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 미혼 여성의 일상
나는 요즘 3개 국어를 동시에 공부 중이다. 여지껏 하나만 무지하게 팠지만 실력은 늘 제자리 걸음이고 이에 질려 제 풀에 포기해버리는 패턴의 반복마저 지겨워져 내 나름 공부를 지속할 방법을 모색한 끝에 찾은 묘안이다. 일단 영어는 매일 베이스로 깔고(근래 온라인 강의를 통 못 들었네..) 스페인어는 듀오0go(오늘로 103일째)로 그리고 중국어는 문법책으로 하루 한 문장씩 공부하고 있다. 생각보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지금까지는 꽤나 순항 중이다. 물론 가끔.. 아주 자주.. 셋 중 하나만 할 때도 있지만 하루에 하나라도 꾸역꾸역 해내니 포기라는 극단으로는 더 이상 치닫지 않는 것 같다.
세 개의 언어 중 요즘 내가 유독 더 흥미를 느끼며 배우는 언어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중국어다. 지금까지 임재범의 '비상'이 내 노래방 애창곡이었다면 이제는 중국 노래(나의 소녀시대 OST '소행운')가 애창곡이 될 정도로 중국어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 문법에 깊게 파고들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실증이 나지만 나는 대부분 회화 위주로 가볍게 공부하고 있어 부담이 없고 오히려 더 재밌게 공부하고 있다. 여튼 내 작은 소망은 언젠가 주동우 배우처럼 중국말을 예쁘고 우아하게 해보는 것이다.. 찌아요우..
다른 언어들보다 내가 유독 중국어에 더 열성적이게 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우리 병원(나는 요양병원 영양사다)에 근무하시는 간병사님 90% 이상이 모두 중국분이기 때문이다. 다들 이 얘길하면 약간 황당한 표정을 짓던데 일반적인 동기가 아니란 건 인정한다. 다만 그냥 일종의 나만의 퍼포먼스.. 그러니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지만 내 나름 사회적 가치를 남겨보려는 자그마한 시도이자 노력이랄까.
이 병원에 입사하기 전 근무했던 요양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면접을 볼때부터 심상치않은 쎄함을 느꼈지만 그때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잠자코 입사를 강행했다. 병원장은 짠돌이에 행정원장은 원장님의 부인이었는데 입사 후 팀장의 부재로 땀 뻘뻘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초짜 영양사였기에) 나에게 그 길목 방에 앉아 지나가면서 본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적(질)을 했다. 그땐 육체노동과 정신적 고통으로 나도 눈이 반쯤 돌아 있었기 때문에 다음 날 진짜 문 앞에서 옛다 인사! 하는 마음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니 그 다음부터는 인사하란 소리가 쏙 들어갔드랬다. 어쨌든 가좉(일부러 오타를 낸건 아니다)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몇 주 근무하다가 우연히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됐다. 얼마 전 뉴스에 크게 보도된 병원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이다. 나도 들어본 적 있는 사건이었다. 간병사와 환자 사이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전국민을 공분에 휩싸이게 했던 바로 그.. 사건이었다.
명예훼손에 걸리고 싶지 않으니 여기까지 하겠다만, 무튼 나는 곧장 퇴사를 준비했고 그곳을 떠나면서 괜히 환자분들을 버려 두고 온 것 같아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요는 왜 그 병원에서 그런 나쁜 일이 벌어졌느냐는 것이다. 사고라고? 글쎄.. 장담컨대 행정실이나 직원들이 간병사님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이 병원의 앞날과 내 가족에게 벌어질 일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약 피치못하게 가족을 요양병원에 모셔야 한다면 병원에서 간병사님을 어떻게 대하고 취급하는지를 보면 일단 어지간한 곳들은 걸러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참고로 내가 있었던 병원에선 간병사님을 정말이지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가끔은 인간취급조차 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에 반해 지금의 병원에선 90% 이상이 중국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굉장히 사이좋게 지낸다. 나는 매일 병동 라운딩을 도는데 간병사님들 모두 환자분들의 특성을 훤히 꿰고 있다. 이 분은 뭘 못드시고, 식사를 매우 천천히 하시고, 소화를 잘 못하시고 뭘 제일 좋아하신다 등등.. 온순하고 선한 분들이 많고 진짜 보면 간병사라는 편견을 깨주듯 와아~ 탄성이 나올 정도로 멋쟁이 이신 간병사님도 있다. 어느 날은 내가 무거운 박스를 복도에서 낑낑대며 끌고 가는데 누군가 갑자기 박스를 확 낚아채가는 게 아니겠나. 고개를 들어보니 한 여자 간병사님이 내 박스를 어깨에 메고 뛰듯 걸어가고 계셨다. 쫓아가며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그 분은 박스를 사무실 안까지 시크하게 내려 놓으시고는 휙 사라지셨는데 그 후로는 뵐 수가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돕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 받고 장난도 치며 격없이 지내는 편이다. 깊은 대화를 주고 받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 한 번의 인사와 대화가 어쩌면 병원에서 자칫 소외될 수 있는 간병사님들을 동굴 밖으로 계속 끌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대가 단순히 간병사님들과 친해지는 일을 넘어 결국 간병사님들을 지키고 간병사님들이 돌보는 환자분들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두번다시 이전 병원에서처럼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의 인간성을 지켜주고 싶은 게 내 진심이다. 근데 근래 주방 이슈로 인해 간병사님들께 예민포스였단 건 안 비밀..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반성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친절한 동료가 되어보기로 한다.
병원은 365일 하루 3끼가 돌아가는 곳이기에 늘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환자분들의 건강 상태를 좀 더 살피고 싶어도 영양사가 두 명(원래는 현재 베드 수라면 3명이어야 한다)이라 그럴 여유가 전혀 없다. 매일 일 쳐내기 바쁜 하루하루다. 이런 환경에서 신념을 지키며 일한다는 게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부모님도 이제 곧 칠순을 앞두고 계신다. 다행히 지금은 큰 지병없이 잘 지내고 계신데 가끔은 눈에 띄게 한 해 한 해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을 뵈면 덜컥 겁이나기도 하고 걱정이 앞선다. 요양병원 영양사로 일하고 있지만 솔직히 나는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시고 싶지가 않다. 나는 부모님의 피땀눈물로 이렇게 멋지게 자랐고 언젠가 부모님이 혼자 거동하기 힘든 날이 오면 그땐 내손으로 후회없이 돌봐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게 부모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지 않나. 물론 이세상 모든 자식들 마음이 그럴테지만 세상은 그만큼 냉혹하기에 부모님조차 내 손으로 건사할 수 없는 게 현실일지 모른다. 그래서 빨리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은데.. 내 통장에만 구멍이 생겼는지.. 자꾸 돈이 모일 틈 없이 새나간다.. 아.. 40대 미혼 여성의 인생이여..
가끔 환자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상하게 정이 끌리는 환자분이 있다. 그러면 생각날 때마다 병실을 방문해 환자분의 상태를 살피고 인사도 건네고 이야기도 들어드린다. 그런데 대부분 입원 때만 해도 혈색도 좋고 웃음도 많던 환자분이 불과 몇 개월 사이 급격히 노쇠하시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7080시대를 멋지게 주름잡던 분들이 빛바랜 오디오처럼 침대에 오도커니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그게 곧 내 미래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해서 때론 가슴이 울렁거리고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 까짓거 한번 사는 인생 남눈치 보지말고 나답게 살자! 그날은 꼭 퇴근 길에 미뤄뒀던 버킷리스트를 다시 펼쳐보며 주말 계획을 세워본다. 그래서 지난 주 주말 나는 혼자 묵호항 여행을 다녀왔다.
잠깐 삼천포로 빠지면 묵호항에서 우연히 시간이 남아 연필뮤지엄에 다녀왔는데 별 기대없이 들어간 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되었다. 1층에 문해교실을 다니시는 어르신들의 그림과 글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수많은 작품 중 나를 울컥하게 만든 한 어르신의 시가 있어 짧게 소개하려 한다.
내 인생은 물거품이다.
돌아보니 내가 이룬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하늘의 별을 따듯이 힘겹게 살아왔다.
칠십 평생을 살다보니
자식들 잘 낳고 길러서 잘 살고 있는 것이
내 인생의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권선녀'어르신의 시다.
비록 내 인생은 물거품 같지만 자식들을 낳고 잘 키웠기 때문에 물거품 같은 내 인생도 행복이고 즐거움이었단 말씀이 얼마나 가슴 깊이 사무치던지.. 자식이 그리고 자식의 행복이 내 인생의 전부라는 부모님.. 아마 이 세상 대부분의 부모님의 심정이 권선녀 할머님 같지 않을까.. 직접 그리신 그림에는 아름다운 정원에 서 있는 할머님의 모습이 보이는데 활짝 웃고 계신다. 소박하지만 충만해 보이고 당장이라도 하늘로 가볍게 날아갈 것 처럼 홀가분해 보이신다. 내 인생이 물거품 같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거품이었을 것이다. 쉽사리 가라앉을 수 있고 하늘로 증발해 버릴 수도 있었지만 꿋꿋하고 진득하게 흘러간 거품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라는 존재는 부모님의 우주이고 전부인 사람들이다. 그러니 거짓없이 나쁜 짓 하지 않고 올바르게 잘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다른 걸 안 해도 부모님은 안심하고 기뻐하신다. 살아계실 때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는 건 365일 같이 살부대끼며 지내는 것도 아니고 때때마다 적당히 현금을 손에 쥐여드리는 일도 아니다. 설사 이 모든 걸 하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부모님을 향해 애틋한 마음을 지니고 그 마음을 표현하려 애쓰는 일일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영양사로써 환자분들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먹는 즐거움일 것이다. 매일 3끼를 병원에서 해결하시는 환자분들께 새롭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드리고 싶지만 병원의 여러 이해관계와 예산상의 문제로 인해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때론 큰 무력감을 느끼고 영양사로서의 고뇌도 점점 깊어진다. 이것도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꿀팁인데 병원에서 영양사를 잘 대우해주면 그 병원의 식사 퀄리티가 좋고 식사 퀄리티가 좋으면 당연히 환자분들 건강과 기분에 도움이 될터다. 그러므로 그 병원이 영양사를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취업정보 사이트를 활용해 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물론 대부분의 업체가 영양사를 쉽게 소모하고 갈아치우는 소모품 정도로 취급하고 있을게다. 개중에 한 군데는 멀쩡한 곳이 있겠지.. 라고 희망을 걸어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모든 영양사들이 오늘도 무사히 여러분들의 소중한 식사시간을 지켜드리기 위해 새벽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몸과 마음이 부서져라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주는 어떤 쌈박한 메뉴를 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