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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Mar 19. 2023

삶의 자산 분배

행복의 총량을 높이기 위한 '가치' 투자

약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대학 때 친구들을 만났다. 같은 기숙사 방을 쓰던 친구들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 치킨 몇 개에 가장 싼 맥주 두어 캔을 두고서 매일 밤 각자의 꿈을 이야기하고 저마다가 그리는 미래를 자랑했다. 누군가 나에게 삶에서 청춘 드라마 같은 순간이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가장 먼저 떠올릴 그런 순간 들 중 하나가 그 시간들이었다.


여전히 우리는 저마다의 꿈을 그리고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들 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제법 흘러 서른 초입을 들어선 때라서 그랬을까,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돈으로 시작하여 결혼, 출산, 승진 등 '이 나이라면 응당 이야기를 꺼내야만 할 것 같은' 말들로 저녁 시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디쯤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을까, 아마 돈을 어떻게 불릴 것인가를 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코로나 시기와 함께 시작된 자산폭등과 급락, 부동산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고 이윽고 각자 어떻게 자산을 배분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는 말이 나왔다.


아마, 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자산 배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사회 초년을 코로나와 함께 시작하며 시장이 출렁이는 순간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온몸으로 느낀 우리네들 입장에서는 자산배분의 중요성을 뼈절이게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대화의 한 복판에 대고 문득 이런 질문이 던져졌다.


우리가 배분할 수 있는 자산은 돈뿐일까?


이 말은 저녁 11시 무렵의 식탁을 침묵에 빠트렸다. 널브러진 맥주캔과 십여 년이 흘러도 여전히 좋아하는 감자칩들을 두고 둘러앉은 우리들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한에 가까운 적막을 느꼈다. 문득 베란다의 검은 유리창 너머로 우리가 앉아 있는 꼴이 비치고 있음을 직시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대 시장경제의 세상이다. 교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화폐로서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전의 한 멜로영화에서는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니?'라고 울부짖는 주인공의 모습이 대중의 심금을 울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연애시장', '결혼시장'이라는 말을 익숙하게 쓴다. 남녀가 익명으로 등장하여 서로의 가치를 가늠하는 예능이 해마다 히트를 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사랑, 시간, 가치, 노력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은연중에 화폐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라든지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라는 식의 진부한 교훈을 반복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가진 '화폐화된 가치'들을 오롯이 잘 쓰고 있는 것일까를 묻고 싶은 것이다.


리가 돈을 왜 벌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친구들은 대부분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을 했다. 돈이 가지고 있는 교환가치로 우리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우고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면, 돈이 교환가치를 갖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외에도 무언가를 교환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당장에 시간이 그러할 것이고, 젊음이 그러할 것이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그러하고, 아직 떠나지 않은 부모나 주변 지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회들이 그러할 것이다.


분명 '돈'은 정말 중요하다. 대부분의 불행을 막아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돈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이런 가치들 역시 돈만큼이나 소중히 다루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은연중에 끄덕이고 있었다. 물론 술자에서 나온 허울뿐인 말일 지도 모른다. 비슷한 또래들이 모여 무언가 진중한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해내고 싶은 허영심이 섞여 적당히 듣기 좋게 내뱉은 말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말 몇 마디가 당장의 내 삶을 바꿔놓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초과근무로 버는 몇 만 원의 가치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의 가치 사이에서 무엇이 더 의미가 있을에 대하여 그 균형점을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돈을 더 벌 수 있는 저녁 시간을 바쳐 학위를 따고 연구를 이어나가는 것은 얼마큼의 가치를 가지는가도 더듬어 보았다.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과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의 가치 역시 저울질해 보았다. 내가 놓치고 있는 화폐들은 없었을까. 내가 보지 못한 가치들이 더 있지는 않았을까.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서른 초입의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들의 총량을 헤아려본다. 앞으로 내릴 수 있는 수많은 결정들 앞에서 내 삶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살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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