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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고양이 Jun 08. 2021

파티시에는아니지만 매일 오븐을 돌려보았습니다.

밥 주는 양과자점


베이킹 트레이가 늘 조리대 한켠을 차지하는 일상.



나는 아마추어 홈베이커다. 10년 넘게 베이킹을 했다. 물론 했다고도 할 수 있고, 안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이런 취미가 늘 그렇듯, 몇 번 손을 대고 나면 '나 베이킹해봤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 베이커야'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영역에 선다. 취미라는 것도 발을 어느 정도 담그느냐에 따라 스스로 부여하는 등급 같은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게 주말마다 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이들은 약간 부담스러운 복장으로 온갖 장비를 다 갖춘 채 아주 먼 길을 달린다. 그 둘의 취미를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하기에는 부담이 좀 따른다. 그것으로 돈을 벌지는 않으니 아마추어는 맞지만, 현대사회의 취미라는 것은 일종의 레벨이 있나 보다. 더군다나 베이킹은 기술이다. 자격증이 있고, 프로 파티시에들이나 블랑제들이 있기 때문에 '쿠키를 구워봤어'로 '나는 취미가 베이킹이야'라고 하기 어려워진다. 나의 베이킹도 그랬다. 1일 1 베이킹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미니 바게트로 차린 한상. 저걸 한 번에 다 먹진 않아요.

현대인에게 취미란.


본업인 그림자 노동이나 독박 육아에 대한 주접을 한편에 미뤄놓고 돌이켜보자면, 베이킹은 '만드는' 일이지만 진득하게 만들 수가 없었다.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와 '생활'이라는 것이 짓누르는 무게 때문에 한 번에 몇 시간이 걸리는 복잡한 디저트나 빵 따위의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밤중에 모든 일이 끝난 뒤 날을 새고 해야만 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직장인이나 그림자 노동자인 나나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베이킹을 시작하면 재료 준비부터 마무리 뒷정리에 이르기까지 귀차니즘을 이겨내는 일이 쉽지 않다. 생활에 치여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이 한계치에 닿는 날이면 눈에 띄는 베이킹 클래스를 신청하는데 돈을 쓰는 것으로 근근이 해결했다. 


생각보다 베이킹 클래스를 듣는 일도 중독성이 있어서 나름의 레시피를 가진 분들의 프로페셔널한 손놀림과 노하우를 배우는 것은 오장육부에 전류가 통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렇게 들고 온 결과물은 '나도 뭘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닿게 해 주었고, 그 디저트들을 보고 감탄하며 먹어주는 주변 사람들을 보는 것도 힐링의 일부였다. 클래스에는 전국 각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분들이 모여들었고, 집구석에서 방랑하던 내게 그 현장의 이야기들은 살아있는 날것이자 너무도 탐욕스럽게 끌어안고 싶은 남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스모어 쿠키와 딸기 초코롤



'아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


그렇게 10년을 흘려보냈다. 가끔씩 이만큼 수업비에 투자를 했으면 내가 배운 그날 수업의 퀄리티가 내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학창 시절 대치동의 난다 긴다 하는 강사의 수업을 들으면 내가 뭔가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듯이 말이다. 하지만 메타인지라는 현실이 있다. 정말로 공부를 잘하던 아이들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했고, 그래서 모르는 것만 골라서 채워 넣었다. 그것은 실력이 되었지만, 자신의 수준이 그 정도가 아니었던 아이들은 강사의 연봉을 두둑이 챙겨주었을 뿐이다. 


내게 베이킹도 그러했다. 대규모의 베이커리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우리가 프랑스인도 아닌데 강릉 앞바다까지 여행을 가도 유명한 빵집을 찾게 되는 시대. 그런 시대에는 점점 제품들 퀄리티가 올라가고 다양성도 확보된다. 그러니 소비자 입장에 서있는 나 같은 베이킹 하수들은 눈만 높아질 따름이다. 유행에 관해서는 SNS가 촉을 세워주었다. 수업에 투자한 금액만큼 나의 실력이 올라갔을 거라고 믿는 착각과 점점 높아진 기준선 때문에라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진짜 하는 것'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하는 푼수가 되었다. 


그 사실을 오븐 앞에 이따금씩 설 때마다 처절히 깨달았다. 그러나 무언가 좋아하는 일을 습관처럼 만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허기는 늘 상상 속에서는 사람을 안달 나게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일이든 귀차니즘과 싸워야 하는 것이 현실. 좋아하는 것과 좋아 보이는 일과 진짜로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발견하는 차이점은 진짜로 하고 싶어 진다면 귀차니즘도 극복하게 되는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부작의 끝을 보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 매일의 베이킹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베이킹은 장비빨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만큼 비싼 취미라서 10년간 모아놓은 도구들만도 어마어마했고, 그런 장비들을 두고 귀차니즘에 장렬하게 패배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건 매우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서 흘려보낸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나는 취미의 끝이 어디인지 보기로 했다. 내가 과연 1만 시간의 법칙이 말하는 대로, 매일매일 쉬지 않고 시간을 쏟아붓는다면 뭐가 되는지 실험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말차 수플레 치즈케이크

1일 1 베이킹을 시작하다.


그렇게 매일의 베이킹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물론 그 사이에 부동산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잃어버린 몇 달이 생겨나긴 했지만, 내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다. 여러 가지 베이킹 클래스를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학원은 다니면서도 공부는 안 하는 애처럼 연습이 부족했던 나는 거의 독학이나 다름없는 길을 걸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도 한때 케이크 만들어보고 마카롱도 잘 만들고 그랬어!라는 군대 무용담 같은 이야기를 60 먹은 후에 하고 싶지는 않아서 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도' 베이킹을 한다는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에 빵과 디저트는 쌓이고 먹을 밥과 반찬은 없어서 삼식이들을 위해 독일 민족 배달민족을 불러대는 일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했다. 재료 준비와 구입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스스로 해나가는 것은 모든 것이 준비된 곳에서, 편리한 동선이 짜여진 작업실에서 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레시피와 이론을 찾아 헤매고, 기록을 하고, 벤츠급이 아닌 오븐을 이따금씩 쥐어뜯고 싸울 태세로 노려보고 있기도 했다. 집이지만 재고가 남으니 처리하고 보관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남는 재료들을 선순위로 처리해야 하는 난제에도 부딪혔다. 그 과정에서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원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좋아하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이따금씩 지옥을 맛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속에서 화가 치미는 날이 반복되었다.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생활 곳곳에도 방해 요소가 넘쳐났다. 말이 1만 시간이지 1천 시간이 되기도 전에 사리만 남을 것 같았다.








올리브 치즈 치아바타와 블루베리 치즈 크럼블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마냥 좋지 않았던 것은 모든 기술이 그러하듯, 내가 '아는' 결과물과 내가 '하는' 결과물 사이에 어마 무시한 간극이 생긴다는 점이다.  만든 것을 팔아야 하는 의무감이 있는 자영업자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영국 지하철에 타면 들려오는 "Mind the Gap"이라는 낭랑한 목소리가 뒤통수에 놀리듯이 들려오는 것 같은 자괴감을 맛봤다. 마카롱을 수판 말아먹고, 뭔가가 타거나 덜 익고, 텍스쳐가 엉망진창이거나 생각보다 수분량이 엄청난 발효빵 반죽과 싸우다가 밀가루 떡이 되어 부엌 한구석에서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나를 본 목격자가 이 집안에 몇 명 있을 정도니까. 더군다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우리는 열심히 달고나를 휘저으며 흘러가지 않는 시간을 때우고 있었지만, 외국에서는 사워도우 스타터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날마다 확인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워도우는 내게 가장 망할 빵이었다. 그러니 1만 시간이 아니라 10만 시간을 쏟아부어도 '정복'이라는 것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마카롱 지옥, 사워도우 지옥, 바게트 지옥, 슈 껍데기 지옥 등등을 지나는 동안, 나는 변했다. 뭔가가 만들어진다며 좋아하던 초보적인 단계에서는 그저 반죽이 먹을 것이 되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나 사람은 끝없이 욕구가 쌓이는 존재이다. 하나가 되면 그다음에 도전하고, 하나의 유행을 소화했는데 정신 차려보면 다른 유행이 와 있는 민감한 세상에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정복하고 싶어 진다. 


애초에 시작할 때는 매일의 베이킹을 1년 정도 하면 뭔가가 될 거라 생각했었지만, 오늘의 나는 기술이라는 것은 결국 끝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제야 예전에 내 베이킹 세계의 대부분을 가르치신 선생님이 평소에 케이크 몇 판을 쓰레기통에 처박는지 모른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수많은 카페 메뉴를 가르치시는 분이 그러한데 나 같은 아마추어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베이킹을 그만두면 그만두었지 끝나지는 않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베이킹을 향한 여정을 계속 기록하기로 했다. 뭐, 나누어 먹을 수는 없어도 누군가 나같은 사람이 본다면 밀가루 괴물과 싸우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엌이라는 몇 평의 공간 안에서는 집중하고 있는 동안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늘 아침 내 피를 거꾸로 솟게 만든 내 동거인들이 준 해탈감과 빵 반죽을 같이 버무리고 있거나,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고 베이킹 중장비를 질러버리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보상하는 충동적인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 뿐만 아니다. 하루를 공포스럽고 우울하게 만드는 모든 팬데믹 뉴스들을 객관화하는 것은 오로지 반죽과 오븐을 쳐다보는 동안 가능했다. 그건 힐링이기도 했고, 화풀이이기도 했으며, 배움이기도 했다. 세상은 쉼 없이 돌아가고 베이킹 장비가 돌아가는 소리나, 무언가가 구워질 때 이루어지는 화학작용이 가져오는 후각적 예술 같은 것들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 모든 것을 놓치기가 아까워서, 거기서 떠오른 이야기들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워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마감이 없는 일을 하는 것.


요리에 관해서라면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하나일 <줄리 앤 줄리아>에서 줄리는 말한다. '마감이 필요하다'라고. 우리는 그렇게 마감이 없어 놓쳐버린 수많은 좋아하는 것들을 회색 미련으로 남겨놓고 떠나버린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의 삶이 비참해지는 것은 때때로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다. 나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내가 건드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현타가 오는 날, 마감이 없어서 놓쳐버린 것들을 그때 그냥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를 한다. 어쩌면 그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얼마 되지도 않는 부엌을 난장판으로 어지르면서 줄리든 줄리아든 따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달리기일 수도 있고, 춤일 수도 있고, 플루트나 비보잉일 수도 있다. 집안에서 그 어떤 때보다도 많은 시간을 보낸 지난 한 해, 이 프로 사부작러는 좋아하는 사부작을 끝없이 해보기로 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내 양과자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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