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자랑으로 글을 시작해야겠다. 아이들은 나를 참 좋아한다. 뭐 딱히 하지도 않았는데 키즈카페에서,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와 놀고 있으면 어느새 내 주변에 다른 아이들이 가득하다. (TMI이지만, 이사 오기 전에는 아예 놀이터 모임이 있었다. 놀이터 초딩 언니 오빠들은 로아랑 놀아줬고 나는 그 초딩들과 신나게 놀아줬다.)
왜 그런지 분석해보았다.
(1) 리액션을 기가 막히게 해 준다.
(2) 잘 웃는다.
(3) 영어를 쓴다.
실험 1
맞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첫째한테 항상 영어를 썼었고, 아이들한테도 영어를 쓴다. (물론 한국어도 함께 쓴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리듬으로 다른 언어의 소리들을 구별하고 약 10개월 때부터 자신의 모국어와 다른 언어를 구별할 수 있다. 그래서 키즈카페에서,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두 내가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게 신기한가 보다.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걸 보면.
내가 영어를 쓰는 걸 보면 아이들 성향마다 다르게 반응한다.
- 그냥 쳐다만 보다가 엄마한테 가는 아이,
- 관찰하다가 나를 따라다니거나 다가오는 아이,
- 친구들에게 속닥거리는 아이,
- "왜 영어 써요? 외국인이에요?"라며 적극적으로 물어보는 아이.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영어 조기교육을 받기 때문에 내가 영어를 하면 대충 알아듣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근데 3-4살 아이들은? 이 아이들은 감으로 알아듣는다. 이것은 여러 가지 논문으로 입증된 바라 이미 알고 있던 현상이었지만, 직접 내가 해 보고 그 결과를 체험해보니 너무 재밌더라.
키즈카페에서 첫째랑 얘기하고 있으면 내 주위를 맴도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한테 먼저 말을 건네본다. 크라센의 '이해 가능한 인풋' 법칙을 생각하며. 물론 호감 가는 표정과 밝은 목소리는 필수.
"Hello! Come here. Let's play together!" (오라는 손짓)
"Roa, this friend is here to play with us." (첫째한테 영어로 말하는걸 다시 보여주면서 한번 더 관찰 기회를 줌. 너무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도망감....:))
"(첫째와 갖고 놀고 있던 장난감 중 하나 선택해서 보여주며) Car. Vroom, vroom. Beep, beep."
"Do you want it? (장난감을 건네며)"
"Let's go!" (손짓하며)
이런 식으로 짧은 단어와 문장, 제스처를 함께 하면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 알아듣는다.
이는 내가 첫째에게 중국어를 했을 때도 그랬다. 나의 중국어는 형편없다. "~ 먹고 싶어.", "이거 봐.", "가자", "미안해, 고마워." 같은 생존을 위한 것들만 말할 수 있다. 읽고 쓰는 건 더더욱 못한다. 하지만 나는 언어를 습득하는 방법을 알기에 첫째에게 적용해보았다.
"wo chi..."(나는 먹는다)라는 문장과 "wo kan..."(나는 본다)라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여러 가지 단어를 대입해서 말해주었다. 제스처와 표정은 필수적으로 해 주었고 맞는 상황에서 얘기해 주었다. 오, 알아듣는다. 10-20분정도 한 번만 했는데도 알아듣는단 말이다. 이걸 매일 반복해 주고 다양한 상황과 매체를 통해 그 단어, 문장 패턴을 듣게 해 주면 아이 안에서 쌓이는 것이다. 나중에는 아웃풋까지 나오겠지!
이 실험을 통해서 더 확실해졌다. 습득의 환경을 만들어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언어를 습득한다 (습득의 환경에 대한 글은 링크를 클릭).
실험 2
현재는 또 다른 실험 중에 있다. 매주 정기적으로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첫째의 친구가 있다. 그 아이는 30개월. 영어 노출은 거의 없다. 한 달 정도 전부터 그 아이한테도 자연스럽게 영어를 많이 써줬다. 그랬더니 갈수록 알아듣는 게 많아지고 가끔 내 말을 따라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예 첫째랑 둘이 앉혀놓고 클레이 놀이를 해봤다. 별거 없다. 그냥 클레이 한 덩이씩 주고 내 모션을 따라 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말을 할 때는 짧게, 동사 단어로만 얘기했다.
"Pat it.", "Roll it", "Roll it out.", "Press it.", "Poke it.", "Cut out a shape." 등등
친구랑 함께 했더니 친구랑 있을 때 한국어만 사용하는 우리 첫째는 영어로만 얘기하고, 이 친구는 내 말을 따라 하며 재밌게 놀더라. 친구 효과다.
24개월 이후 친구와 놀기 시작하는 이때부터 친구 효과는 아이가 커갈수록 더 커지기 시작한다. 내 친구가 영어를 쓰니 나도 자연스레 영어를 쓰는 것. 이 친구 효과만 잘 활용해도 우리 아이의 습득 환경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특히나 형제자매가 있는 집안에서는 이 효과를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첫째 아이와 영어 하면서 둘째 아이에게도 유익이 있고, 둘째와 하면서 첫째도 긍정적 영향을 받는다. 내가 3개월 둘째한테 영어로 무언가 얘기하면 30개월 첫째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기도 영어로 얘기를 한다. 첫째와 영어노래 부르며 춤추면 둘째는 자연스레 영어노래 노출이 된다. 벌써부터 우리 세 명 사이에 작은 영어 커뮤니티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첫째에게 알려주고 싶은 문장 패턴이나 단어, 표현 등을 둘째한테 재밌게 말해준다. 첫째가 모르게 인풋을 해주는 격이다. 그럼 10의 8은 내 예상을 적중한다. 듣고 있다가 그 표현을 따라 하거나 얼마 안 있어 첫째 입에서 그 표현이 나오는 걸 듣는다.
영어 쓰는 이모의 실험 보고서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1. 어린아이들은 습득의 환경만 만들어준다면 어떤 언어든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2. 습득에 있어 친구는 효과적이다.
기억하자. 엄마의 역할은 월령에 맞는 습득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영어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게 해 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습득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