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17
주변에 보이차라고 마시는 차는 아마도 대부분 숙차일 것이다. 나도 보이차에 입문하면서 거의 십 년을 숙차만 마셨다.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한 초보는 숙차가 찻값도 저렴하지만 누구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으니 그러는 게 당연한 일이다. 보이차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하지만 보이차 전문회사인 대익 숙차도 357g에 3만 원 정도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할 수 있다.
반면에 생차는 20년 전에 비해 거의 열 배에서 빙도노채 고수차는 백배까지 올랐다. 왜 같은 보이차인데 숙차는 값이 여전히 저렴한데 생차는 백배까지 치솟게 되었을까? 실제로 프리미엄 급이라고 해도 숙차는 생차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보이차는 아는 만큼 주머니를 열 수 있으니 백배까지 차이가 나는 근거에 대해 알아보자.
보이차는 다른 차류와 다르게 동그란 병차나 네모진 전차 등 덩어리차로 판매된다. 물론 흑차류는 대부분 보이차와 같이 덩어리차이고 백차나 홍차 등 장기보관해서 마실 수 있는 차류도 병차로 만들어 유통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녹차나 청차, 홍차는 찻잎을 가공해서 만들어진 잎차 그대로 판매되는데 왜 보이차와 흑차류는 덩어리차일까?
보이차는 찻잎을 따서 시들인 다음 뜨거운 솥에서 덖어내고 비비는 과정을 한 번만 해서 햇볕에 말린다. 녹차는 덖고 비비는 과정을 여러 번으로 차 만드는 과정을 끝낸다. 보이차는 덖고 비비는 과정은 한 번이고, 햇볕에 말려서 만든다는 게 녹차와 다르다. 햇볕에 말려 만들어진 찻잎은 쇄청모차晒靑毛茶라고 하고 이 상태로는 보이차로 유통되지 않는다.
쇄청모차는 포대에 넣어 보관하고 보이차의 원료로 판매된다. 포대에 든 쇄청모차는 그 해에 긴압되어 보이차로 판매되기도 하지만 창고에 보관되어 몇 년 뒤에 긴압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보이차는 포장지에 모차로 만들었던 해와 긴압한 해를 따로 기입해서 원료인 쇄청모차의 생산연도가 몇 년이 지난 차인지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차를 만드는 과정으로 보면 보이차는 쇄청모차가 중간 단계이고 긴압해서 덩어리차로 만들어져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쇄청모차는 만드는 과정에서도 기술적인 차이가 나겠지만 그보다 찻잎에서 품질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보이차는 산지, 차나무의 수령樹齡, 찻잎을 따는 시기를 살펴 차의 가격을 판단하게 된다.
쇄청모차를 써서 만들어지는 보이차는 생차와 숙차, 두 종류이다. 생차는 쇄청모차에 쐬어서 틀에 넣고 압력을 가해서 모양을 잡아 만든다. 가장 일반적인 모양은 357g 병차와 250g 전차인데 200g 병차나 1kg 대전차를 만들기도 한다. 물론 쇄청모차를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숙차도 긴압차의 모양과 크기는 생차와 같다.
생차로 만드는 쇄청모차의 원료는 고급 찻잎이다. 관목형 밀식 재배차인 대지차라고 해도 어린잎은 생차를 만들고 큰 잎으로 숙차를 만든다. 고수차로 통용되는 산지를 차이름으로 쓰는 산토차는 주로 생차로 만든다. 어린잎이나 산토차로 생차를 만드는 건 차의 향미가 빼어나기 때문이다. 찻잎의 성분에서 폴리페놀 보다 아미노산 비율이 높은 이른 봄 차는 고급 생차가 된다.
그런데 그 해 만들어서 마실 수 있는 고수차와 다르게 대지차 생차는 쓰고 떫은맛이 많아서 최소 십 년, 그 이상 묵혀야만 마실 수 있다. 그래서 1973년 숙차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생차뿐이었던 보이차는 중국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발효법을 개발해서 만들어진 숙차는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보이차가 세계적인 차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다음의 보이차 부흥기는 고수차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장기 보관이 가능한 후발효 차인 보이차는 오래된 차일수록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다. 중국의 자본이 보이차로 유입되면서 향미가 빼어난 차 산지로 집중되었고 찻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고수차로 만든 생차는 투자 수요에 공급이 달리면서 높아지는 가치에 일약 중국차의 기린아로 부상하게 되었다.
숙차는 누구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보이차이다. 숙차가 부담이 없다는 건 쓰고 떫은맛이 적어서도 그렇고 가격도 너무 싸다는 점이다. 숙미가 빠진 5년 정도 된 보이차 전문회사 대익 숙차가 보이차 가격이 올랐다는 지금도 357g 병차를 3만 원 이하로 구입할 수 있다. 숙차는 다른 차류와 다르게 속을 따뜻하게 해 주고 잠자는 데도 지장을 주지 않는 보양차라고 할 수 있다.
생차는 우선 가격에서 차를 구입하는데 혼란을 준다. 숙차는 원래 가격이 높지 않아서 두 달은 거뜬하게 마실 수 있는 한 편에 5만 원 이하로 구입해도 좋다. 그렇지만 생차는 가격만큼 만족도가 높다고 볼 수 있는데 후발효 차라는 함정에 빠져 구매량이 많아지게 된다. 7편이 들어있는 한통 가격을 숙차 가격으로 유혹하면서 오래 묵히면 가치가 오른다는 말에 구매하고 만다.
숙차도 지금 마실 수 있는 보이차로 개발되었으니 생차도 그런 필요로 구입해야 한다. 지금 마실 차로 구입하려면 생차는 숙차의 몇 배를 지불해야 한다. 생차는 발효되지 않은 쇄청모차로 만들기 때문에 지금 마실 수 있으려면 고급모료를 써야 한다. 그래서 숙차와 다른 생차의 고유한 향미를 즐기려면 그만한 찻값을 지불해야 한다. 산지를 차 이름으로 쓰는 오래된 차나무 찻잎으로 만드는 고수차는 묵히지 않아도 만든 그 해부터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숙차는 대엽종 찻잎의 쓰고 떫은맛을 줄일 수 있는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래서 숙차는 값이 저렴한 찻잎을 써도 부드럽고 단맛이 좋은 차가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숙차는 누구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데 생차는 개인 취향에 맞는 차를 찾아야 즐겨 마실 수 있다. 비싼 차라야만 내 취향에 맞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입에 맞는 차는 싸게 구입하기 어렵다.
보이차의 황제라고 하는 노반장이나 빙도노채 차는 누구나 몇 편씩 가지고 있다. 진품이라면 선뜻 구입할 수 없는 차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수령 백 년 이상 고수차로 봄차라면 노반장, 빙도노채는 가격이 얼마나 할까? 사실 수령 백 년 이상 고수차는 생산량이 한정되어 유명 산지 차는 우리나라에 들어올 게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보이차로 차 생활을 즐기려면 숙차는 데일리 차로 부담 없는 가격으로 마실 수 있다. 숙차의 향미가 구별되기 시작하면 생차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단계에 왔다고 봐도 되겠다. 생차는 고수차로 마시는 게 좋은데 숙차보다 비싼 값을 지불해야만 지금 마셔서 만족할 수 있는 차를 구입할 수 있다. 보이차가 후발효 차라는 건 묵혀야만 마실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유효 기간 없이 오래 두고 변화되는 향미를 음미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숙차는 한 편에 3만 원이면 족한데 생차는 고수차 한 편에 30만 원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인다면 보이차 생활 레벨이 2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