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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Jul 01. 2021

우리만 아는 슬픔들 <5>

그러니 우리는 손을 잡아야 해

그러니 우리는 손을 잡아야 


한 편 두 편 놓치다 보니 어느새 보고 있는 웹툰보다 밀린 웹툰이 더 많아졌다. 겨우겨우 네이버 토요일 웹툰만 챙겨보고 있다. 실은 토요일 웹툰도 몇 개는 두 편 정도 밀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 손이 잘 안 간다. 사실 출퇴근 길에 볼 수도 있지만 그때는 그냥 핸드폰을 잘 안 본다. 그렇게 수많은 웹툰을 보다가 말았다.


중도 하차의 기준도 따로 없다. 그냥 손이 가면 보고 안 가면 안 본다. 어떤 건 중도 하차하기 직전까지도 엄청 재밌게 봤었다. 그러다가 그냥 한두 주 정도 안 보게 되고 그게 쌓여서 나중에는 이걸 언제 다 봐? 싶은 생각이 들어 결국 중도 하차에 이르고 만다. 그렇게 대부분의 웹툰에서 중도 하차한 내가 어떻게 어떻게 놓치지 않고 챙겨 보는 웹툰은 몇 편 되지 않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수박양 작가의 <아홉수 우리들>이라는 작품이다.


<아홉수 우리들>은 김 우리, 봉 우리, 차 우리 세 캐릭터의 스물아홉 살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2019년 3월부터 지금까지 네이버 웹툰을 통해 연재되고 있는 작품이다. 2019년에 작품 연재가 시작됐으니까 작중 시간과 현실 시간의 시작점이 동일하다고 가정한다면 세 우리와 내가 동갑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 우리와 내가 꼭 친구인 것 같다. 물론 이야기 진행 속도로 인해 내가 먼저 삼십 대에 도착했지만 말이다.


물론 동갑이니 어쩌니 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세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고민과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크게 멀지 않다는 사실이 반가울 뿐이다. 내가 하는 고민을 다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내 고민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좋다. 우리들도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그러면 나도 꼭 우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세 우리보다 먼저 서른 살에 접어든 나는 사실 아홉수 같은 건 별 의미 없는 말이라는 걸 안다. 스물아홉에 쥐고 있던 문제를 서른이 되어서도 놓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나는 이미 다 자란 걸지도 모른다. 이 말은 내가 완벽히 성숙해졌다는 말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은 여기까지 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앞으로는 이것들을 덜 잃고 지켜내는 것만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걸 늙는다고 표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80살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정말 큰일이 났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앞으로 5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더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삶의 끝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일 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면 ‘안 죽으면 어떡하지?’하는 고민까지 해야 했을 테니까.


조금 뜬금없는 소리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면 김성모 작가의 만화 중 한 부분이 생각난다.

저… 저희는 어떻게 될까요?

죽을 것이다!


가끔은 이 말이 희망 같다. 결국 끝난다는 말. 결국 <아홉수 우리들>의 세 우리는 아홉수를 무사히 지날 것이고 만화는 그렇게 끝이 날 것이다.  <아홉수 우리들>은 픽션이니까 세 우리는 결국 나름의 행복과 방향을 찾을 것이다. 아홉수는 길어야 1년이니까. 아홉수가 지나면 생애 내내 세 우리를 쥐고 흔들던 문제들이 해결될 거라 믿는다. 비록 만화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세 우리는 2D 친구니까 나는 그들이 모두 결말처럼 행복해질 거라 믿는다. 믿는다는 건 그러기를 바란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나도, 나도 조금은 우리 같았으면 좋겠다. 결말부에 다다라서는 나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 지점을 보이는 그런 우리 같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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