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를 보고
두 달간의 아이 방학을 끝내고 드디어 자유시간이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지난 한 달이 일 년 같았다며 지난 일들을 담담히 이야기해 주었다. 여러 이야기 중에 내 가슴을 가장 답답하게 했던 것이 아들과 아버지의 갈등에 대한 부분이었다.
나는 딸만 두 명인 집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친구의 이야기가 꽤나 생경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도 남편과 아들이 있다. 2년 전 여행지에서 불안도가 높은 남편이 정신없고 답답한 상황에서 갑자기 히스테리컬 한 신경질을 부린 적이 있었다. 나와 아들은 그런 아빠의 기세에 눌려 꼼짝 못 했고, 아들은 그런 아빠의 비합리적인 태도가 불만스러운지 혼자서 중얼중얼거렸다. 이것으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남편은 회사생활의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원래 예민한 성격이 극에 달했던 것 같았다. 천만다행으로 남편은 꽤 긴 휴가 비슷한 기간을 보내면서 다시 순한 재질로 돌아왔고 아들과 갈등을 빚는 일은 아직까지는 없다. 사춘기 아들도 아빠 옆에서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어 아직까지 갈등이 없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친구의 답답한 상황을 공감하면서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게 좀 안타까웠다. 친구 속 시원하라고, 또 내 속 시원하라고 듣는 내내 친구의 남편 욕을 살벌하게 해 주었다. 물론 친구의 시점으로 바라본 관계로 그 친구의 남편은 억울할 수도 있긴 하겠다. 뭐, 뒤에서는 나라 님 욕도 한다는데, 그 깟 욕이 대수랴.
집에 돌아와 뻗어버렸다. 친구의 스트레스가 전해진 건지 몸이 기진맥진했다.
주말 동안,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를 다시 봤다. 자신의 결핍을 어떻게 해서든 자식에게서 채우려고 한 아버지 영조의 강압, 또는 지나친 사랑, 또는 집착이 한 사람(사도세자)을 병들게, 또는 죽게 만들었구나 싶었다. 특히나 왕가에서의 특수한 상황으로 아버지 영조의 폭주(아들에 대한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를 자제시킬 존재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사도세자가 그 막강한 압력을 그대로 당하니 엇나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 부담과 그 무게가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너무 안타까웠다. 아버지 사도세자보다 더 멘털이 강하고 영특한 어린 정조는 이상한 할아버지 영조의 어려운 질문에도 현명하게 대답하며, 아버지 사도세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진다. 아버지 영조와의 갈등으로 한바탕 살육을 저지르려던 사도세자가 아들 정조의 말을 듣고 모든 걸 멈춘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도 중요했던 것이었으리라.
오은영의 결혼지옥을 자주 보는 편인데, 문제의 시발점과 종착역은 언제나 마음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서로에게 비수 돋는 말들을 끝도 없이 쏟아낸다.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한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듣게 하기 위해, 또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소리치고, 싸우고, 울고 난리법석을 떤다. 그럴수록 상대는 의아해질 뿐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제발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솔직해지자. 사랑한다고! 사랑하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었다고. 그 방식은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선택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