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굳이 특별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는 순간부터 삶은 조금씩 내 것이 된다
2025 수능 성적표가 어제 나왔습니다.
대학 합격 발표들도 조금씩 나오는 시기라 나의 대학 입시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작년 10월 허심탄회하게 모 카페에 올렸던 글이 생각나 브런치에 올려봅니다.
제 의견은 어디까지나 나의 의견일 뿐, 다른 생각을 하는 수험생들과 학부모님들 모두 존중합니다.
극히 일부의 경험을 한 대학교 1학년 학생의 추억이 어린 글일 뿐이니까요.
모두들 원하시는 결과 맞이하시고 행복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본글)
잠이 오지 않아 수능을 기다리는 고3 학생으로서 요즘 느끼는 글을 써 봅니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 그리고 수험생 여러분 모두 파이팅이에요.
중학교 때 전교 3등으로 졸업하며 일반 고등학교에 가서 내신을 잘 받겠다는 마음으로 집 앞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고등학교는 모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중학교때와는 분위기가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은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은 중학교 4학년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모두 고등학생은 처음이라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처음 본 중간고사.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다소 낮은 등급대 문을 열며 그동안 내가 한 공부는 뭘까?라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중학교까지는 절대평가라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제가 시험을 잘 보건 못 보건 상대평가라는 제도 때문에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제가 떨어진다는 생각에 항상 이 입시 제도가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점수를 올리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었네요. 1학년때 야자 끝나면 독서실 가서 더 공부하고, 퇴실처리기에 찍힌 00시 사진 찍어서 혼자 뿌듯해하고.
그렇게 해서 성적이 미미하게 오르긴 했는데 만족할 수 있는 성적은 아니었습니다. 항상 전교 9등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반 1~2등은 하지만 확실한 전교권은 아닌 그런 애매한 성적. 스스로를 많이 갉아먹었습니다.
공부하는데 주변에 놀고 있는 친구들 보면 저렇게 놀아도 앞으로가 괜찮나? 걱정 없어 보이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고, 자습시간에 시끄럽게 하는 친구들에게 말은 안 했지만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2학년이 되며 과목 수도 늘어나고 선택과목은 1등급 수가 3~4명이라 2등급에 드는 것도 감지덕지인 상황이 되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게 됩니다. 이때 친구들과의 갈등도 있었고, 할 일이 많아 인간관계에 쏟을 힘이 없어 인간관계도 꼬이고 난 왜 살까 이렇게 공부만 하는 게 맞는 걸까, 나도 즐기며 살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매일 들었습니다. 그래도 내신을 포기할 수 없어서 학교에선 공부만 하고 독서실 가면 울면서 '난 할 수 있다'라고 자기 암시하고, 다시 공부하고. 부모님이 밤길 위험하다며 1시에 독서실과 학원 앞까지 마중 나와 주시고. 시험기간엔 2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 독서실 갔다고 학교에 갔었습니다.
이맘때쯤 내신과 세특에 지쳐 자퇴하고 정시로 대학가겠다고 시위하듯 선언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절 말렸습니다. 그땐 다들 제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너무 미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들 너무 고맙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오르지 않는 내신에 힘들었고, 학종으로 대학가겠다고 과목별 심화탐구 세특을 2~3개씩 가져다 드리며 선생님들께 부탁드리는 것도 지쳤었습니다. 1학년 생기부가 아까워서, 2학년 1학기 생기부가 아까워서, 2학기 생기부가 아까워서 자퇴하면 졸업앨범 없는 게 서러워서, 내가 뭐가 못나서 고등학교 졸업앨범도 없나 라는 생각에 자퇴하지 않고 버텨냈네요.
3학년에 올라오니 1, 2학년때와는 다른 결의 압박감이 느껴지지만 이제 12년 입시의 끝이 코 앞에 있다는 사실에 너무 후련합니다. 중학교 다닐 땐 스카이가 아니면 인생이 망하는 줄 알았고, 고등학교 1학년때는 서성한까지가 명문대의 마지노선이라 생각했어요. 중경외시 가면 무조건 재수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내신이 잘 나오지 않자 저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었어요.
학교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사고방식을 갖고 다양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2등급만 받아 애매한 재능을 원망했는데 누군가는 11% 안에 정말 들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쓴 6 지망 대학이 누군가에겐 꿈의 학교일 수 도 있고, 내가 쓴 1 지망 대학이 누군가에겐 재수방지용 대학일 수 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며 남과의 비교는 불행의 시작이라는 걸 몸소 깨달았습니다. 서성한에 가면 스카이에 가고 싶고, 스카이 가면 메디컬 가고 싶어 진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더라고요.
진정한 행복은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때 나옵니다. 내가 가고 싶은 학과에 맞는 세특 보고서를 쓰기 위해 밤을 새우며 리서치를 해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반쯤 미친 상태에서 살았던 고등학교 시절 힘들었지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자, 나의 길을 가자, 남에게 좋은 일 생기면 기쁘게 축하해 주자"
이 생각을 마음에 새기니 수능이 다가오면 더 불안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 순간이 그 어떤 시간보다 더 편안한 것 같습니다. 사이가 안 좋았던 친구들, 속으로 나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친구들과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가까워지기도 하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조금 더 긍정적이게 변했습니다.
생각보다 인생은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매일을 계획하고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려고 발버둥치신 착한 모범생으로 살아온 분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 역시 항상 칭찬만 들으며 살아왔기에 틀을 깨고 살아도 될까? 완벽해지려 항상 불안했었는데 나의 불안함을 떨쳐내기 위해선 '인생 안 망해!'라는 생각을 항상 새겨야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모범생들이 대충 살아봤자 얼마나 대충 살겠습니까. 남들이 보기엔 대충 살아도 모범적 일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스스로에게 좀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내려놓으세요. 대학도 조금은 내려놓아보시고. 부담감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 수 있어요.
글의 제목을 '고등학교 자퇴 안 하길 잘했다'라고 붙였습니다.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고등학교를 대입 기관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자퇴해도 대학만 잘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다녀보니 인간관계도 배우고, 이해할 수 없었던 친구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실수와 실패를 통해 성장하기도 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고, 무엇보다 고등학교 3년의 과정을 버티고 졸업한다는 사실만으로 앞으로 살아가며 힘들 때 고등학교도 버티고 대입도 했는데 못할게 뭐가 있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시험 보고 내 성적으론 희망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 자퇴하고 싶거나, 인간관계가 안 좋아서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다거나, 등등... 다양한 이유로 현재 자퇴를 고민하고 있는 고1, 2 학생들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 우선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자퇴를 생각한다는 건 그만큼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잘하고 싶기에 자퇴하고 정시로 대학에 가고 싶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고등학교를 끝까지 다니며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버릴 만큼 자퇴가 중요한가? 를 고려해야 합니다. 지나간 학창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금 힘들어서 죽고 싶더라도 돌이켜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때 힘들었지만 잘 버틴 자신이 대견하고, 본인을 힘들게 했던 것들 중 생각보다 사소한 것들도 많았습니다. 성적이 좀 안 나왔으면 안나온대로, 스스로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며 앞으로를 살아가면 되고, 인간관계가 망했으면 망한 대로, 학교에서 평생 사는 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지내보시길 바랍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힘든 만큼 즐겨라'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공부 못해도 다들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인간관계가 좀 망했어도 그럭저럭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면 되고, 완벽하진 않아도 삐그덕거리며 세상 살아가면 된답니다.
저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넌 그동안 너무 완벽하게만 살려고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그런 네가 걱정됐었는데 이제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아 다행이다'라고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간간이 연락하던 친구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제 스스로 얼마나 강박적으로 살았겠습니까?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 생활에 있어 완벽이 필요하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려 할수록 행복에서 더 멀어질 뿐, 매 순간순간을 열심히 즐기며 살아가는 게 더 행복해지는 길인 것 같습니다. 대신 후회는 남지 않아야겠죠? 고등학교 다니며 들었던 생각, 허심탄회하게 적어봅니다. 대학을 바라보며 보낸 제10대를 되돌아보면 눈물날만큼 짠하기도 하고, 독서실에서 울며 버틴 날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옵니다. 그 당시 시험에서 받은 점수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었다는 기억만 남을 뿐. 어차피 겪어야 하는 입시,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하며 살았기에 후회는 없고 너무 후련합니다.
불확실로 가득 찬 날들이 확실히 되는 날을 맞이할 수 있길 기다립니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 분들, 오늘도 책상에 앉아 불확실과 싸우며 고생 많으셨습니다.
모두들 힘내세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