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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Jun 14. 2021

우리만 아는 슬픔들<2>

그럴 때면 나는 슬픔을 기도했다


<우리만 아는 슬픔들>은 시인 김누누가 매주 홈페이지에 올리는 짧은 분량의 글입니다. 분량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저 김누누에게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슬픔을 기도했다




성인이 되고 나니 경조사에 참여할 일이 늘어났다. 종류도 다양했다. 아는 형의 결혼식, 아는 누나의 결혼식, 친구의 결혼식 혹은 친구 할머니 장례식, 친구 어머니 장례식, 지인의 할머니 장례식, 지인의 할아버지 장례식, 친구의 장례식 등등….


결혼식에 가면 축하를 한다. 멋지게 차려 입은 친구들과 하하호호 농담을 주고 받는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신랑신부에게 박수를 보낸다. 함께 사진을 찍고 밥을 먹는다. 장례식에 가면 위로를 한다. 검정색 옷을 입고 상주와 인사 한다. 장례식장 가는 길에 조문과 문상이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생각한다. 매번 찾아보고 매번 까먹는다. 신앙에 따라 고인의 사진 앞에서 절은 하지 않고 대신 기도를 한다.




기도하는 시간의 절반은 무슨 기도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이다. 장례식장에서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 명복을 믿지 않는 나는 남겨진 사람들을 향해 기도한다. 다음날 아침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 일어나서 세 끼를 챙겨 먹어야 하는 사람들. 고인의 사진을 바라보며 살아있는 사람을 생각한다.




기도를 마치고 상주와 인사를 나눌 때면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감각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조문객이 상주와 인사를 나눈 뒤 하는 것은 밥을 먹는 일이다. 하얀 쌀밥과 뜨겁게 데운 육개장, 편육을 먹는다. 죽은 자와 마주한 다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생존에 직결되는 행위라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살아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조문도, 위로도, 식사도.




11월에는 유독 장례식이 많았다. S는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상주인 친구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밥을 먹었다. 하얀 쌀밥과 육개장, 편육이 나왔다. 반찬으로 나온 홍어를 가리키면서 전라도라 홍어가 나오나 보다, 홍어 좋아하느냐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에 나온 내 시집에 대한 축하도 받았다. 음식이 맛있었다. 밥이 너무 잘 넘어가서 한 그릇을 더 먹었다. 재미있는 농담에 웃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이 맛있고 웃긴 이야기가 웃겼다. 죽음을 슬퍼하기에는 내가 너무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시흥으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친구에게 장례식은 갈 때마다 낯설고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그건 내가 너무 살아있다는 기분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친한 동생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기쁜 일에는 못 가더라도 슬픈 일에는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조문을 갔다. 상주와 인사를 하고 밥을 먹었다. 원고료가 빨리 들어와야 할 텐데 같은 생각을 했다. 그 다음 날에는 친구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갔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내게 ‘시집 나왔다며? 이야 어떻게 시집을 낼 생각을 했대 축하해 나도 한 권 살게’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여기는 편육이 아니라 보쌈 고기를 주네. 맛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분명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감각은 늘 낯설다. 살아있음이 뼈저리게 느껴질 때. 그럴 때면 모든 것이 살아있기 때문에 해야하는 책임처럼 다가온다. 밥을 먹는 일, 잠을 자는 일, 사람을 만나는 일, 밥을 먹는 일, 웃긴 농담에 웃는 일 모든 것들이 내 책임이다. 영정사진 앞에서 기도하는 일도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도 모두 살아있는 자의 책임이다. 나는 이 책임을 어떻게 져야 좋을지 몰라 내가 너무 살아있다는 기도만 한다. 우리는 또 배가 고파지고 잠이 오고 내일을 살아야하니 이런 우리를 지켜달라고. 살아있음을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같은 상투적인 말처럼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뱉을 모든 말이 기만처럼 느껴진다. 나는 내 앞에 선 사람의 슬픔을 알지 못한다. 적절한 위로의 말을 골라내는 일이 너무 어렵다. 나는 그냥 우물쭈물하다가 꾸벅 인사만 한다.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같은 말은 말 그대로 어떠한 말로도 위로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슬프다.




여름까지 다니던 회사는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며칠 뒤에 나온다는 월급은 열흘, 한달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돈을 벌려고 회사에 나가는데 오히려 통장 잔고는 비어 갔다. 월급은 언제 받을 수 있냐 물어도 미안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나가는 돈은 있었다. 출퇴근 할 차비가 필요했고 점심에 먹을 밥 값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손 벌리지 않고 싶어서 취업을 했는데 회사에 가기 위해 엄마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엄마 차비가 떨어져서, 엄마 밥 값이 떨어져서…. 말 끝을 흐리면 엄마가 다만 얼마간의 돈을 주었다. 나는 괜스레 ‘돈 벌려고 회사 가는 건데 엄마한테 돈이나 받고 있네’ 같은 말을 했다. 엄마는 월급 나오면 갚으라는 말로 나를 배려하곤 했다. 부모님과 살아서 망정이지 따로 살고 있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전까지 내심 품고 있던 독립 생각을 접었다.




일을 하기가 너무 싫었다. 월급이 나오지 않아서도 있었지만, 일을 한다는 사실이 살아있기 때문에 져야하는 책임 같았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살아있어서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단지 살아있기 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 삶의 모든 것이 책임이고 비용 같았다. 왜 이렇게 많은 비용이 필요할까? 이 비용을 어떻게 다 마련해야 할 지 막막해서 그냥 얼른 집에 도착해 씻지도 않고 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씻는 일도, 눕는 일도 다 살아있는 비용 같다. 누울 자리도, 도착할 집도 그렇다.




살아있는 사람은 모두 살아있다. 내가 마주하는 사람도 지나치는 사람도 모두 살아있다. 비용을 치르는 중이다. 다들 책임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삶의 비용이 너무 컸다. 많은 사람과 사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내가 치르는 삶의 비용을 이야기 할 순 없었다.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삶의 비용 같았다. 우리는 사는 이야기를 나눔으로 서로에게 삶의 비용을 부과한다. 삶의 비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또한 삶의 비용이 되고 어쩌면 이 글도 삶의 비용일지 모른다. 나는 당신에게 삶의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무언가를 읽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쓰는 것. 장례식에 같이 간 친구가 부의금 봉투에 얼마를 넣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가 치르는 삶의 비용을 알지 못하고 툭 떨어져 막연한 상태에서 각자가 치러야 할 비용만을 치를 뿐이다. 계산은 각자의 몫이다.




내가 너무 살아있을 때 그 사실이 너무 생생해서 내가 치러야 할 책임처럼 느껴질 때면 나는 살아있는 슬픔을 기도했다. 내가 너무 살아있다고, 내가 치러야 할 값이 너무 많다고. 하지만 그런다고 삶의 비용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프고, 잠을 안 자면 피곤했다. 기쁜 일이 기쁘고, 슬픈 일이 정말 너무 슬펐다. 아무리 치러도 사라지지 않는 삶의 비용들이 슬펐다. 월급도 여전히 들어오지 않는데, 왜 이렇게 치러야 할 비용이 많은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살아있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정말 그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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