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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Jun 25. 2021

우리만 아는 슬픔들 <4>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 좀 더 어릴 때는 작품을 보기보다는  작품을 여러 번 연달아 보곤 했다. 드라마 파스타를 다섯  정도 봤고 영화 원스는 여섯  정도 봤다. 그래서   영화   드라마 등이 엄청 많다. 지금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제는 한 작품을 여러 번 보는 일도 잘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걸 딱 한 번만 본다. 많이 봐도 두 번이다. 물론 지금도 여러 작품을 보는 건 아니다. 볼까 말까 하다가 안 보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볼 생각조차 않는 것은 그보다 훨씬 많다. 딱 한번 본 다음 그것에 대한 생각을 계속한다. 이 작품이 왜 좋았는지부터 이 캐릭터는 어떤 캐릭터구나 이 작품은 내게 이런 의미로 다가오는구나 까지.


최근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과 하이큐를 봤다. 귀멸의 칼날을 봤을 때는 귀멸의 칼날에 대한 생각을 한참 하다가 지금은 하이큐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하이큐는 두 주인공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를 비롯한 일본의 고등학교 배구부 선수들이 청춘을 바쳐 배구를 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원대한 꿈을 가지고 배구를 하기보다 지금 당장 배구를 하는 게 좋아서 배구를 한다.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을 해서 전국 대회 진출을 목표로 배구 경기를 치른다. 대회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패배는 곧 탈락이다. 그리고 최후의 승자는 언제나 하나다.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 1, 2학년이라면 내년을 기약할 수 있지만 3학년은 그것으로 끝이다.


귀멸의 칼날 또한 패배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같다. 카마도 탄지로와 귀살대의 이야기를 다룬 귀멸의 칼날에서 귀살대와 오니의 싸움은 패배는  사망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죽거나 죽이 거나 양자택일의 문제인 것이다. 귀살대는 눈앞에 보이는 오니의 목을 베고 오니는 눈앞에 있는 인간을 잡아먹는다. 오니와 귀살대 간에 다음이란 없다. 전투는  번만 치러지고 패배는  죽음이다.


배구가 하고 싶어 코트로 모인 청춘들은 코트 밖에서는 서로의 기술을 전수해주고 연습 상대도 되어주는 동료지만 코트 위에서는 쓰러뜨려야 할 적이 된다. 상대 팀의 놀라운 플레이에 혀를 내두르기도 하고 때로는 서슴지 않게 도발적인 멘트를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코트로 모인 그들은 배구라는 구기종목 아래 본질적으로 동료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며 서로의 앞길을 응원한다. 경기가 끝나면 그들은 악수를 나누고 서로의 플레이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귀살대와 오니는 동료가 되지 않는다. 아니 될 수 없다. 그들의 싸움은 경쟁도 스포츠도 아닌 죽고 죽이는 싸움이다. 적의 강함에 찬사를 보낼 순 있어도 그것으로 적과 동료가 될 순 없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적이며 서로를 미워한다. 룰도 심판도 화려한 플레이에 환호를 보낼 관중도 없다. 귀살대가 제아무리 오니의 목을 베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오니가 아무리 강한 귀살검사를 죽여도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한다.


배구에 청춘을 바친 청춘들은 배구가 좋아 코트에 모였지만 오니를 잡는 데 청춘과 목숨을 다 바친 귀살대는 오니를 제 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배구 경기는 낮에 치러진다. 귀살대와 오니의 싸움은 밤에 치러진다.


나는 시절을 다루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디지몬 세계로 모험을 떠나 세계를 구해내는 아이들의 유소년 시절을 다루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고등학교 3년을 배구에 바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목숨을 내던지고 오니를 베어 세계를 지켜내려는 청춘들의 이야기 또한 좋아한다. 마지막 경기를 이기는 팀은 단 한 팀이니까 결국 패하면서 코트 밖으로 나갈 지라도, 결국 더 강한 오니에게 죽게 될지라도 그들은 모두 배구를 했고 오니와 혈투를 벌였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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