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스타 Aug 18. 2022

Understanding is not answer.

이해에 대한 오해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대부분의 학문은 이해가 전부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이나 초끈이론 평행우주론 등은 우리의 직관을 한참 넘어서기 때문에 '수식'으로만 이론이 성립하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생명이 무엇인지, 시간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워합니다. 일반인에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자신도 생명이나 시간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시간의 물리학'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수십 가지 물리 이론을 접목하여 '시간'을 설명하고 있지만, 저는 그 책을 정독해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제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Understanding is everything."


이렇듯 이해가 전부인 학문이 있는 반면에 '이해'라는 도구가 잘 작동되지 않는 분야도 있습니다. 짐작하셨듯이 '수학'입니다.

 

수학은 이해를 하지 못해도 문제를 풀 수 있고 이해를 해도 문제를 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해를 하지 못해도 문제를 풀 수 있는 경우는 '공식'이 있을 때입니다. 초등 수학이 연산이라면, 중학 수학에서 비로소 '공식'이 등장합니다. 지수법칙, 곱셈 공식, 인수분해 공식, 근의 공식, 피타고라스 정리, 삼각비를 이용한 삼각형의 넓이 공식 등 '공식의 천국'입니다.


이렇게 공식이 주가 되는 단원에서는 '이해'가 그리 필요하지 않습니다.(이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근의 공식을 유도하지 못해도 근을 구할 수 있고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하지 않아도 직각삼각형의 두 변의 길이가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한 변의 길이를 구할 수 있습니다. 공식을 외워서 적용하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쎈 수학"같은 유형집이 시험을 잘 보는 최적의 교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에 어떤 공식을 적용하면 되는지 단어 외우듯이 반복해서 풀 수 있도록 구성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고1 수학에서 발생합니다. 고1 수학에서는 공식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중학 수학에서 배우는 공식을 재사용하죠. 단순히 공식을 외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 속에 숨겨진 비밀을 알려 주는 식이죠. 예를 들면, 근의 공식은  단순이 근을 구하는 공식이 아니라 아래와 같이 5가지 비밀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더 많은 비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1. 이차함수의 축의 방정식

2. 근과 계수와의 관계

3. 실근과 허근의 판별

4. 두 근의 차

5. 두 근의 위치 추정


또한 고1 수학에서는 단순히 개념을 이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변이(variation)하고 변형(transform)하여 기존의 개념과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 때가 많습니다. 숫자가 들어갈 자리에 문자를 넣어서 문제를 일반화시키기도 하고 절댓값을 취해서 허들을 높이기도 합니다. 다른 개념과 연계하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이러한 변이, 변형, 일반화, 절댓값, 연계 등의 문제가 '쎈 수학'같은 유형문제집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공부 방법입니다. 이런 문제들까지 외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예전처럼 여러 번 반복해서 외우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성공 노하우를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아서겠죠. 그런데 외워야 할 양이 중학 수학의 몇 배가 되기 때문에 단순히 외우는 것 또한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결국 많은 학생들이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그래서 늘 찍어야 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죠.


저는 이해중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학생들은 직접 푸는 것이 아니라 남이 푸는 것을 이해해도 공부가 된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모르면 바로 해답 보고 바로 질문하고 그래서 이해되면 바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하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학생에게 남는 것이 있을까요? 남이 운동하는 것을 보고 이해했다고 해서 내 몸에 땀이 나고 기술이 향상되지는 않습니다.


제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1시간 정도 지나면 예외 없이 머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운동하면 몸이 아픈 것처럼 공부하면 머리가 아파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해주곤 합니다.


한 시간, 아니 한 문제를 풀더라도 머리가 아파야 합니다. 아는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문제를 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게 진짜 공부입니다. 아는 개념과 모르는 개념을 분리하고 추론하고 연계하고 대입하고 치환하고 이동하면서 정답에 다가가야 합니다. 틀려도 되고 중간에 멈춰도 되지만 도전의 과정을 생략해서는 안됩니다. 이 과정을 거치고 질문해야 그게 진짜 질문입니다.

 

간혹 시험 점수가 예상한 것보다 안 나오면 문제를 더 많이 풀면 되냐고 물어보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 저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아니, 문제를 더 적게 풀어야 해. 지금보다 정성스럽게."









매거진의 이전글 질문의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