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흔한 컴퓨터공학과 대학생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입시라는 파도에 휩쓸려 얼떨결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목표를 정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의 꿈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었다. 그리고 깊은 고민 없이 컴퓨터공학과를 가기 위한 활동들로 생활기록부를 채워나갔다. 그렇게 진로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대학에 진학했고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 회의감을 느낀다. 고등학교 다음에는 대학, 대학 다음에는 취업, 취업 다음에는 결혼. 청년들은 사회 시스템이 제시하는 길만 맹목적으로 바라보고 달려가는 경주마가 되기 너무 쉽다. 제시된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용기 있는 소수에게나 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자신 만의 길을 탐색하기보단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그저 따라 하게 된다. 가끔 이 길이 맞나 의심하고 불안해하지만 곧 안정이 찾아온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비슷하기에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나 자신도 그랬고 주변 친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신 안에 있는 욕망을 외면한 채 그저 주어진 퀘스트들을 하나하나 깨기에 바빴다.
나는 대학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채로, 솔직한 나 자신을 마주하려 인턴 개발자의 삶을 시작했다.
8월 초부터 일을 시작했고 계약기간 한 달을 남겨둔 채 12월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약 4개월의 시간을 보내며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 정도이다.
가장 큰 이유는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흥미 크지 않다는 점이다. 개발자로 커리어를 이어나가서 3년 후, 10년 후 성장하고 CTO가 된 모습 등을 상상했을 때 전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개발 자체보다 사람들의 인정이 더 좋았고, 개발을 통해 해결가능한 문제와 문제의식, 일의 의미와 목적, 회사의 비전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기술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개발과정 상의 문제해결의 기쁨보다 스트레스가 더 컸던 것 같다. 이 부분은 학부생 때부터 느끼고 있었던 것인데 인턴 과정을 통해 더 명확히 하게 되었다.
물론 개발에 완전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코딩이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 재밌다. 작년에 교내 성적 알림 서비스를 만들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새 코딩하여 서비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거나 단순히 기술공부 목적으로 코딩을 하는 경우에는 잘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내게는 코딩 자체보다 문제의식과 의미, 목적 같은 것들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같다. 코딩은 내게 여전히 사회에 큰 임팩트를 미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로 남아있다. 언젠가는 필요에 의해 머지않아 다시 꺼내게 될 것이다.
둘째로는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들을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상황이 싫었다. 물론 주체적으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지만 기획이나 시스템 설계상이 한계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오너십을 가지고 일하면서 자진해서 야근도 하고 싶은데 그러한 환경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해서 8시간 동안 주어지는 일들을 처리하고 퇴근하는 삶이 마치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삶이 아니라 회사의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언젠가 회사로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도 지금은 회사를 종속되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일, 하고 싶은 일, 주체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일들을 해보는 것이 더 행복하고 올바른 길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퇴사를 준비하며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글과 영상들을 참고하며 학창 시절 순수하게 좋아했던 일,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했던 일이 무엇인지 정리했다.
독서하고 사유하며 글을 쓰는 일. 일상의 영감과 인사이트를 글로 녹여내는 일을 하려고 한다. 이건 혼자 무인도에 있게 되더라도 할 것 같은 일이다. 과정 자체에 기쁨을 느끼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 때문이다. 출퇴근 길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하철에서 독서하는 시간이 내겐 정말 행복했다. 학부생 시절에도 매주 독서모임에 참여하며 생각을 나누는 일을 참 좋아했다. 나 자신을 알아가고 나의 주관을 적립해 가며 세상을 넓고 깊게 이해하는 과정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서 고민과 생각의 과정, 결과들을 나누는 일까지도 이어나갈 것이다.
개발로써 해결가능하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고민하지 않고 개발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아마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인사이트를 쌓고 나누는 과정에서 나만의 문제의식이나 비전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된다.
작가로서, 유튜버로서, 1인개발자로서 최소 6개월 동안 몰입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각 타이틀별로 6개월치의 세부 목표를 설정하고 루틴을 만들었다. 체계적으로 삶을 살아내면서 만날 새로운 여정들이 무척 기대가 된다. 마음 한 구석에는 괜히 퇴사를 한 것은 아닐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무섭고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불안과 기대를 원동력으로 하여 인생의 다음 스탭로 나아갈 수 있을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