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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Jan 21. 2024

첫째 주의 밤들

2024.01.01-07


불안과 불면, 가장 어두운 새벽과 죽음

240101

2023년의 마지막에 걸터앉아서 지나간 시간들을 내려다본다. 불안했다. 금세 지나가버린 20대의 끝에서 구멍이 숭숭 나버린 관계들에 불안했고 매시간마다 깊이를 더해가는 고독에 불안했으며 이상한 이물감이 드는 페르소나에 불안했다. 종종 불면에 시달리면 끝없이 달려드는 고민과 걱정, 후회와 자책들에 한참을 뒤척였고 희미하게 두근거리다가 기어코 쿵쾅거리기 시작한 심장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인 채 그렇게 잠에 들었다. 가장 어두운 새벽에 잠에서 깨어 알 수 없는 공허함에 휩싸이기도 했고 삶을 덧씌우는 여명이 채 다가오기도 전에 삶에서 가장 멀어진 상태로 죽음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에 스며든 불안과 미약한 빛 하나에 의존한 채로 견뎌내던 불면, 어김없이 깨어나 마주하는 가장 어두운 새벽과 두려운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잘게 나누어진 삶은 행운일지도 몰라

240102

삶이라는 아주 긴 시간을 작게 나누어 놓은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옛날부터 사람들은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이라는 큰 덩어리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여서 그것을 연으로, 계절로, 달로, 일로, 시간으로 나눈 게 아닐까 싶다. 어느새 겨울의 중심에 와있다. 겨울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고 새하얀 눈이 내리던 이 계절을 금세 아쉬워하겠지. 그리고 봄의 시작에 서서 모든 것이 깨어나는 것을 보고는 금세 봄의 품으로 뛰어들겠지. 이렇게 우리는 잘게 나누어진 삶 속에서 하나의 단위가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또다시 하나의 단위가 시작되는 것을 기대한다. 시작과 끝이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매년 새로이 시작할 수 있고 매시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아직은 단단한 시를 읽으며

240103

시를 읽고 있다. 지금껏 시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아름다운 언어들이 한데 모여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쉬이 스며들지 않는다. 마치 딱딱하게 얼어붙은 손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만 같다. 시에 대한 해석을 읽으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는 시의 언어들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고 싶다.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 천천히, 시에 입김을 불어넣어 보자. 다소 물렁해진 그것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하는 그 순간, 나도 나의 세상을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악몽

240104

악몽을 꿨다. 내가 꾸는 모든 악몽에는 도처에 ‘불가항력’이 도사리고 있다. 낯선 도시에 홀로 남겨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무력한 채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끊임없이 위로 솟구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 분명 뒤에서 무언가가 쫓아오는 듯싶어 달리는데도 발은 허공 속에서 나풀댄다. 악몽 속에서 나는 무력하다. 목적 없는 도태가 나를 차갑고 낯선 도시에, 어쩌면 우주에 던져놓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무수히 베인다. 그리고 그것에서 깨어나면 아주 차가운 어둠이 나를 기다린다. 달갑지 않은 기다림이 여기 있다.  


내 세상의 중심은 나여야 하지 않을까

240105

갑자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 시간들이 외로움으로 느껴졌고 나는 부단히도 타인의 삶에 기웃거렸다. 그럴수록 ‘나’라는 세상의 중심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그 자리를 채웠고 나는 타인의 삶 근처를 위성처럼 맴돌았다. 요즘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떤 날의 사건들을 나열했던 일기장에는 어떤 날의 생각과 감정이 적히기 시작했고 나의 껍질과 알맹이를 직시하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나’라는 세상의 중심에 내가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곳에서 당당하게 주변을 바라볼 여유는 없지만 적어도 그 중심의 주인이 누구여야 하는지는 알 것만 같다.


밤을 지우는 하얀 눈

240107

오랜만에 반가운 함박눈이 내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두운 밤하늘에 하얀 눈이 가득했고 그것들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많이도 나풀거렸다. 온 세상을 뒤덮은 시커먼 밤이 하늘을 가득 채운 하얀 눈에 의해 조금은 지워지는 듯했다. 나는 눈의 색이 좋다. 그 하얀색이 좋다. 하얀 눈은 그리도 어두운 밤을 지우는 듯해서 좋고 항상 보던 풍경에 하얀색을 덧씌워 일상을 무너뜨리는 듯해서 좋다. 하얀 눈이 가끔 찾아오는 이 추운 겨울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을 때의 반가움, 눈이 하늘을 가득 채웠을 때의 안도감, 눈이 그친 후의 적막함과 아쉬움, 그리고 눈의 춤이 끝났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하얀색으로 가득하다는 기대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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