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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Dec 11. 2024

대지에 집을 앉힌 배치도에서 길택吉宅이 보인다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 '단독주택 인문학' 14

집터를 확정했고 설계자인 건축사도 정해졌으면 집 짓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집터는 법적 건축용어로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라는 의미로 대지垈地라고 한다. 건축 설계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지에 건물을 놓는 배치 작업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은 건축사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건물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집을 쓰는 효용성이 크게 달라지므로 건축주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집 짓기에서 필요한 전문가는 건축설계와 감리, 행정 업무는 건축사가 되고 공사는 시공자가 된다. 여기서 집 짓기를 전문가가 보는 관점과 집을 쓰게 될 건축주와 가족들의 입장은 다소 다를 수가 있다. 건축 설계 단계에서 건축주가 지나치게 관여하게 되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탓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공사도 그러해서 건축주의 참여가 지나치면 사공의 역할을 하지 못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렇지만 안이 정해지는 건 건축주의 승인이 떨어져야 하니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은 가져야 한다.


집짓기 과정에서 건축주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집 짓기의 모든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건축주이다. 이 말은 건축주가 집 짓기에 관여하는 전문가를 정했으므로 결국 집은 그들의 역량만큼 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집을 지어본 경험이 많은 건축주는 자신의 손발 역할만 해줄 사람을 찾을지도 모른다. 또 전문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축주는 높은 역량을 가진 건축사나 시공자를 심사숙고해서 찾을 것이다.  

   

집짓기 과정에서 건축주의 역할이 어떠해야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자신과 가족들이 바라는 집을 설계하고 시공할 수 있는 최적의 전문가를 찾아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건축주가 설계와 시공에 지나치게 관여해서 콩 놔라 팥 놔라 한다면 좋은 집 짓기와는 멀어지고 만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이렇게 살고 싶은 집’이라는 명확한 명제를 제시하는 건 오로지 건축주의 몫이니 그 부분만은 전문가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필자가 설계해서 지은 단독주택 심한재 집들이 자리, 건축주는 집 짓기의 과정을 촬영하고 그 자료로 영상을 만들어 집짓기에 참여한 관계자들과 그동안 진행되었던 일을 돌아보고 있다.

     

집은 건축사의 작품으로만 볼 수는 없으나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설계해 주면 좋겠고, 시공자는 집을 짓는 수고만큼 이윤을 챙기는 건 당연하지만 백년가로 살 수 있도록 성실하게 공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건축주는 설계와 공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예산과 일정이 포함된 지침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건축주가 정한 예산과 일정, 집에 대한 생각으로 작성된 지침이 전문가들의 작업 범위가 될 것이다.     


우리집을 짓는 데 참여할 전문가가 그들의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게 하려면 건축주의 지침과 기준이 뚜렷하고 명확해야 한다. 하지만 건축주는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으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정하는 것이 온당하다. 그 전문가는 건축사가 되어야 하며 과정은 건축설계의 첫 단계인 기획 설계에 해당된다. 그래서 건축사를 선정하는 건 집 짓기의 첫 단추를 꿰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겠다.  

   

대지와 건물의 관계를 살펴 쓰임새 있게 짓는 우리집     

 

대지가 마련되었고 건축사를 선임했으면 이제 그림을 그리는 데 비유하자면 스케치에 해당할 배치도와 평면도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대지는 넓은 데 집을 작게 지을 수도 있겠고, 그 반대로 지을 집에 비해 대지가 작을 수도 있다. 전원주택은 전자에 해당되고 도시주택은 후자가 될 것이다. 넓은 대지는 건물을 앉히고 남은 터에 어떻게 외부 공간을 활용해야 할지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며, 좁은 대지는 건물과 주변 여건의 관계에 세심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실내 공간만 쓰는 아파트와 다르게 단독주택은 외부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주거 생활의 질이 좌우된다. 외부 공간의 쓰임새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지은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못한 집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요즘 조립식 주택으로 공장에서 만들어 현장에 설치하는 단독주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집을 지으면 집터의 여건을 살피지 않으니 내부 공간만 쓰게 된다. 그러면 외부 공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조선시대 한옥을 대표할 수 있는 양동마을 관가정, 건물은 집터의 가운데에 놓고 내부 공간에 대응하는 기능을 부여한 마당을 연계해서 담장 안의 모든 영역을 아울러 집으로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단독주택은 외국의 집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차이는 확연하게 다르다. 고건축에서 중국과 일본의 주택은 우리 한옥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공통점을 굳이 찾으라고 한다면 목조와 기와를 쓰는 재료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단독주택의 원형은 한옥이며 그 전통을 이어서 지금의 생활 방식을 적용하면 만족할 수 있는 집에 살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고건축을 살펴보면 우리 한옥에 비해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한옥은 건물만으로 주거 생활을 했던 게 아니라 마당이라는 기능성 외부 공간을 절묘하게 썼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한옥은 건물의 규모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작아도 집의 쓰임새로 보면 효용도에서 특징이 두드러진다. 한옥을 제대로 아는 건축사가 이 시대의 한옥으로 우리집을 설계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평면도는 내부 공간, 배치도는 외부 공간     


도시 주택의 외부 공간에 대해서는 이어서 쓰겠지만 마당을 쓰는 단독주택은 외부 공간이 아주 중요하다. 외부 공간의 쓰임새를 내부 공간과 연계해서 설계하게 되면 건물의 규모가 크지 않아도 다양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우리 한옥을 살펴보면 내부 공간과 이어진 다양한 기능의 마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랑채와 사랑마당, 안채의 대청마루와 안마당, 지금의 주방인 정지와 정지마당 등 실내 공간에 기능성 외부 공간이 함께 하고 있다.     


정원과 마당은 전혀 다르다. 정원은 조경 요소가 채워진 외부 공간이며 마당은 비워져 있어 각각 다른 쓰임새를 가진다. 비워진 공간이라 채울 수 있는 여지를 가진다고 보면 되겠다. 고건축에서 중국의 집은 건물 위주로 지어 외부 공간은 중정을 두어 동선과 채광을 담아낸다. 또 일본집은 건물 따로 정원 따로라고 보면 되는데 일본이 정원 문화가 발달된 이유이다.    


 

한옥을 모티브로 단독주택을 설계하는 필자의 주거 철학을 반영해서 지은 단독주택 심한재 설계 과정, 대지의 한가운데 건물을 배치하고 다양한 기능이 부여된 마당이 내부 공간과 연계된다


우리집을 지으면서 건물의 배치를 외부 공간의 쓰임새를 살펴 다양한 마당을 내부 공간과 연계하면 한옥의 전통을 이은 이 시대의 한옥이 된다. 거실은 큰 마당과 하나가 되고, 주방은 뒷마당과 연계시킨다. 테이블이 있는 자리는 테라스와 연결하면 좋고, 서재 앞에는 작은 정원을 두면 어떨까? 다양한 외부 공간의 설정은 땅을 밟고 지내는 단독주택 생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꿀팁이 된다.    

 

흔히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건물의 배치를 대지 한쪽으로 붙이고 큰 마당 하나만 두는 걸 볼 수 있다. 아파트와 다름없는 내부 공간만 쓰게 되는 단독주택은 외부 공간은 쓰임새가 없어서 잔디 관리에 한 여름 햇볕을 받으며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배치도를 작업하면서 평면도의 각 공간이 외부 공간과 어떤 관계 맺기를 하는지 살피면 우리집을 지어서 어떤 일상을 보내게 될지 알 수 있다.  



        

집터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캔버스와 같다. 정방형, 장방형, 원형에서 크기도 다르고 긴 장방형은 구도를 다르게 잡아야 할 것이다. 집터도 그러해서 남향과 조망이 다르면 그에 따라 평면도가 다르게 나오고, 대지의 형상에 따라서 평면도 작성에도 제한이 따른다. 대지에 높낮이가 있으면 이를 극복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며 집의 외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집터는 우리집을 짓는 바탕이라서 구입을 결정하기 전에 건축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조망이 아무리 좋은 땅이라고 해도 남향집을 지을 수 없다면 우리집으로 적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바람이 세게 부는 땅은 햇볕이 잘 드는 땅보다 못하고 너무 넓은 땅은 집을 유지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물 좋고 정자 좋은 땅이 없다지만 부족한 조건을 잘 극복하면 다시 없이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건축사의 진정한 능력은 대지를 잘 살펴 우리집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겠다. 그래서 건축사의 선정에 온 힘을 기울이면 집 짓기에서 큰 걱정을 덜 수 있으니 책사를 잘 두어 천하를 통일한 유방 같은 건축주가 되면 좋겠다.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 '단독주택 인문학' 14

원문읽기 :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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