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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Dec 04. 2023

7년 차인 줄 알았던, 20년 차 사진가

다시없을 오늘을 기록하는 사진이니까.





자연스럽게 관찰자가 된 사람



사진을, 아니 카메라를 처음 접한 경로는 초등학생 시절. 그땐 일회용 카메라가 성행했습니다. 카메라의 보급이 많아 집집마다 캠코더나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지만 필름을 따로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잃어버려도 부담 없는 가격이 큰 메리트가 있었던 것 같네요. 콤팩트 카메라가 보급화 된 건 조금 더 후의 일이고요. 지금처럼 필름 생산라인이 줄어들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때도 아니었고요. 그때 어머니는 제게 소풍 때마다 유인물에 적힌 준비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일회용 카메라를 손에 쥐어주시곤 하셨어요.



“이것저것 찍고 싶은 것, 다 찍어와. 남는 건 사진뿐이야.”



날도 좋고, 함께 있는 친구들도 즐겁고. 신나게 소풍을 다녀와 사진관에 필름카메라 현상 인화를 맡겼고, 사진을 찾아 돌아온 어머니의 표정이 이상했습니다.



“왜 사진에 너는 없고 죄다 친구와 풍경뿐이니?”



촬영이라기도 민망한 11살의 제가 찍어 온 사진은 유적지의 전경, 관광지에서 풍선을 파는 아저씨, 잔디 위 돗자리를 펴고 앉아 함박웃음 짓는 친구들과 소풍 도시락, 나무 사이로 뜬 구름 같은 것들이었거든요. 친구들과 어깨동무하며 웃고 있을 저를 기대했던 어머니는 온통 주변뿐인 사진들이 기대와 달라 아쉬워하셨고, 저는 어머니의 반응이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제가 한 컷 한 컷 찍어 온 그 사진들은 저의 앨범에는 담기지 못하고 사진의 주인공 머릿수대로 복사되어 주인을 찾아 떠났습니다. 아마 그 친구들의 부모님은 즐거우셨겠죠? 그다음 소풍부터 어머닌 제게 똑같은 일회용 카메라를 쥐어주며, ‘꼭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널 찍어달라고 해. 친구들이랑. 알겠지?’ 하셨어요. 전 그냥 끄덕끄덕 했고, 일회용 카메라가 허락한 필름 개수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추억해야 할 기억의 주체가 달랐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어머닌 핸드폰도 영상통화도 불가능했던 시절, 소풍에서 즐거워할 제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보고 싶었던 것이고, 전 단지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좋았습니다. 스스로 관찰자가 되기로 한 것이죠.

구도가 예쁜 풍경이, 그 앞의 모델이 되는 친구들이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어디까지나 제 기억이지만, 그 사진을 받아 든 친구들도 꽤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리액션이 오는 사진



또 번듯한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갖게 된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던 것 같네요. 제일 친해진 같은 반 친구가 dslr을 들고 있는 걸 보고 ‘아, 이렇게 어려도 카메라를 다룰 수 있구나.’ 생각했고, 이듬해 생일날 부모님을 졸라 처음 손에 쥔 미러리스 카메라가 저의 첫 카메라입니다.





그 카메라로 학교 축제에서 원하는 사람을 스냅 촬영해 주고 그 사진에 제가 그린 캘리그래피를 더해 엽서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몇 팀이 촬영하고 난 뒤 입소문을 타서 금세 북적북적한 부스를 보며 정신없이 축제기간을 보냈고, 2천 원에 판매한 사진이 쌓여 20만 원대의 매출을 기록했죠. 그 돈으로 반 회식을 했던가, 고생한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던가, 돈의 행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인화한 사진을 들고 즐겁게 뛰어가던 이름 모를 친구들의 웃음만큼은 선명히 기억납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멋있다고 해주니, 어딜 가든 카메라가 손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모델로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는데, 색보정과 인물보정을 거쳐 sns에 올리면, 친구들에게 꽤나 좋아요를 받았던 기억도 있고, 사진을 촬영해 마음대로 각색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 학교 과제도 뒷전으로 하고, 포토샵만 만지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맘 때 즈음 제게 사진은 새로운 소통의 언어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널 이렇게 보고 있어.'


하고 말해주는 무언의 전달이요.







속눈썹을 셀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보기




 어떤 친구는 제게 ‘너 만큼 날 잘 찍어주는 사람이 없어!’라는 말을 푸념처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 찍힌 사진은 전부 다른 사람인 것 같다고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잘 알고 긍정적으로 느끼는 피사체일수록 더 잘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요. '내가 보이는 대로 프레임에 담기는구나.' 그 이후로는 사람을 찍는 일이 더 즐거웠고, 제가 촬영하는 피사체에게 더 깊은 관심을 주기로 했습니다.



저는 피사체를 잘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보라' 말합니다.



몇 년 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와 카페에 마주 앉아있던 어느 날 생각했습니다. '얘가 이렇게 예쁘게 생겼던가?' 늘 이미지로만 뭉뚱그려 보던 얼굴이 눈썹 자리 잡은 모양, 눈동자의 색깔, 콧날과 입술산이 꺾인 모양 등으로 세세하게 보였거든요.


 자세히 또 가까이 보라는 뜻은 그만큼 그 얼굴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눈에 익숙한 것을 예쁜 것이라고 인식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나와 공통점이 많은 사람이, 내 가족과 닮은 사람이 더 친숙하고 예뻐 보이죠. 피사체를 자꾸 눈으로 만나며 친해져 보세요. 전과는 다른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거든요.






저는 오늘도 다양한 피사체와 대화를 나눕니다.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 한 잔, 운전하다 발견한 하늘의 구름과 노을, 곧 저의 피사체가 될 어여쁜 커플까지요. 그리고 그 반짝이는 눈을 보면 확신이 듭니다. 어쩌면 내가 가장 예쁘게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용한 확신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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