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는 우리 집 고양이이다.
나와 그 녀석의 관계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음~, 뭐랄까... 옆집 아저씨와 건넛집 고양이 정도...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는 날에도, 호야는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강아지 같으면 오래간만에 보는 주인을 버선발로라도 반기러 나오려만, 이 녀석은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를 쓱~ 한번 보고 '야옹' 한마디 없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저녁 내내 안 보이다가, 밤이 되면 어슬렁 어슬렁 내 침대로 기어들어 온다. 아마도 주중에는 그 녀석이 내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누워, 아내와 한침대를 사용할 것이다. 주말이면 어쩔 수 없이 내 자리를 양보해 주지만, 여전히 아내의 다른 쪽 옆에 짝 달라붙어서 꾸역꾸역 잠을 청한다. 좁은 침대를 6킬로짜리 고양이와 서이서 나눠 쓰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 녀석이 잘 때 침대밖으로 살살 밀어봐도 꼼짝을 안한다. 그렇게라도 조용히 아침까지 잠이라도 자면 그나마 다행인데, 뭔가 불편한지, 심심한지, 배고픈지 새벽부터 야옹~ 야옹~ 하며 울어재낄 때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하~이 녀석을 어쩌지..
'호야', 2살 반, 전형적인 코리안 숏헤어다, 갈색무늬에 짧은 털, 얼굴은 딱 고양이처럼 생겼지만, 솔직히 다른 고양이보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예쁘게는 생겼다. 출생지는 안산이며, 길고양이인 어미가 낳은 뒤 두 달 정도 된 그 녀석을 우리는 분양받았다.
'20년도 코로나가 한창일 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아마 살면서 내가 가장 마음 아프게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아빠, 내일이 더 이상 기대되지 않아'라고 당시 11살이던 우리 딸이 울면서 한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이 철렁했다. 몇 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학교에도 가보고 새로운 친구들과 뛰어놀기도 하길 그렇게 기대했는데... 매일 집에서 EBS 강의만 들으라고 하니, 그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마 그날이 그날이고, 오늘이 내일이었을 것이다. 주말이라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한강 공원에서 조차 마스크를 꼭꼭 쓰고 있었어야만 했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아이들의 오랜 소원이었던 고양이를 분양받기로 결정했다.
호야를 처음 데리러 간 날, 아이들의 그 행복한 표정, 호기심, 걱정, 불안함과 함께 새끼 고양이의 귀여움과 새 생명에 대한 신기함, 새 식구에 대한 기대감들로 가득 찬 내 아이들의 그 벅차오른 감정...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호야는 본인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집사로서의 자세를 갖추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관계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새끼 고양이를 열심히 키워보겠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블로그도 찾아보면서, 울음소리에 따른 기분상태도 알아보고, 어디를 긁어줘야 기분이 좋은 지도 연구해봤다. 그래서인지 한참 동안은 서로의 '아침친구'가 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호야는 거실의 자기 집에서 자다가,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를 보면서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기도 하고, 다리 미끄럼도 타면서 고양이 간식인 '추루'를 달라고 졸라댔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여, 나도 호야를 안고 또 껴안으면서 최대한의 사랑표현을 해주었다.
하지만, 우리 관계가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아마도 장거리 비행기 여행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야와 같이 지낸 지 1년도 안되어, 우리 가족 모두 해외로 다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호야를 다시 안산의 호야 엄마한테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반대로 차마 그러지 못하고 함께 데리고 오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하여 각종 서류준비, 입출국 수속방법, 예방접종 등 여러 절차를 알아보았는데, 당시 시간도 없었거니와 코로나의 특수상황까지 겹쳐, 그 과정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냥 전문 동물병원에 맡기기로 했다.
뜨~ 악... 300만 원...ㅋㅋ 고양이 비행기 태우는데 그만큼의 비용이 들었다. 한국으로 복귀할 때까지 생각하면 총 600만 원...이 것, 저 것 합치면 '6백만 달러의 사나이'는 아니더라도 '6천 달러의 고양이' 정도는 되겠다 싶었다. '6천 달러의 고양이, 호야!'
어찌 되었건, 달리 방법이 없어 동물병원에 맡기고 우리는 먼저 해외로 나왔다. 당시 사람만 격리가 필요한 게 아니고, 고양이도 2주간 격리 후에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하여, 호야는 2주 후에 우리를 만날 수 있었다.
출국에 돈만 많이 드는 게 아니다. 비행기 도착 후 입국수속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나는 새벽 세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두 시간 거리의 공항에 가서, 각종 서류 준비등 복잡한 입국절차를 마치고 호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니 비행기가 도착하고, 저 멀리 화물 속 작은 케이지에서 호야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안도했다. '일단 살았구나...' 하지만, 비행기의 시끄러운 소리, 북적거리는 사람들, 다양한 동물들 짖는 소리 등으로 호야에게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두려움과 공포감에 녹초가 된 호야는 '야~ 옹..'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지만, 실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목이 다 쉬어서 울음소리 마저 나오지 못하는 탈진 상태였을 것이다. 그 후에도 컨베이어 벨트, 카트를 타고 몇 번의 이동을 거쳐 이윽고 내 손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나를 보고도 어떤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단지 눈만 껌뻑이고 있을 뿐... 순간, 나는 너무 안쓰럽고 미안하여 호야를 케이지에서 꺼내어 당장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 차에 태워 공항밖을 나가는 것이 우선이란 생각에 그렇게 호야와 함께 공항을 나오게 되었다. 그 뒤로 내가 몇 번 불러보아도 큰 반응이 없었다. 바로 집으로 전화하여, 아내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호야에게 들려주었다. 하지만 호야는 잠시 집중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몸을 웅크리고 꼼짝하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두 시간도 쉽지는 않았다. 당시 지역별 코로나 통제구간이 있어, 몇 개의 검문소에서 여러 가지 절차를 다시 거치고서야 겨우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호야는 다시 우리에게로 왔다. 아마 그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그 녀석은 혼자서 잠을 자려고 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독립적인 영역동물이라고 했는데, 호야는 어떻게든 사람이랑 붙어서 지내려고 했다. 쫄래쫄래 쫓아다니면서, 같이 누워있다가 TV 보다가, 놀다가 그리고 잔다.
근데, 나는 왜 안 쫓아다니냐고? 아내가 누워있으면 배위로 올라가, '골골골골' 대면서 '꾹꾹이'를 한다. 아들이 하교하고 방에 들어오면, 둘이서 창가에 삼십 분은 누워있으면서 하루 일과를 들어준다고 했다. 딸이 책상에서 공부할 때면 노트북 자판에 들어 누워 딸의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왜... 나한테는 안 오냐고? 요새는 아침에 '추르'를 준다고 해도 잘 오려하지 않는다. 도대체 내가 자기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호야는 이 사실을 알려나, 사실 내가 먹이며, 모래며, 장난감이며... 그 녀석한테 필요한 거는 다 사오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호야에게...
호야, 나도 너랑 그렇게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 다만 한 집에 살면서 아는 척은 쫌 해야되지 않냐? 그렇다고 뭐 내가 나를 팍 낮추면서 고양이 집사로서의 최선을 다할 생각도 없거든, 적당히 좀 하자, 어? 나 오면 좀 반겨주고, 내 다리에 붙어서 좀 비벼주고, 내가 다가가면 도망가지 말고, 내가 안아주면 가만히좀 있어주고, 내가 추루를 줘도 끝까지 맛있게 좀 먹고... 알았냐? 그리고 주말에는 거실에 있는 니 방에 가서 쫌 자줄래?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