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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na Aug 14. 2023

구독취소, 언팔, 그리고 손절

버튼식 인간관계


아침부터 Y의 입술이 부루퉁했다. 어찌나 튀어나왔는지 통통한 볼살이 쏙 들어갔다.

어서 와라- 하는 인사도 무시하곤 가방을 내려놓더니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랩 하듯 내뱉었다.

아침에 같이 오는 4반 애가 오늘 15분이나 늦게 왔어요. 개열받아요-


과연 짜증이 날법한 이야기였다.

그래. 화날만하네- 담부터 늦지 말라고 얘기했어? 하고 묻는 말에 Y가 눈을 크게 뜬다. 아니요?

응? 네가 말없이 늦어서 짜증 나고 화가 났다고 이야기했어?

그랬더니 Y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선생님, 그걸 왜 말해요?



구독취소, 언팔 그리고 손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잘 다녀와라- 하는 말.  

학생이었다면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일반적인 말에 부분적인 반대 의견을 살짝 밝히고 싶다.

사실은 좀, 싸워보기도 해야 한다.



세상사.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고

오히려 이해 안 되는 사람, 답답한 사람, 부딪히는 사람은 넘쳐난다.

안타깝게도 가끔은,  누가 제발 친구 해달라고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하기 싫은 사람과 일해야 한다.

그러니까  ’ 사람‘ 마음대로 안 되는 것 중 가장 큰 것이 아마 ’ 사람‘ 일테다.



아이들이 지내는 곳이라고 다를 리가.

쟤는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쟤랑은 절대 같은 조 안 하고 싶어요, 쟤가 저를 기분 나쁘게 했어요- 하는 일들은

학교에서 가장 흔한 갈등상황 중 하나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사실, 그걸 배워야 하기도 한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존중하며 원만히 지내는 방법.

갈등을 단절과 폭력 없이 해결하는 방법.

사람들 사이를 조율해서 서로 타협하는 방법.

줄여서 사회성.


그러니 진짜로 사실은, 아이들은 좀 싸워보기도 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안전한 환경에서 폭력 아닌 방법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특히 고학년 교실에선,  사실 얘네 둘이 어제 싸웠어요-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왜 싸웠는데, 도와줘?- 하고 물으면 아 뭐 별거 아닌 시답잖은 거였는데요-로 시작해서  근데 화해했어요- 하고 머쓱하게 웃던 얼굴.

그렇게 서로 조금 민망한 듯 데면데면하다가 또 그날 오후면 괜찮아져서 야 pc방 콜? - 하며 뛰쳐나나곤 했다.


그럼 교사인 나는 생각하는 거였다.

쟤네 둘이 어떤 조정과정을 거쳤구나-.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구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쟤네 둘은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구나-.




그런데 최근으로 올수록 점점 더 (이게 복에 겨운 소리처럼 들릴 순 있겠지만) 싸우지를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친구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잘 표현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하루종일 함께 생활하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싶겠지만, 아이들을 조금만 섬세히 관찰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예컨대, 친구의 말에 기분이 상해도 ”그렇게 말하면 내가 기분 나쁘지- “ 라던지 ” 말을 부드럽게 해 주면 좋겠다-“ 라던지 하는 말을 하지 않고

운동장에서 심한 태클을 당하고 와도 “야 - 너무 심한 거 아냐?” 하는 말을 못 해 씩씩대며 들어오거나,

친한 친구가 자기를 빼놓고 먼저 가도 “왜 먼저 갔어? 나한테 화났어?” 하고 묻지 않고 답답해한다.

사실, 하지 ‘않는’ 건지. 하지 ‘못’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상대방과 의견이 다를 수 있는 상황, 직접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직접적인 충돌 대신 아이들이 택하는 전략은 세 가지다.


첫째,  교사인 내게 말해 해결을 촉구한다. 이를테면 나는 마음이 상했으니 선생님 당장 해결해 주시오! 하는 식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꼭 필요한 전략이다.

문제는 아주 사소한 상황까지 교사가 개입해서  직접해결해 주는 것이 늘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거다.

아이들이 내게 와서, “선생님- 쟤가 모둠활동할 때 저 툭 치고 갔어요 - “라는 식의 말을 하면,

나는 “걔한테 왜 그랬는지 물어봤어? 일부러 그랬는지 확인했어? 사과해 주면 좋겠다고 정중히 이야기했니?” 하고 묻는다.

먼저 ‘스스로’ 갈등 상황을 다스려보라는 이야기였는데, 안타깝게도 다수의 학생이 눈동자를 또르륵- 굴리며 내 질문을 피해버린다.


둘째, 적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표현한다. 내가 ‘폭발’이라고 부르는 전략이다. 친구들과의 해결되지 않은 갈등 상황을  마음에 가득 품고는

폭력적이거나 비신사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거다. 특정 친구들에게 빈정거리거나, 지속적으로 놀리거나, 욕설을 하거나.

간혹은 더욱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마지막, 참는다. 그냥 꾹, 눌러 참는 거다.  아무 일이 없었던 듯 모르는 체하고 평소처럼 지낸다.

그러다가 또다시 비슷한 갈등상황이 벌어져도 참는다.

그리고 서서히 친구와 멀어진다.



결국 세 가지 전략 모두 하나의 결말에 도달한다.

단절.



수업 시간에, ‘친구가 나를 화나게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놀랍게도 과반수 이상의 학생들이 ’ 한 번 더 기분 나쁘게 하면 그냥 손절해요 - ‘라고 대답했다.

물어본다던지, 따진다던지, 차라리 싸운다는 대답을 기대했던 마음이 약간 착잡해졌다.

손절, 때에 따라 필요하다. 근데 손절이 이렇게 자주, 그것도 친구 관계에서 사용할 단어인가, 싶다.



아이들이 친구들을 대하는 방식이 sns에서 버튼을 누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흥미와 관심거리를 주면 손가락 한 번을 눌러 구독했다가,  불편한 마음을 주면 금세 취소하는 식이다.

팔로우와 언팔로우 사이에는 어떠한 감정적인 노력도 없다. 버튼을 누르는 0.1초면 하나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아쉽지도 않다. 또 다른 0.1초면 새로운 관계를 쌓을 수 있으니까.

아이들이 싸울 필요도, 감정을 낭비할 필요도 없는 버튼식 인간관계에 익숙한 것 같다.

그러니 제 옆의 친구에게도 두 번째 기회, 개선할 여지, 조율할 관계를 남겨주지 않는 것이다.

싸우지 않는, 그리고 서로 기대하지도 않는 이 묘한 평화가 과연 괜찮은 것인지, 조금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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