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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Sep 13. 2022

우리 역사 속의 범죄자들.18.신안해저유물도굴 사건

18.신안해저유물도굴 사건

18.신안해저유물도굴 사건


간혹 영화에서는 옛 왕조의 무덤이나 비밀 장소 등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도굴꾼들이 등장하곤 한다. 서양에서는 '트레저헌터'라고도 하는데 이들은 오래된 문화재나 보물들을 발굴하여 암거래 시장에 내다 파는 범죄자일 뿐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굴 사건이 바로 신안해저유물에 대한 도굴 사건이다.


전남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도덕도 앞바다에서 발굴된 이 유물들은 이른바 '신안호' 혹은 '700년 전의 약속호'로 불리는 배에서 발견되었는데, 대략 1323년 경 침몰된 무역선으로 추측되고 있다. 중국에서 출발해 우리나라와 일본까지 오갔던 이 무역선이 신안 앞바다에 침몰했는데, 각종 무역품(청자, 백자, 약재, 은접시, 일본도 등) 2만 8천여 점이 발굴되었다. 1976년 10월부터 이루어진 발굴은 1984년까지 총 11차례 이루어졌다.


                               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신안 보물선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그런데 사실 이 지역에서 유물이 발견된 것은 이미 1950년대부터였다고 전해진다.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던 어부들은 그릇이 나오면 개밥그릇으로 사용했고, 동전꾸러미가 나오면 아이들에게 주어 제기를 만들어 차도록 했다. 그러던 중 1975년 8월 25일 어부 한명이 6점의 온전한 청자를 인양하게 되었고, 이 사실을 그 어부의 동생이 신안군청에 신고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신안 앞바다에 보물선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되었다.


1976년 1월 9일 신안 앞바다의 보물선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자 가장 먼저 이곳으로 향한 사람들이 바로 도굴꾼들이다. 1976년부터 1987년까지 장장 12년 동안 지속된 유물 도굴이 시작된 것이다.


1976년 10월 13일, 정모씨 등 8명의 도굴꾼을 고용해서 9월 1일부터 22일까지 122점의 유물을 도굴하여 밀매하려다 목포 경찰서에 3명이 체포되었으며, 5명에게는 수배령이 내려졌다. 최초의 신안 도굴꾼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 조직 13명의 도굴꾼과 밀거래한 인원들을 입건했으며, 이들에게 311건의 유물을 회수했다. 이 사건은 당시에 문화재 300점을 되찾은 '제 2의 인양'으로 불리며 방송에도 크게 보도되었는데,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박희태 검사 역시 유명세를 치루게 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원, 송대의 자기가 1억원에 거래된 적이 있다는 기사까지 나오자 도굴꾼들이 목숨을 내놓고 신안 앞바다에 뛰어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안 보물선에서 발굴된 유물(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76년 11월 제2차 발굴조사가 끝나자 정부에서는 이곳 주변 2km를 항해 금지구역으로 설정하였고, 현장 근처의 섬 두 곳에 감시초소를 만들어 감시원을 배치하였으며, 감시선도 운행하였다. 그러나 도굴꾼들의 도굴은 멈추지 않았다.



1978년 7월 3일, 81점의 유물을 도굴하여 판매한 일당 6명이 구속되고 21점이 압수되었다.

1981년 3월 19일, 9점의 유물을 도굴하여 외국으로 빼돌리려 한 일당 5명을 구속하고, 2명을 수배하여 7점을 압수했다.

1981년 6월 13일, 유물 100여 점을 도굴한 7명을 구속했는데, 이때 현장 감시원 2명이 뇌물로 현금 20만원과 유물 30점을 받은 것으로 확인하였다.

1983년 10월 31일, 100여 점의 유물을 인양한 도굴꾼 4명과 청자 접시와 대접 5점을 뇌물로 받고 이를 눈감아 준 유물감시선 선장과 갑판장을 구속했다.

1987년 2월 5일, 유물 1000여 점(싯가 50억 상당)을 인양하여 일본 등으로 빼돌리려던 전문 도굴단 6개 조직과 일본인을 포함한 밀반출사범 등 30여 명을 검거하여 17명을 구속시켰으며, 605점의 유물을 압수했다.



                                     신안 보물선에서 발굴된 유물(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87년 대규모의 도굴단이 검거되자 신안에 또다른 보물선이 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들을 마지막으로 12년 간의 도굴 범죄는 끝이 났다.


그리고 이로 인해 신안 주민들은 한동안 몸살을 앓아야 했다.


1987년 동아일보에서는 다음과 같은 칼럼을 내보냈다.



신안 해저유물은 결국 인근 주민들에게 재앙만 가져다주었다. 특히 임자도와 지도 주민들 중 상당수는 생업을 내팽개치고 도굴 유혹에 빠져, 일부는 범행을 저질러 감옥에 간 사람도 있다. 임자도에 사는 김모 씨가 도굴로 수천만 원을 벌어들여 떼부자가 됐다는 소문이 나돌자 지역 주민들 일부가 영농자금까지 대부받아 해저 보물 건지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렇게 떼부자가 된 김씨는 이후 다시 유물 발견을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감시선이 나타나자 도굴꾼들이 그대로 달아나는 바람에 익사하고 말았다. 물론 김씨 가족들도 도굴의 공범으로 수배를 받고 조사를 받으며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최근인 2019년 5월, 당시(1983년)에 도굴한 유물 57점을 36년 동안이나 숨겨서 지니고 있던 60대 도굴꾼 A씨가 일본으로 이것들을 밀반출하려다 검거되기도 했다.



       문화재 은닉범으로부터 압수한 신안해저유물 매장해역 출수 문화재들. [사진=뉴스핌 최태영 기자]


분명한 사실은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도굴죄'는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A씨의 경우 문화재 절도에 대한 공소시효는 10년이기 때문에 '도굴죄'는 성립하지 않지만, 문화재를 은닉하는 행위 역시 범죄이며 이는 문화재가 사법기관에 발견되는 순간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되므로 A씨는 '은닉죄'로 처벌을 받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가끔 범죄자를 멋지게 포장하곤 한다. 조폭깡패들이나 사기꾼들은 물론 도굴꾼들 역시 그런 케이스가 많다. 


                                                     영화 <도굴> - CJ ENM



하지만 이는 분명한 범죄행위이며, 특히나 신안해저유물의 도굴 사건은 장장 12년 간이나 이어져 온 국제적으로도 창피한 행동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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