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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바위 속 부처님을 보듯 받아들이는 향미

혀끝으로만 차맛을 느끼면 달고 쓴맛 밖에 음미할 수 없으니

by 김정관

경주 남산에 가면 수많은 불상이 있어서 신라인들은 그곳을 불국토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지요.

바위 속에 작은 불상을 조성해 놓은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불상은 바위를 깎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바위 안에 계신 부처님을 드러낸 것이라고...

그 불상을 조성한 불모(佛母)는 바위를 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부처님을 찾아내었다고 합니다.


보이차를 오래 마시면서 차의 향미를 제대로 알아채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걸 느낍니다.

처음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멀리하다가 단맛을 음미하려면 쓴맛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쓴맛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단맛이 더 뚜렷하게 다가오고 입 안에 청량감이 가득 해지더군요.

목 넘김에서 부드럽고 시원한 느낌이 오는 걸 후운(喉韻)이라는 걸 알게 되니 깊이를 알게 됩니다.


같은 차를 마시면서 사람마다 음미하는 게 다르다는 건 어디까지 음미하느냐에 달려 있지 싶습니다.

혀끝으로 오미를, 입안에서 회감을, 목 넘김에서 후운을, 몸 반응으로 차기까지 받아들이면 다를 수밖에 없지요.

차를 큰 잔에 담아 꿀꺽 마시는 사람, 작은 잔에 담아 홀짝 마시는 사람은 분명 음미하는 게 다릅니다.

또 낮에 다른 일을 하면서 마시는 차와 밤 시간에 집중해서 마시는 차는 같은 차를 마셔도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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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니 생차보다 숙차에 손이 갑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맛이 당기는 차보다 몸이 바라는 차를 마시게 됩니다.

젊었을 때는 이성적으로 분별하며 더 좋은 차를 찾았지만 이제는 감성으로 차를 대하게 됩니다.

바위를 깎아 불상을 만든다는 이성적인 작업보다 바위 안에 계신 부처님을 보는 마음일까요?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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