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미디어에서는 3월의 학교를 희망과 설렘이 교차하는 곳으로 묘사하곤 한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긴장감,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맞이하는 설렘, 올 한 해를 다지는 희망.
3월은 왠지 파릇파릇한 성장 만화 일 것 같다. 물론 그렇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두둥- 개봉박두, 3월의 학교 고난 편. 올해는 특별히 b급 감성의 코미디다.
#이빨의 제조년월
왜 그럴까. 아이들은 늘 교사의 ’ 나이‘를 궁금해한다.
새 학기 첫날의 단골질문이자, 10년여의 세월 동안 변하지 않는 스테디 질문이다.
신규 시절 선생님은 몇 살이야- 하고 솔직히 말해주었다가 호된 민원에 시달렸던 나는
이후로 정확한 나이 언급을 피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100살이야, 네가 원하는 그 어떤 나이도 될 수 있지,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 하며 빙글빙글 대답을 피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아이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온갖 기상천외한 질문들로 나의 나이를 알아내고자 한다.
몇 학번이에요, 몇 년 전에 수능을 치셨어요, 선생님이 되신 지 몇 년 되셨어요, 하는.
뻔히 보여 귀여운 질문들을 지나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선생님, 지금 이빨로 몇 년 정도 사셨어요?”
짧은 정적이 흐른 뒤 모두 함께 폭소를 터뜨렸다. 나이를 묻는 수많은 물음 중 단연코 새로웠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내 생각 범위의 밖에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저 목적은 뻔한 질문에도 엄지를 치켜세워줄 수밖에. 이야- 그거 진짜 참신한 질문인걸? 하고.
# 엉덩방아의 수준
수업 시간에 엉덩방아를 찢었다. 정말 크게! 철퍼덕!
난 의자에 앉으려던 거였는데 바퀴가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은 거였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하며 뛰어오는 아이들의 표정만 보고도, 내가 얼마나 심하게 넘어졌는지 짐작이 갔다.
대충 좀 넘어졌다면 와하하- 하는 폭소가 터졌을 테니까! 선생님 넘어졌대요- 하고 소리치는 말들이 들렸을 테니까!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진짜 심각한 상황이면 장난도 치기 어렵다.
넘어진 엉덩이는 찌릿찌릿 아프고, 왠지 꼬리뼈의 상태도 좀 의심스러운데
그것보다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더 커서 도저히 아픈 티를 낼 수가 없었다.
교사로서의 내 권위는! 그동안 잡던 무게는! 3월 한 달 잘 관리한 내 이미지는!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의자를 끌어다 앉기로 했다.
괜찮아 얘들아- 하하하. 하던걸 마저 해볼까.
다음날 야무진 s가 물었다. 한껏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힘껏 목소리를 낮추어서, 선생님- 어제 넘어지신 건 괜찮으세요?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괜찮다며, 어제 선생님 좀 웃겼지? 말하는 나에게 돌아온 답이 압권이었다.
선생님, 그건 웃긴 수준이 아니라 사고 수준이었는데요?!
젠장. 더 부끄럽네.
# What’s your name?
새로운 학년이 된 아이들을 데리고 3월 한 달간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있다면 ‘같은 반‘으로서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편안하고 친근한 학급 분위기가 아이들의 적응을 돕고, 또 학교 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놀이 활동이든 빙고든 퀴즈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학생들이 서로의 이름을 외우고 서로에 대해 알도록 한다.
이제 모두가 모두의 이름을 안다고 확신하게 된 바로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유난히 이름 외우기를 어려워하던 h가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선생님 저 이제 우리 반 이름 다 외워요-. 시험해 보세요.
우와 잘했네, 대단하네, 치켜세워주곤 숙제 검사를 하려다가 나도 모르게 물었다.
“h, 근데 선생님 이름은 알지요? “
그런데 응당 나와야 할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화사하던 h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화장실에 가고 싶은 사람처럼 찌푸려졌다.
야! 너 진짜 심하다! 야 설마! 하는 주변 학생들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내가 너를 한 달이나 가르쳤다 이 녀석아-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선생님 이름 언제 말해줬어요!! 그냥 우리 반 선생님이라고만 했지!”
아이고 두야.
그래. 네가 기억하지 못하면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이지. 이러니 내가 같은 말을 하고 또 할 수밖에.
씩 웃으며 선생님 자기소개 다시 해주세요- 하는 h에게맥없이 웃어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