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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Feb 20. 2022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재료, 시간

| 시간을 넘는 것은 시간이다 |     


가끔 역사를 읽다 보면 아쉬움이 들 때가 있다. 바로 문집이 없는 분들이다. 

우리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유배지에 갇혀 사시던 수백 년 전 인물인 정다산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도, 당시의 천재라던 김시습보다 이율곡에 대해 더 잘 아는 것도 집필이 남아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매월당 김시습, 남명 조식, 북창 정렴과 같은 분이 당시대 어떤 인물보

다 지금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문집이 적거나 없어서이다.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사셨던 퇴계, 율곡과 같은 분을 우리가 더 잘 아는 것은 문집이 있거나 많아서이다. 문집이 없으면 아무리 요긴하고 중요한 사상을 품고 계셨더라도 후대에 전해지지 않고, 그렇기에 그 좋은 가치와 생각이 더는 이어지지도 활용되지도 못한다. 반대로 당대에는 큰 영향력이 없었지만, 남겨진 문집으로 인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위인도 있다. 당시대에는 별로 실권을 잡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으나 오히려 오늘날 그 가치를 인정받는 정약전(정다산의 형이자 조선시대 어류학서인 『자산어보』 저자)과 같은 이가 좋은 예이다. 

이처럼 시간을 뛰어넘어 다른 시간으로 전해지는 것은 집필과 같이 누군가가 담아 넣은 시간이다. 시간은 들인 만큼 더 크고 넓은 시간을 낳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존재다.      


| 글 쓸 시간조차 없이 바쁜 일상 속 시간 쪼개기 |      


현대인들은 모두 바쁘다. 심지어는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까지도 모두 바쁘다. 

나는 아이를 낳고 한동안 전업주부 생활을 했는데,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가사와 육아는 깨어 있는 내내 퇴근이 없었고, 직장 다닐 때는 깨어 있는 내내 업무 생각이 머리를 빙빙 돌았다. 연령과 역할, 직업 유무와 관계없이 우리는 각자의 사정대로 모두 바쁘다. 

그런데 이렇게 바쁜데도 책을 쓸 수 있다니, 도대체 글 쓸 시간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 내나?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은 바쁠수록 만들기가 쉬워진다. 

시간을 낳는 것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바쁠수록 각성된 시간이 길어지고, 정신이 활발할수록 긴장과 함께 몰입이 잘 되어 더 함축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다. 지하철 출퇴근 중에 읽는 20분의 독서가 책상에서 읽는 20분보다 더 집중력 있게 몰입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처럼 한창 긴장되고 깨어 있는 시간을 쪼개어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몰입하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어차피 인간이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0~50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것은 아무리 멋진 작업실에 있든, 아무리 쾌적하고 환경 좋은 도서관에 있든 마찬가지다. 즉,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환경과는 상관없이 갖게 되는 인간의 한계다. 그러므로 갖춰진 환경에서 작정하고 할 때만 제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으리란 편견만 깨 버리면, 일과 중 20분씩 몰입할 수 있는 조각시간을 생각보다 많이 찾아낼 수 있다.      


| 시간을 낳는 것은 시간이다 |     


짧은 시간 몰입하는 데서 얻는 성과가 쌓이다 보면 조각시간의 가치와 활용의 즐거움을 알게 되고, 그러면 시간을 더 집약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간이 시간을 낳는 것이다. 내가 시간을 더 잘 쓰기 위해 계획을 짜고, 플래너를 쓰고, 시간 관리에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사라질 뻔한 시간을 더 많이 채굴할 수 있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그냥 제일 재미있어서 긴 줄에 서면 놀이기구를 하나밖에 못 타지만, 시간을 들여 정보를 파악하고 동선을 잘 짜면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것과 같다. 시간을 들여 계획을 짜고, 효율적인 루틴과 방법을 고안하면, 뜻밖의 조각시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바쁠수록 시간을 들여 시간을 만드는 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들인 시간 이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발견해낼 수 있다.     

      

| 조각시간을 활용한 글쓰기 |      


본업이 있는데 따로 시간 내어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전쟁 같은 하루의 일이 끝나고 나면 침대가 손짓하고 땅이 몸을 당기는데, 그런 상황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글을 쓰는 건 정말 힘들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써야겠다고 큰 마음을 먹고, 그래서 열심히 조각시간을 만든다 해도 막상 글을 쓸 만한 주변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운 것이 글쓰기이다. 사실 최상의 컨디션이라도 어려운 것이 글쓰기가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하면 조각시간을 활용해 본업과 병행하며 글을 쓸 수 있을까?      

예전에 2년 반 동안 540쪽 분량의 전문서적을 쓴 적이 있었다. 세종 국책연구단지 내 한 연구원의 학술출판팀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였다. 온종일 연구보고서를 들여다 보고, 통계가 가득한 전문서적 원고와 씨름하는 게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원고와 씨름하고 나면 퇴근 후에는 모니터는커녕 글자가 보이는 것이 모두 보기 싫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노트북을 켜놓고 글을 쓴다든가 하는 일은 평일에는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출퇴근과 점심·저녁 식사 후 산책 시간을 이용한 글쓰기였다. 필요한 자료는 e-book으로 구매하여 출퇴근 시 차 안에서 들었고, 필요한 부분은 바로 캡쳐해서 주말이면 폴더를 만들어 정리해 두었다. 점심과 저녁 식사는 최대한 빨리 끝내고 남는 시간에 산책을 나갔다. 처음엔 점심 식사 후 사람들과 차 한잔 마시며 도담거리지 않는 나를 많이 이상하게들 보았지만, 한 달쯤 지나고 나니 모두가 적응했다. 가끔 꾀가 나서 산책을 나가지 않을 때면 오히려 주변에서 빨리 산책을 나가라며 나의 루틴을 응원해주었다. 

산책을 나가서 맑은 바람을 쐬며 걷다 보면 평소에는 잘 생각나지 않던 문제들이 의외로 술술 풀렸다. 처음엔 주변 바람을 느끼다가 익숙한 산책로에 들어서면 최대한 빠른 속도로 걸었다. 그렇게 속도를 높이고 마음을 비우다 보면, 오랫동안 고민하던 업무 문제, 글쓰기에서 막혀 있던 부분 등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술술 풀어지기 시작했다. 생각이 떠오르면 생각을 붙잡고 계속 빠져들다 보면 무릎을 탁 칠 만한 좋은 생각과 좋은 문장이 떠오른다. 그렇게 매일 똑같이 반복하는 루틴을 만들고 시작하면 처음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한 달 두 달 반복하다 보면, 산책을 딱 나서는 순간 생각회로에 불이 번쩍 켜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업무모드’란 스위치가 꺼지고 ‘사색모드’라는 스위치가 켜지는 느낌이랄까. 

걸음에 속도를 올리면 생각의 속도도 빨라지고 그렇게 스쳐가는 여러 생각 속에서 지금 내가 잡고 있는 글쓰기 주제와 관련한 꼭 필요한 생각을 붙잡는다. 어쩔 땐 좋은 구성이 생각나기도 하고, 또 어쩔 땐 좋은 문장이나 맥락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면 바로 스마트폰의 녹음기를 켜고 그 순간의 생각을 얼른 녹음한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e-book을 캡처한 사진파일 정리와 함께 녹음된 내용을 텍스트화하여 함께 노트북에 정리해 둔다. 

글은 앉아서 열심히 생각해도 술술 나오지 않을 때가 태반이다. 특히나 짧은 글쓰기와 다른, 책을 위한 글쓰기는 더 깊이 있고 참신하며 더 긴 글을 요구한다. 의외인 것은 글쓰기는 작정하고 앉아서 머리를 쥐어 잡고 생각을 뽑아낼 때보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산책 속에서 튀어나온 생각의 파편들을 엮어가는 게 더 깊이 있고 참신할 때가 많다. 

물론 주말이 되면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몇 시간씩 나만의 글쓰기 시간을 확보하여 집중해서 무언가를 써나간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일상 속에서 떠오른 생각 메모들을 기반으로 할 때가 많다.      


| 일상 속 생각을 잘 잡아내는 것은 쉬운 글쓰기의 요령 |      


깊이 사색에 몰입할 수 있는 반복된 루틴을 만들고, 짧게라도 사색에 몰입하는 시간을 꾸준히 갖는 것, 이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때 떠오른 생각들은 책상에 앉아서 끙끙거리며 떠올리는 생각보다 훨씬 신선하고 깊이가 있을 때가 많다. 그리고 이처럼 사색에 몰입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의외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점심 식사 후, 저녁 식사 후, 혹은 출퇴근 시 등... 자신이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일상 중에서 짧은 조각시간을 만들고, 그 시간만큼은 사색에 풍덩 빠져들겠다는 의지를 가지면 충분하다.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반복되는 사색으로의 몰입, 거기서 솟아나는 생각들만 모아도 깊이 있고 긴 분량의 책쓰기용 글쓰기가 충분히 가능하다. 꼭 근사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펜을 들고 책상에 앉아 있어야만 근사한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상 중 사색에 몰입하는 짧은 조각시간을 찾고 그 속에서 아이디어를 캐오기. 생각보다 즐겁고 가슴 뛰며 책쓰기를 쉽게 해주는 좋은 요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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