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을 이유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죽지 않으려는 이유를 찾으면 된다.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다. 이는 필연적이며 결코 끊을 수 없는 연결점이다. 살아가는 이유를 모르겠다면 죽어야 할 이유도 모른다는 것이다. 죽자고 결심을 서고, 죽음의 문턱에 가보았던 자라면, 다들 삶의 의미를 찾곤 한다. 이는 왜일까.
인간은 누구나 감정을 느낀다. 삶이라는 공간 속에서 웃고, 울고, 화내며 이를 느끼고 행동한다. 그러나 삶이라는 공간의 특징은 제약이 존재했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느끼고 행동하는 것에서는 분명한 한계점이 존재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욕망, 그와 함께 따라오는 인간들의 촉망과 절망. 모두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우리는 결코 이루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태어남과 동시에 삶의 주체는 나이고, 내가 살아가는 곳이지만, 삶이라는 공간은 우리를 가두고 불행하게 만든다. 상상이라는 허상의 공간에서 우리는 맛보았다. 욕망과 촉망, 그리고 타인의 절망. 누구나 똑같을 것이다. 삶의 주체는 나이니깐. 상상이라는 공간을 벗어난다면, 우리는 그저 삶에 갇힌 노여운 인간일 뿐이었다. 끊임없이 상상하는 행위는 살아갈 원동력을 허망하게 만들고, 이내 망각시킨다. 죽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빈 껍데기 같은 삶이다. 그렇다면 상상은 결코 나쁜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 죽지 않으려는 이유를 찾아준다. 그리고 살아가게 만든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삶이라는 세상 속에서 실현시키고자 한다. 그렇게 인간은 제약을 깨고 삶을 이겨낸다. 그러나 모든 제약을 이겨낼 수는 없다. 나의 삶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삶에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들이 다분하다. 어떠한 행위를 해도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배웠다.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삶이라는 공간을 넓히고 상상 속 공간에서 끄집어 온 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이 존재하는 반면, 생각보다는 쉽게 접근 가능한 공간도 많을 것이다. 아니, 이는 꽤 많이 존재할 것이며, 그렇게 넓어진 삶은 더 큰 욕망을 가지고 내가 만든 공간 속에서 상상과 겹쳐가기 시작한다. 삶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죽을 이유를 찾은 당신은, 죽지 않아야 할 이유도 이미 찾았다. 왜 혼자만의 세상에 살아가는가. 그것은 진정한 삶이라는 공간이 아니다. 나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왜 타인에 의해 자신의 세상을 단절하는가. 이미 살아갈 이유도 찾은 당신은, 상상이란 공간 속에서 이루어낸 모든 것을 삶으로 가져올 수 있다. 부디 삶의 공간 속에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