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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희 Feb 08. 2024

글, 흔적

어느 날, 눈길을 일흔이 넘은 엄마와 걸었다. 눈 밑에 얇게 얼은 얼음이 위험해 보였다. 앞장을 서서 씩씩하게 계단을 걷는 내게 뒤에서 오는 엄마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란다.

마흔이 넘은 딸이 넘어질 까봐 일흔 살이 넘은 엄마는 그게 걱정인가 보다.


나는 엄마한테 항상 서운한 게 많았다. 딱 꼭 집어 뭐가 서운한지도 말하기도 어려웠다. 괜한 서러움? 자기 연민? 뭐.. 그런 게 있었다.

가끔씩 고슴도치처럼 톡톡 쏘면서 나의 뭔지 모를 서운함을 엄마에게 표현했던 것 같다.


눈밭에서 일흔 노모가 마흔의 늙은 딸이 넘어질 까 염려하는 마음만으로 마음속의 꽁꽁 얼었던 얼음 조각.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은 그것이 살며시 녹아버린 느낌이다.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렸지만, 살가운 딸이 되기 좀 어색하다. 그래서 습관처럼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음식 할 때는 꼭 환기를 시키라고! 옷 입을 때 톤을 좀 맞춰 입으라고! 식사 때마다 계란이라도 꼭 부쳐 드시라고!


며칠 전 엄마에게 글을 좀 써보라고 종용했다. 삶은 영원하지 않으니 뭔가를 남겨달라는 의미다.

엄마의 원래 모습이 궁금하다. 딸의 시선으로 본모습 말고, 한 여자의 인생 이야기가 궁금하다.


내가 글을 쓰는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나의 아이에게 엄마의 흔적을 남겨주고 싶은 것도 하나 있다. 우리는 24시간 붙어서 살지만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추억을 가지고 사는지 의외로 잘 모른다. 숙제는 했는지, 점심 메뉴는 뭔지, 머리는 감았는지 확인하지만 진짜로 서로를 확인할 겨를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아이가 조금 더 커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아이를 조금 더 알 수 있을 텐데... 나에게 보여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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