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GRADUATION
#졸업시키는 #교사의 #회고록
졸업장을 인쇄하고 졸업 앨범 검수도 마쳤다.
졸업이다. 너희들의 졸업.
YOUR GRADUATION
매년 새로운 영혼들을 만나 한 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업'인 나에게도 너희들은 무척 신기하고 신선한 영혼들이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한 해 무사히 키워 올려 보내는 일이 올해만큼 파란만장한 적은 없었다. 이렇게 특별한 너희를 보내며 느끼는 이 요상한 마음을 기록해두지 않는 건
나와, 너희와, 그리고 우리가 보낸 시간에 대한 배신 같다.
졸업을 기념해 난 좀 솔직해 보려고 한다.
너희는 처음부터 나를 놀라게 했다.
3월. 새 학기 목표를 함께 적어나가며 나를 위한 것도 하나 추천해 달라 물었었다. 선생님의 목표는 호랑이띠인 우리로부터 살아남기-라고 누군가 말했을 때, 나는 그 참신함에 웃기만 했지 다사다난한 내 운명의 복선이리라 생각도 못했다. 생각해 보면 골 때리는 반이 되겠다며 우리 반 이름을 6학년 골반으로 하자고 했던 것 역시, 비범하기 짝이 없다.
나는 너희를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몸이 근지럽다며 학교 담은 왜 넘는 건지, 피곤하다면서 교실 문에서 턱걸이는 왜 하는 건지, 왜 시키지도 않은 씨름을 하다 울면서 들어오고, 왜 안방처럼 복도에 드러누워있는 건지.
오전 내내 아픈 것처럼 졸았으면서 방과 후엔 집에 가지 않고 교실에서 노는 이유도, 내가 야근이라도 하면 집에 갔다 굳이 학교에 다시 돌아오는 이유도. 솔직히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제일 따라가기 어려운 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는 너희의 기분이었다. 아무리 사춘기여도, 웃다가 짜증 내다가 다시 웃다가 우울하다가 하는 너희를 지켜보고 있으면 이러다 곧 다 같이 터지고 말겠구나 하는 위태로운 마음마저 들었다.
너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 사고를 제공했다.
책꽂이, 창틀, 소화기... 너희가 부쉈던 것들은 다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많다. 욕은 왜 그렇게 잘하고 다툼은 어찌나 잦았는지. SNS로 서로를 '저격' 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고, 무슨 절교를 그렇게 밥먹듯이 하는지. 13살들의 연애사가 무슨 이렇게 혼란하고 그럴 때마다 온갖 소문은 또 얼마나 빨리 퍼졌던지.
그럴 때마다 너희는 나에게 당장 너희의 이야기를 들을 것! 과 해결해 줄 것! 을 요구했고 그래서인지 올해는 하루 종일 상담만 하기에도 벅찼다. 내가 연애하듯 너희 이야기를 듣고 낮밤 가리지 않고 너희와 카톡 했던 걸, 그래서 매일매일 탈수된 빨래처럼 축 늘어져 퇴근했던 걸 너희가 알고 있을까 모르겠다.
그래. 단언컨대 우리가 평화롭고 모범적인 반은 아니었다. 늘어난 내 흰머리와 주름살이 증명할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보내는 마음이 마냥 가볍지 않고 아쉽다. 이상하다.
너희는 톡 쏘는 탄산 같았다.
그 어떤 일도 너희의 명랑함을 죽일 수는 없었다. 친구와 다퉜다가도 금세 장난치며 떠들었고, 꾸지람을 들었다가도 또 금방 와하하- 폭소를 터뜨렸다. 사소한 일에도 우와 - 감탄했다가 또 그만큼 사소한 일에 킬킬 킬 웃어댔다. 노래를 틀어주면 떼창을 하고 야외로 나가면 춤을 추고. 밥 먹을 땐 소떡소떡 하나에 흥분하고, 퀴즈에 걸린 사탕 한두 개에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청량했다. 너희에게는 무거운 일도 쉬이 날려주는 힘이 있었고 그래서 나도 결국은 웃어버리게 되는 일이 많았다.
또 너희는 순진해서 귀엽기도 했다.
고작 열 새해째 세상에 살면서 평소엔 화장이니 연애니 떠들고, 자기들도 알건 다 안다며 허세 부릴 때는 언제고, 작은 일에도 늘 뛰어와 재잘거리기 바빴다. 너희가 나무 시계를 만들던 날, "선생님 제거 보세요!" 하는 말에 내가 똑같이 스물여덟 번의 감탄을 했던 일을 알까? 반 대항 럭비 경기에 지고는 다 같이 씩씩거리며 울고 왔던 일이나, 나보다 커버린 덩치로 낯선 곳에 가면 언제나 내 뒤에 숨는 일 같은 것들. 마칠 때는 꼭 사랑합니다- 인사하고 가라는 담임의 요구를 무시할 만도 한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도 꼭 하고 가는 일들이.
속으로 얼마나 나를 웃겼는지 너희는 모를 테다.
무엇보다 너희는 자라는 걸 보여주는 아이들이었다.
자신밖에 모르는 것 같던 철딱서니가 어느 날 내 무거운 짐을 받아 들었을 때나, 화가 나면 먼저 나가던 주먹을 접고 교실에 돌아왔을 때. 휘둘리던 친구들에게 떨리긴 해도 분명한 목소리로 생각을 말하는 얼굴이나, 야 이거 받아 적는 거야 하며 수업시간에 친구들을 챙기는 모습들. 서로 싸우다가도 야 이건 아냐- 하고 말리는 말이나, 다른 친구를 놀릴 때 그러지 좀 마라- 타이르는 소리 같은 것들. 놓치기 쉬운 너희의 그 순간들이 나를 크게 안도하게 하고 뿌듯하게 했다. 그래서 또 내일을 너희와 부대끼며 살 수 있었다.
함께 지내는 고충이 나에게만 있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안다.
하루 종일 바라봐야 하는, 자신의 고집을 쉽게 꺾지도 않는 어른이 열셋 너희에게 어찌 쉬웠겠나.
습관처럼 우리는 같은 편이야! 우리는 우리를 챙겨야 해! 했던 일도,
미래를 위해 공부 조금만 더하자- 했던 것도,
예의 바르게 굴어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말아라 했던 수많은 말들도
어쩌면 너희에게는 압박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쉽지 않은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교사였고 너희는 알게 모르게 그에 부응하기 위해 애썼을 거다. 우리 서로 참 수고했다.
나는 매년 새 학급을 맡는 첫날, '동반성장'이라는 말을 가르친다.
서로 가르치며 배울 때 더 깊고 넓게 자라날 수 있다고.
그 말대로, 너희가 너희 자신과 서로를 키워냈음을, 그리고 그 속에서 나 역시 자라났음을 실감한다.
성장한 너희의 모습에 내가 자부심을 느끼듯이 너희 자신도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다.
살아보니 1년은 정말 잠깐이더라. 너희의 긴 삶에서 올해는 그보다 더 찰나일지도 모르겠다.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
늘 말하듯 나의 바람은 너희가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만 언젠가 너희의 마음속에 떠오를 때
우리가 함께 맞은 무수한 꽃, 비, 낙엽, 눈들이 유쾌하고 따뜻한 기억이기를,
그래서 그것을 뿌리로 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새로운 출발을 마음속 깊이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