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하루 Jul 16. 2023

우울한 날

뇌신경 재활센터, 노년 내과


동료의 가족 분이 내 병동에서 돌아가셨다.


병동 약사이기에 하루의 대부분은 병동에서 보내지만, 매일 1시간씩 제조실에 배치된 시간이 있다. 주로 제조실에 배치된 동안은 외래 처방전, 응급실 차트, 입원 환자 약들을 검수한다. 평소대로 제조실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다. 제조실 테크니션 분이 다가와 물었다.


"요즘에도 X 병동 (노년 내과) 담당하고 있어?"

"응. 그럼."

"혹시 A라는 사람 알아?"

"A? 음... 잘 모르겠는데, 혹시 환자분 성함이야?"

"응."

"풀네임이 어떻게 돼?"

"A, BC."

"... 아! 응, 기억해. 퇴원시켜 드린 지 2주는 된 거 같은데?"

"그분, 나랑 혈연관계였어."


개인 사정으로 그분의 사망 소식을 며칠이 지나고서야 듣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항생제로도 감염이 잡히지 않았고 결국 호스피스 병동으로 급히 퇴원시킨 분이라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반복된 감염으로 섬망이 심한 상태셨으나, 잠시 상태가 호전되셨을 때는 눈인사를 주고받곤 했다.


동료에게 왜 이제야 말을 했냐 물으니, 원칙을 어기는 일이라 쉽게 말할 수 없었다 하셨다. 그러나 나 몰래 병동에 올라갔다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자신을 자신의 엄마라고 알아보았다면서 참 좋은 기억이었다 하셨다. 원칙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났다. 우리는 삶과 죽음 앞에서도 원칙과 전문성을 지켜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 또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내 환자들이 만나는 마지막 약사일 가능성이 높고, 돌아가신 후에는 다시는 못 만날 인연이라는 것을.


그 환자 분이 매일 보는 동료의 가족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마음이 예전 같지가 않다.  동료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그저 앞으로도 매일매일, 내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약속뿐이었다.  


내 병동은 매일 죽음이 함께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끝이 난다. 그 과정에 내가 있을 수 있음에 영광이고, 감사하며, 또 어느 순간은 참 우울하다. 쉽지 않은 직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