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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Sep 01. 2023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표현과 의미 간의 공백

1. 의도한 대로 표현할 수 있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 높은 확률로 모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아는 언어능력자일 것이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 기분이 좋다거나 배가 고프다는 등의 자신의 상태를 언어로 표현하여 타인을 이해시킬 줄도 알 것이다. 격식있는 자리에서 복잡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어렵고 부담스러울지 모르겠으나, 아주 가까운 친구나 가족, 혹은 집 안팎에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와의 대화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한 것을 의도한 대로 표현할 줄 안다.


자, 그렇다면 다음의 그림을 살펴보자.


출처: 123RF


개구리와 파리가 놓여 있는 그림이다. 이 장면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자. 단, 지나치게 길면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충분히 정보는 담되, 최대한 간략하게 표현해보자.




당신은 어떤 문장을 만들었는가? 혹시 결과가 다음의 문장과 같은가?


개구리가 파리를 잡다


이렇게 문장을 만들었다면, 당신은 훌륭한 한국어 화자이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개구리는 자신의 긴 혓바닥으로 파리를 잡았을 것이다. 야속한 개구리의 혀놀림은 파리를 아주 꽉 잡고 있어서 파리는 아마 기운이 쭉 빠진 채로 처분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당신이 만든 문장에는 면밀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사전에서는 '잡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잡다[동사]: 손으로 움키고 놓지 않다.


'잡다'의 가장 원형적인 의미를 고려한다면 개구리는 제 앞발로 다가가 파리의 몸을 움켜쥐어야 맞지 않을까? 물론, 일상 속에서 '잡다'라는 말은 무언가를 제 통제 아래에 둔다는 맥락적인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으니 '잡다'의 주변적 의미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잡다'라고 말을 할 때는 손으로 대상의 어딘가를 붙잡는다는 뜻인데, 이렇게 된다면 어디를 잡았는가에 대한 작용점의 문제가 남는다. 잡는 행위가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지점이 언급되어야 의미적으로 충분해진다는 것이다. 개구리는 파리의 배를 잡았을까, 아니면 날개를 잡았을까.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한, 저 문장 만으로 우리가 본 그림을 다시 똑같이 떠올리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즉,  개구리가 파리를 잡는다는 저 간단한 문장 조차도 표현과 의미 사이에는 괴리가 있는 것이다.





2. 표현된 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가 내뱉는 말 중에는 그 의미가 표현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얼마전 마트에서 식료품을 고르는 중에 갖 초등학교를 들어갔을 법한 한 아이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었다.


떡볶이는 사랑이죠!


이게 무슨 말일까? 요즘 젊은 친구들의 언어에 잘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다면 이 말의 해석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떡볶이를 사랑한다고 말할 만큼 대단히 좋아한다는 뜻이다. 내가 머리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표현을 이렇게 정정했다.


떡볶이는 사람이 아니야


이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사람'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발음한 '사랑'을 '사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보기좋게 실패한 이 대화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단순히 젊은 사람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 엄마의 잘못일까? 우리의 뇌는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을 이끌어내지 않는다.


말의 쓰임과 문맥을 연구하는 화용론(Pragmatics)에서는 인간이 언어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성공적인 의사전달을 위해 대화 참여자 간에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규칙(격률: Maxim)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 중 하나가 언어 철학자인 그라이스(Herbert Paul Grice)가 주장했던 '관련성의 격률'이다.


관련성의 격률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화에서 주된 흐름에 맞게 낱낱의 표현들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날씨 이야기를 시작 했으면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정치 이야기를 시작 했으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말이다.


자, 그럼 이제 아이와 엄마의 말을 분석해보자. 아이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떡볶이는 사랑이죠!


여기서 'A는 B이다'의 문형은 A와 B가 같은 뜻을 가진 대상이어야 한다. 여기서는 음식의 한 종류인 '떡볶이'와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추상명사인 '사랑'이 같은 대상으로 놓여있다. 아이가 실제로 의도했던 바는 '떡볶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즉, 화자가 의도했던 A와 B는 동치관계가 아닌 대상과 태도의 관계이다. '사랑'이라는 표현이 충분히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이 아이의 것인지, 지나가는 철수의 것인지, 또는 내가 떡볶이를 사랑하는 것인지, 떡볶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 즉, 표현이 의도한 바를 충분히 가리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같이 놓이기 힘든 단어가 'A는 B이다'라는 관계로 묶여져 자신에게 던져졌으니 제법 당황했을 것이다. 그라이스가 말했던 관련성의 격률은 여기서 적용된다. 아무 관련도 없고 관련지어져서도 안될 것 같은 표현들 간에서도 우리는 어딘가에 있을 유기적인 관련성을 찾으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어휘의 쓰임과 관련된 맥락적 단서가 부족할 때, 우리는 문장의 문법 구조에 집중한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A는 B이다'의 구조가 지켜진 표현이며, A가 잘못된 표현이다.

2. 'A는 B이다'의 구조가 지켜진 표현이며, B가 잘못된 표현이다.

3. 'A는 B이다'의 구조가 지켜지지 않은 표현이다.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일곱이나 여덟살의 지적 수준임을 고려할 때, 'A는 B이다'라는 구조를 아이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말을 내뱉을 때, 주로 가장 먼저 내뱉는 말이 더 중요한 정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본능적으로 B가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해석의 가능성 중에서 발음상 비슷한 '사람'을 '사랑'으로 표현했다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자, 자신의 아이가 떡볶이를 보고 인간이라고 판단했다. 엄마로서는 당장 고쳐주지 않으면 큰일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며칠 뒤, 떡볶이 포장 용기에 매직으로 턱시도를 그려서 결혼할거라고 가져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겠는가.


엄마는 위와 같은 사고과정을 거쳐 아이에게 말한다.


떡볶이는 사람이 아니야


이 거룩하고 장엄한 가르침에는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그러나, 아이는 시큰둥할 뿐이다. 인간은 소통을 할 때 익숙한 패턴을 통한 지속적인 교류를 선호한다. 이는 언어를 탄생시킨 원리와도 이어진다. 개체 간에 익숙한 패턴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규칙이 생겨나고, 이것이 표현으로 고착되면 언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패턴을 쫒는 이런 안정추구형의 성향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신조어나 처음 보는 신선한 구조의 문법표현 앞에서는 우리의 해석 시스템이 역락없이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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