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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반성하게 하는 차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차는 다시 마실 수 없는 차

by 김정관

제가 보이차를 몰랐던 때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제가 다니는 절 주지스님께 벽돌 모양으로 생긴 차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녹차만 마시던 때라 보이차라는 말만 듣고 뜯어내 우려 마셔 보았습니다.

탕색은 짙은 갈색으로 예쁜데 차향도 호감이 가지 않고 맛도 특별하지 않더군요.


이런 차를 스님이 왜 주시지 하고 중얼거릴 정도였으니 그때는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버릴 수는 없으니 종이 상자에 넣어 서재 한쪽에 밀쳐놓았습니다.

보이차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되면서 스님이 주셨던 차가 떠올라서 서재를 뒤져 찾았습니다.

하지만 차맛을 제대로 알았던 때도 아니다 보니 다시 마셔보아도 감흥이 없었습니다.


보이차를 오 년 정도 마시면서 차맛을 음미할 정도가 되니 그 차의 진가를 알 수 있더군요.

비록 숙차지만 스님께서 좋은 차라고 제게 선물했을 텐데 그때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였던 것이지요.

차를 선물 받고 거의 십 년 가까이 되어서야 가치를 알게 되다니 스님께 송구스럽습니다,

숙차의 향미에서 엿기름 맛이 나는 차를 제일로 치는데 숙미숙향도 없어진 데다 단맛이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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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이미 다 마셔가면서 너무 좋다고 감탄했지만 가치를 뒤늦게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요?

숙차라서 찻값으로는 비싼 차는 아니겠지만 향미를 받아들이고 나니 그동안 대충 마셨던 게 아쉬웠습니다.

생차를 늦게 마시게 되면서 무심코 마셔버린 빙도노채 한 편도 이제는 다시 마실 수 없는 차입니다.

소중한 사람은 늘 가까이 있는데 가벼이 대하다 떠나고 나면 알게 되니 모르고 지나는 어리석음을 반성합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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