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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준 Oct 16. 2023

나무는 죽었지만 숲은 거듭났다

<SW중심사회> 2023.10

지난 4월 화창한 봄날, 서울 한복판 인왕산에서 화재가 났다. 부암동 주택가 인근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가 마침 불어온 강한 봄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능선을 향해 번져갔다. 기차바위를 넘어선 화마가 홍제동 개미마을을 덮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산불은 진화도 어렵고 회복에 장구한 시간이 소요되는 등 치명적인 피해와 상처를 남긴다. 소나무 군락지였던 산불 현장은 처참한 흔적을 남겼다. 행정 당국은 자연 복구를 염두에 둔 것인지, 지금까지 벌목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여름을 지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토양마저 시커멓게 타들어간 산기슭에 푸르름이 넘쳐나고 있다. 그동안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움츠려 있던 아카시나무, 떡갈나무 같은 활엽수가 키를 키우고, 어디선가 날아온 풀과 들꽃 씨앗들이 힘차게 싹을 틔우고 있었다. 나무는 죽었지만 숲은 더욱 풍성하고 푸르게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생명을 움트게 한다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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