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요즘은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 돼서 밤에 무력감을 느낄 새가 없다. 평소 같았다면 새벽 내내 나는 아무래도 망한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 잠들었을 텐데 출근을 하게 된 뒤부터는 그냥 자느라 바쁘다. 물론 그런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냥 내 생활 패턴에 따라 시간대를 옮겼다. 이제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나는 망한 게 맞는 것 같다. 뭐가 망한 건지도 망한다는 게 뭔지도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
잘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계획하고 있는 일이 모두 잘 되고 책이 더 잘 팔리고 원고 청탁이 잘 들어오고 빨리 두 번째 시집을 계약했으면 좋겠다. 시인 김누누를 더 많이 찾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니까 망했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열심히 한다고 다 잘하게 되지 않고 잘한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어쩌면 다행이기도 하다. 잘한다고 다 잘되면 그럼 지금 내가 못하고 있는 게 되니까. 내가 잘 못하면 그건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 게 되니까.
수입이 다시 생기고 나서 이런저런 물건을 좀 구입했다. 기껏해야 무선 이어폰과 옷 몇 벌을 산 게 전부인데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감각이 너무 낯설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SNS에 올라오는 누군가의 위시 리스트를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물욕이라는 게 전보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물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새로운 물건이 생긴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다. 이 이상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뭐든 간에. 옷장에 안 입는 옷은 누군가에게 줘버린다. 새 옷을 살 때 이 옷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뚜렷한 역할이 없다면 짐처럼 느껴진다. 언젠가는 지인의 수를 딱 반으로 줄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알게 되었고 그게 좀 큰일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알게 된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군가에게 줘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망했다. 여러모로 망했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데 하나 밖에 없는 내게 너무 많은 물건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잘 되는 건 뭐고 갖고 싶다는 건 뭘까. 잘 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갖고 싶은 걸 가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알고 싶은 사람과 알게 되면 그다음에는? 잘 된 다음과 가진 다음과 알게 된 다음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잘 됐으면 좋겠고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가지고 싶다. 모르겠다. 그냥 망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