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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Jun 17. 2024

마흔다섯에 자전거를 배웠다.

12살쯤이었을까. 부산에 있는 사직 운동장으로 자전거를 타러 갔었다. 대여 시간은 단 1시간. 1초라도 땅에 두발이 닿고 싶지 않았다. 운동장 옆으로 진열된 상점들, 지나가는 사람들을 여유 있게 쳐다보면서도 바람이 내 뺨을 스칠 때마다 씽씽 소리가 났었다. 내르막길이 다달을 때면 두 발을 공중으로 번쩍 들고선 가속도의 짜릿함을 만끽했다. 그 당시 내가 어떻게 자전거를 배웠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자전거 타러 가는 게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었다. 그렇게 삼십하고 삼 년이 넘은 세월만큼 자전거와는 거리는 멀어졌고 자연스레 내 몸도 그 기억을 잊어버렸다.

 

어느 날 평소에 안부를 묻고 지내는 백발의 친구가 스코틀랜드 서쪽에 있는 아랜섬으로 일주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 친구가 79살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그날은 나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만 같았다. '너도 해 봐! 지금부터 딱 30년만 타면 일흔에 자전거 여행쯤은 눈 감고도 갈 수 있어.' 

 

작년 9월, 그렇게 시작된 '마흔다섯에 자전거 타기'. 막상 까치발을 하고 간신간신 의 자전거에 올라보니 자전거가 왜 이리도 높던지. 전봇대 줄을 타려고 올라 선 예비 곡예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9월의 따뜻한 바람에도 손과 발이 바들바들 떨렸다. 깊게 숨을 한번 고르고 페달을 밟았다. 하나. 둘. 셋. 딱 세 바퀴만 돌렸을 뿐인데 숫자 삼을 그리면서 숲 속으로 나동그라졌다. 왼쪽 무릎 청바지가 한자의 일처럼 찢어졌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면서 나는 깨달았다. 자전거를 배운다는 건 두려움과의 싸움이라는 걸. 

 

그 가을동안 나는 몇 번이고 자전거에 몸을 실었고 또 종종 떨어졌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세상 구경을 하지 못했던 자전거를 다시 꺼냈을 때 나는 마흔여섯이었다. 이제는 자전거 타는 게 제법 즐겁다. 아마도 자전거를 타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치리치리 들리는 새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 보기도 하고 시냇가로 나와 앉은 검은 소가 몇 마리 인지 세어 보기도 한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 정도로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속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내리막길에서 오르막길로 오를 때면 어디서부터 발을 재빨리 감아야 하는지 감이 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전거 타는 게 무섭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만큼 할 수 없는 것도 여전히 많다. 바람 때문에 앞머리가 눈 위로 떨어졌을 때가 곤혹이다. 어째 머리카락 하나도 휘 제치질 못 하니. 어찌할꼬. 어깨가 갑자기 간질간질거릴 때도 긁을 수가 없고 고개를 돌려 스쿠터 타는 아들이 나를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것도 엄청 무섭다. 

 

어제도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자전거를 타고 옆 동네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두 마리의 개와 산책하는 할머니가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검은 개 한 마리는 할머니 바로 왼편에서 걸었고 갈색 개 한 마리는 할머니 보다 두 걸음 앞에서 오른쪽 나무를 향해 킁킁거리며 걷고 있었다. 잠깐 멈춰서 걸어갈까도 생각했지만 할머니와 갈색 개 사이의 폭이 내가 지나쳐도 괜찮을 것처럼 보였다. 조심조심 페달을 밟으며 할머니 옆을 지나쳤는데 갈색 개가 내 쪽으로 몸을 확 틀어버리는 게 아닌가. 순간 바퀴 밑으로 개가 치일 것 같아서 반사적으로 바퀴를 틀었고 내 몸뚱이가 숲 속으로 나가떨어졌다. 왼쪽 손바닥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사실 왼쪽 손바닥은 저번주 토요일에 자전거를 타다가 이미 다쳤던 자리라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은 채 살점이 크게 찢어졌다. 할머니도 놀랬는지 괜찮냐며 나에게 다가왔다. 사람은 참 웃긴다. 그렇게 아팠는데도 피가 나오는 손바닥을 허리 뒤로 감추고는 벌떡 일어나서 괜찮다며 웃었다. 그 마력의 힘으로 쓰러진 자전거를 발딱 일으키고 자전거를 잡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다. 솔직히 탈 힘이 하나도 없었다. 왼쪽 복숭아뼈도 찌릇찌릇거리더니 거기서 피가 새어 나왔다. 청바지 끝이 복숭아뼈에 닿을 때마다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걸었다. 


마흔다섯에 시작한 자전거. 어렸을 때 잘 탔으니 몸이 기억할 거란 나의 착각이 내 몸과 함께 내동댕이질을 당했을 때 정말 끔찍했다. 사기당한 기분이었고 자전거에 바이러스라도 달린 것처럼 만지기도 싫었다. 그 서러움과 미움, 두려움을 이기려면 그 두려움을 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만큼, 자전거를 타는 내가 더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그게 마흔여섯에 오는 설레임일까. 다음 주 토요일이면 또다시 자전거를 타고 있을 게 뻔하다. 다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다. 



*한정원의 <시와 산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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