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수학은 중학 수학과 다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수학공부법
먹는데 진심인 주인공의 일과 사랑을 그린 '식샤를 합시다.'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면접 장소에서 빈 그릇을 보고 거기에 어떤 음식이 들어있었는지 알아맞히라는 요구를 받는다. 주인공은 그릇의 위치와 그릇에 남아 있는 양념을 보고 정답을 맞힌다. 물론 그 식당은 주인공이 예전에 와봤던 곳이기는 했다.
고1 수학에서도 이런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일부만 보여주고 그것이 원래 무엇의 일부였는지 추론하는 것 말이다. 양변을 같은 수나 식으로 나누어도 성립하는 등식의 성질을 이용하여 식의 일부를 지우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부분을 보고 전체를 추론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미드 '넘버스'에서 수학자인 주인공은 FBI 요원인 형을 도와서 사건을 해결한다. 수학을 패턴의 학문이라고 말하는 수학자도 있다. 이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은 연쇄 사건의 공통점을 찾기도 하고 숫자의 패턴을 보고 회계부정과 선거부정을 알아채기도 한다.
고1 수학부터 본격적으로 패턴 찾기가 시작된다. 특히 자연수 n이 수식에 등장하면 n자리에 1, 2, 3, 등을 대입하여 패턴을 찾아야 한다. 수능 문제에서도 2문제 이상 출제될 정도로 중요한 기술이다. n자리에 두세 개만 대입해도 패턴이 찾아지는 문제가 있는 반면에 예닐곱 개를 대입하도 패턴이 잘 안보일 때도 있다. 이런 문제만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패턴을 찾아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다른 유형의 문제는 제한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좋다.)
몇몇 요리사들을 스타반열에 올려 놓았던 '냉장고를 부탁해'는 유명인의 냉장고를 그대로 스튜디오에 들고 와서 그 재료만으로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냉장고에 특별한 요리 재료가 없는데도 상상력과 개인기로 가끔 놀라운 요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1 수학에 거주하는 자연수, 정수, 실수 등의 냉장고를 열면, 제대로 된 요리를 하기에는 단서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때 상상력과 추론이 필요하다. 자연수, 정수, 실수라는 조건 자체가 부족한 조건을 채워준다.
가면을 쓰고 노래하는 사람을 맞히는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누군지 바로 알 수 있는 가수도 있지만, 가수가 아닌 유명인은 평소 목소리는 알아도 노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알아맞히기 쉽지 않다.
고1 수학부터는 문자의 전성시대다. 숫자로 주어지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도 문자로 주어지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문자가 양수인지 음수인지 0인지, 만일 문자가 2개이면 누가 더 큰 수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경우를 나누어서 풀어야 한다. 심지어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야 할지 그 경계점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다.
최근 '뭉쳐야 찬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수영, 스케이팅, 육상, 레슬링 스포츠 스타들이 모여서 축구를 하는 내용이다. 다들 일반인보다 체력이나 스피드는 앞서지만 축구 실력은 많이 모자란다. 축구와 수학이 얼마나 비슷할지 알 수 없지만 훈련 방식은 본받을 만했다. 선수들이 슈팅을 연습할 때 가급적 불편한 상황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날아올 지 모르는 공을 논스톱으로 슈팅하는 연습인데, 실전에서 그런 장면이 정말 많이 나왔다.
고1 수학부터는 약속 대련이 아니라 실전 대련이다. 어떤 문제가 나올지 다 알려주고 외워서 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떤 문제가 나올지 예측해야 하며, 문제의 난이도를 높여서 연습해야 한다. 문제마다 함정을 팔 수도 있고 관점을 달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문제를 많이 푸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예상을 벗어난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나름의 논리와 추론으로 결론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한 때 최고의 미드였던 '프리즌 브레이크'는 형과 함께 탈옥하기 위해서 동생이 일부러 감옥에 들어가는 내용이다. 내용만 대충 알고 보지는 않았다.
수학에서도 감옥이 있다. 바로 절댓값이다. 고1수학도 그렇지만 수능에서도 거의 모든 킬러 문제는 절댓값에 갇혀 있다. 쉬운 문제도 절댓값을 한두 개 씌워 놓으면 난이도가 쭉 상승한다. x가 절댓값에 갇혀 있으면 그나마 탈옥시키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y가 절댓값에 갇혀 있으면 탈옥시키기가 만만치 않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과정이 나머지 과정의 성패를 가른다고 확신한다. 고2, 고3 과정을 공부할 때 필요한 개념과 기술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험을 만점받기 위해서 문제집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나 고1, 고2, 고3 과정을 대충 선행하는 것은 내 경험으로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중학교 과정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고1과정을 길게 심화학습하는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