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군산 여행을 다녀와서
봄나들이로 다녀온 군산 여행 사진을 보고 있었다. 사진 속 가족의 표정이 시큰둥하다. 사춘기 아들, 딸과 함께하는 여행이니 어릴 때처럼 마냥 반짝이는 웃음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여행자의 설렘이라곤 없는 표정들을 보니 군산에서의 일들과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성격이 모두 달라. 다 이상해. 어울릴 수가 없어.”
“왜? 엄마는 우리 가족이 다정하고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다솜이는 맥락 없이 화를 내고, 아빠는 또 버럭 대. 엄마는 유독 겁이 많아. 모두 너무 다르다고.”
“가족이어도 떼어놓고 보면 개인인데 성격이 다른 게 이상한 거야?”
“같이 있으면 불편하다는 거지. 나는 다음번 여행 안 갈 거야.”
맥락 없이 화를 내던 다솜이가 잠이 들고 버럭 화를 내던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낮게 들려오는 밤,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들은 불편한 속내를 꺼냈다.
아이들의 키가 엄마를 넘어서고 각자 방에 머무는 시간이 많을수록 함께 얼굴 보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적어 아쉽다. 특히 독립을 앞둔 아들을 보면 곁에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추억을 쌓고 싶어 조급해진다. 코로나로 여행이 조심스러운 시절임에도 소소한 국내 여행을 이어가려 애쓰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기억을 돌이켜 보면 여행지에서 겪은 일들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시간과 비용, 들인 수고에 비해 피곤함만 안고 돌아온 기억들이 많아 여행을 망설였다. 그럼에도 각자의 방에 들어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 가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시간과 공간은 여행만 한 게 없다 싶어 또 1박 2일 군산행을 감행했다.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첫 방문지는 경암동 철길마을이었다. 검정 차양막을 치고 알이 굵은 전구를 줄줄이 달아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 좁은 골목길. 쫀득이, 달고나, 아폴로, 브이콘 등 좌판 가득 추억의 과자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고, 그 사이로 복고풍 교복을 입은 관광객들의 북적임이 좋은 곳이었다. 한창 코로나로 조심스러운 시기에 이렇게 붐벼도 되나 싶었지만, 여행지의 맛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국자에 설탕을 가득 담고 연탄불에 올려 살살 저어가며 얼굴만 한 달고나를 만들고 노란 바구니에 먹고 싶은 과자들을 담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남편은 우리 사진을 찍으며 교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우리도 교복 맞춰 입고 사진 찍자는 건가? 번거롭게’라는 생각이 들어 얼른 숙소로 가자고 말했다. 이때부터 우리 여행이 싱거워지기 시작했음을 나만 몰랐다.
숙소는 근대화 거리에 있는 시대형 숙박 체험관 ‘여미랑’이었다. 박물관, 옛 군산 세관, 동국사 등 다양한 여행지를 둘러보기 좋고 아담한 정원이 딸린 예쁜 적산 가옥이라 모두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다솜이는 문을 열자마자 낡은 내부와 익숙하지 않은 일본식 가옥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덜댔다. 숙소는 바꿀 수 없으니 어쩔 수 없고, 대신 선유도에 가서 오토바이를 타면 재미있을 거라고 딸을 달랬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선유도로 향했다. 양쪽에 바다를 끼고 달리는 새만금 방조제 드라이브는 좋았다. 잔잔한 물결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선유도에 가까워질수록 밀려드는 차들로 점점 불안해졌다. 도착해 보니 작은 섬 안은 관광객으로 넘쳐났고, 좁은 도로는 차와 오토바이로 엉망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났다. 다솜이는 오토바이 대신 집라인을 타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나 집라인 또한 대기 줄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남편은 그대로 차를 돌려 섬을 빠져나왔다. 다솜이도 별말 없길래 얼른 회를 사서 숙소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수산 시장에서 장을 봐 돌아가는 길,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서해 낙조는 장관이었지만 가족들은 입을 꼭 닫고 있었다. “낙조는 역시 서해야!”라며 한껏 높인 내 목소리만 어색하게 차 안을 떠돌았다.
그래도 어쩌랴! 기운 돋우는 데는 맛있는 음식만 한 게 또 없으니 숙소로 돌아와 서둘러 상을 차렸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히는 광어회와 시원한 소주 한 잔에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아이들도 기운이 돌아왔는지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며 조금씩 분위기는 회복되었다. 이 기세를 놓칠세라 나는 이곳이 일제 강점기 쌀 수탈의 아픔을 지닌 역사 거리라고 알은체도 했다. 일정이 짧으니 적당히 배를 채우고 추천받은 야식 치킨도 살 겸 우리는 불빛이 들어찬 밤거리로 나섰다. 이국적인 거리엔 눈길을 끄는 소품 가게, 음식점이 많았다. 특히 활짝 열린 테라스 창을 통해 은은한 호박색 조명이 새어 나오는 2층 카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치킨 가게를 찾아 주문해 놓고 고풍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 카페로 가족들을 몰고 들어갔다. 풍미 좋은 커피와 밀크티, 쿠키를 먹으니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이것이 여행의 맛이라며 혼자 신나 사진도 찍어댔다. 치킨을 찾아 숙소로 돌아와 맥주를 꺼내오는 나에게 아들이 말했다.
“또 먹어? 온통 먹은 기억밖에 없네.”
“치킨은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이지. 치킨엔 또 맥주고. 내일은 박물관이랑 유명한 관광지 둘러보자.”
“굳이? 난 관심 없는데.”
“그래도 군산 왔는데 이름난 곳은 둘러봐야지.”
나는 아들의 눈치를 보았고 아들은 시큰둥하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치킨을 먹었다. 밤이 깊어 주변을 정리하고 씻고 나오니 어느덧 열한 시. 다들 자려고 누웠는데 다솜이가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조금 전까지 먹었는데 어떻게 배가 고플 수 있지? 성장기라서 그런가? 이해해 볼 새도 없이 남편이 호통을 쳤다.
“거짓 배고픔에 속지 마! 그만큼 먹었는데 배고플 리가 없다.”
“내가 배고프다는데 왜 아빠가 아니라는 거야!”
아빠의 큰소리에 다솜이의 울음은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가끔 겪는 일이지만 다솜이의 뜬금없는 말과 아빠의 예민한 반응에 당황했다. 마음이 상한 아이는 한동안 더 씩씩대며 울었고, 아빠는 내일 일어나면 바로 집으로 갈 거라며 돌아누웠다. ‘다들 왜 이러는 거지? 피곤한가?’ 울음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몇 분이 초조했다. 실컷 운 다솜이가 내 옆에 와 누웠다. 우느라 지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니 아이도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곧 잠이 들었다. 한숨을 돌리는데 가만히 누워있던 아들이 에어팟을 귀에서 빼며 말했다.
“난 이제 같이 다니기 싫어.”
돌아보면 여행지에서 나름 행복한 우리였는데 최근엔 왜 이렇게 돼버린 건지. 다솜이의 예민함을 핑계 삼기에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는데 그걸 몰라 답답했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 후드득 빗소리가 귓속을 파고들며 몸은 피곤한데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한일옥에서 식사하고 남편은 곧장 집으로 차를 몰았다. 차창으로 가보고 싶었던 이성당, 근대역사박물관, 군산 세관이 휙휙 지나갔다. 섭섭한 마음에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며 이번 여행을 되짚어 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 나선 길인데 군산에서의 일정이 아들 말처럼 먹었던 기억밖에 없으니 한심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체험한 것 없이 그저 구경꾼이 되어 부른 배를 출렁이며 돌아다니기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심지어 모든 일정이 나의 말과 선택에 따라 움직여졌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마치 내가 조종하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식구들이 움직인 것이다. 깨닫고 보니 모두 각자 귀한 시간을 내어 길을 나섰는데 나는 아이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에게는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것에 흠뻑 빠져들어 몸을 움직일 때 우리는 한결 재미있고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한다. 그것을 무시하고 나는 그저 구경꾼이 되어 겉돌기만 했다. 철길마을에서 복고풍 교복을 맞춰 입고 익살스러운 포즈로 가족사진 찍을걸. 사람들이 오토바이 타고 섬마을을 달리는 기분을 우리도 느꼈다면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이 풍성한 이야깃거리로 소란스러웠을까? 푸른 바다 위를 집라인에 매달려 신나게 활공했다면 다솜이는 울지 않고 잠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뒤늦은 후회가 왈칵 몰려와 코끝이 시렸다.
여행지에서는 그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체험과 도전이 있다. 아이들은 그런 일탈을 통해 호기심을 충족하고 여행이 주는 생기를 맛본다. 이제 내 스타일의 여행에서 벗어나 가족 모두의 개성과 취향이 녹아있는 여행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여태껏 내가 나서서 여행을 주도하는 것이 가족을 위해 좋은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과 아이들이 나에게 맞춰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뜨거운 한숨을 삼키며 답답했던 마음이 서서히 풀어졌다. 가족은 한 울타리 안에 뿌리를 내린 각자 다른 나무 같아서 저마다의 꽃과 열매를 맺어도 그 뿌리는 깊이 뻗어 서로 맞잡고 있음을 안다. 이번 여행이 조금은 삐거덕거렸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여행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함을 깨닫게 했다. 다음부터는 여행지 선정과 일정까지 가족과 함께하고 그들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하는 여행으로 디자인해야지. 익숙한 나를 벗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여행.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여행을 다시 꿈꾸며,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