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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Dec 13. 2024

고수鼓手 한 명이 열 명의 명창名唱을 키운다

눈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까지 쳐주는 사람이 있는가?

▲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법 보유자 정철호 선생. 선생의 얼굴에 깊이 파인 주름이 모진 세월을 말해 준다. (사진제공: 한국판소리고법보존회) 출처 : 천지일보(https://www.newscj.com)



얼쑤~~!!!

좋구나~~~!!!

소리꾼이 노래를 하는 중간중간에 고수가 추임새를 넣는다. 소리하는 자리에 소리꾼만 보이고 고수가 하는 역할을 소홀히 보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처럼 고수의 역할은 무대에서 절대적이라고 한다. 아무런 무대 장치 없이 소리꾼 한 사람의 소리로 진행되는 자리에서 청중의 감동은 고수의 북장단과 추임새로 결정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고수의 장단과 추임새에 따라 소리의 효과가 달라지기에 그 역할이 중요하다. 따라서 일고수이명창이라는 말까지 있다. 고수는 북채를 쥐는 법, 북통을 놓는 위치, 왼손을 쓰는 법, 바른손과 팔을 놀리는 법, 앉은 자세와 시선의 움직임 등의 기초에서부터 추임새 넣기, 각내기, 거두고 늘이기, 등배 가려 치기, 반각 치기, 붙임새 가려 치기, 북가락 넣기 등의 고법을 익혀야 한다. -출처 : 다음 백과


판소리명창 왕기철, 시각장애인 고수 조경곤 / 사진 출처  ; 2012 우리 가락 우리 마당 일요국악상설공연


오래전에 보이차 카페 정모에 참석했던 적이 있었다. 카페지기는 그 지역의 유지여서 참석했던 회원 수만큼 가수들을 초대하는 능력을 보였다. 모임에 참석했던 가수들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무명 가수였지만 한 사람은 한때 주목을 받았던 '이박사'였다. 참석자가 열 명 남짓이었고 가수도 그 정도였으니 노래를 하는 가수나 공연을 보는 회원들의 분위기도 흥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박사의 무대는 이런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스무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데다 모임 장소도 넓지 않았지만 그의 신명 나는 공연에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가 몇 곡을 메들리로 부르고 나서 내게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나는 처져 있는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조금 오버해서 박수도 크게 치고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었다. 


"선생님이 계셔서 그나마 노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먼저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을 꾸짖듯 힘주어 얘기했다. 


"가수는 청중의 수가 몇인지를 따지면 안 됩니다. 단 한 사람의 청중 앞이라 해도 수백 명과 다름없이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가수라고 할 수 있지요. 가수가 청중을 따져서 노래한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을 겁니다."


그의 이런 지적에 다른 가수들은 몸 둘 바 몰라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거듭 고맙다고 하면서 가수는 청중의 반응에 힘입어 노래를 한다고 했다. 가수가 아무리 열정을 담아 노래를 부른다고 해도는 청중의 반응이 없다면 얼마나 힘이 빠질까? 우리도 살아가면서 내가 하는 일, 어떤 자리에서 하는 말에 주목해주고 들뜬 반응을 기대한다. 들어주는 사람도 드물지만 추임새까지 넣어 준다면 사람이 얼마나 고마울지는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에 처세의 지혜가 들어있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걸 넘어 눈을 맞춰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추임새까지 넣어두는 사람이 있으면 눈물 나게 고마울 것이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왜 없냐며 탓하기보다 나는 누구의 말에 그렇게 공감해 본 적이 있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sns에 글을 올리는 사람은 독자의 반응을 기다린다. 좋아요 클릭수나 조회수로 독자의 반응을 체크하지만 진정한 반응은 분명 댓글이라 하겠다. 댓글도 잘 읽었다는 형식적인 내용으로는 교감이 생기지 않는다. 글을 정독해서 글 쓴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몇 줄의 문장으로 올려주는 댓글을 대하면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모티콘으로 주고받는 대화마저 어려운 요즘 사람의 관계에서 너무 과한 바람을 가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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