듯 이제는 더이상 삶의 의미를 두고 고심하는 사람이 아닌 결심해서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살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여태 누가 억지로 손에 쥐여준 것처럼 내 인생의 방향키를 불안하게 잡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방향키를 내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살아가겠노라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진리를 깨우쳐가겠노라고.
더불어 내가 생각하는 성공한 삶의 기준도 완전히 바뀌었다. 사회 통념상 우리는 사회적 지위나 명성을 얻어야만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실은 진짜 성공한 삶이란 내가 목숨을 다하는 순간 단 한 명이라도 내 손을 잡아줄 가족, 친구, 지인이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의외로 그렇지 못한 죽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 화환이 얼마나 들어오고 조문객은 얼마나 오는지 내가 죽으면 알 길이 없다. 그저 직관적으로 그래도 내가 이번 생은 잘 살았다고 느낄 수 있는 건 숨이 끊어지는 내 마지막 순간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니 살면서 누군가에게 좀 더 친절해도 되고 다정해도 된다. 사랑하기에도 벅차고 아까운 시간들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있다면 당장 만나러 가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지금 신발끈을 묶고 문 밖을 나서야 한다. 도전해보고 싶은 건 마음껏 시도하고 용서를 구할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내 몸이 내 의지로 움직일 때 그 소중함과 감사함을 듬뿍 누려야 한다.
나는 그리스인조르바 책을 내 인생책으로 꼽는데, 자유의 표상인 조르바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그는 마지막 유언을 이렇게 남겼다. "내 평생 별짓 다 해 봤어도 아직 해야 할 걸 못 했다오.. 나 같은 사람은 천 년은 살아야 하는 건데.." 그리곤 창틀을 부여잡고 이따금 웃고 울며 창살에 손톱을 박고 서서 죽음을 맞이했다.
내가 40대가 된 후 처음으로 깨달은 것 역시 연애든 공부든 운동이든 예술이든 그게 뭐가됐든 뭐든 적극적으로 최대한 많이 시도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재밌게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누리는 데 집중하는 삶. 쉽진 않지만 그곳에 감사한 마음도 싹틀 수 있고 그런 순간이 모이면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 여유로 상대마저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설 연휴가 끝나지 않은 내일 나는 출근을 해야한다. 출근을 즐기는 미친여자가 바로 나다! 내일은 설날에 언니에게 선물 받은 예쁜 옷을 입고 기분 좋게 출근해 환자분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다음 글에서는 40대가 미치면 얼마나 무서워지는 써보고자 한다. 난 요즘 내가 무섭다. 매일 무슨 짓을 벌일지 나도 나를 모르겠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