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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Jun 21. 2021

우리만 아는 슬픔들 <3>

망했다

요즘은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 돼서 밤에 무력감을 느낄 새가 없다. 평소 같았다면 새벽 내내 나는 아무래도 망한  맞는  같다는 생각을 하다 잠들었을 텐데 출근을 하게  뒤부터는 그냥 자느라 바쁘다. 물론 그런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냥  생활 패턴에 따라 시간대를 옮겼다. 이제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나는 망한  맞는  같다. 뭐가 망한 건지도 망한다는  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


잘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계획하고 있는 일이 모두 잘 되고 책이 더 잘 팔리고 원고 청탁이 잘 들어오고 빨리 두 번째 시집을 계약했으면 좋겠다. 시인 김누누를 더 많이 찾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니까 망했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열심히 한다고 다 잘하게 되지 않고 잘한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어쩌면 다행이기도 하다. 잘한다고 다 잘되면 그럼 지금 내가 못하고 있는 게 되니까. 내가 잘 못하면 그건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 게 되니까.


수입이 다시 생기고 나서 이런저런 물건을 좀 구입했다. 기껏해야 무선 이어폰과 옷 몇 벌을 산 게 전부인데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감각이 너무 낯설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SNS에 올라오는 누군가의 위시 리스트를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물욕이라는 게 전보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물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새로운 물건이 생긴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다. 이 이상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뭐든 간에. 옷장에 안 입는 옷은 누군가에게 줘버린다. 새 옷을 살 때 이 옷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뚜렷한 역할이 없다면 짐처럼 느껴진다. 언젠가는 지인의 수를 딱 반으로 줄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알게 되었고 그게 좀 큰일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알게 된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군가에게 줘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망했다. 여러모로 망했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데 하나 밖에 없는 내게 너무 많은 물건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잘 되는 건 뭐고 갖고 싶다는 건 뭘까. 잘 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갖고 싶은 걸 가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알고 싶은 사람과 알게 되면 그다음에는? 잘 된 다음과 가진 다음과 알게 된 다음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잘 됐으면 좋겠고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가지고 싶다. 모르겠다. 그냥 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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