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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Nov 12. 2024

떠오르는 영국 스타 '그리프' 콘서트 - 두 딸과 함께

작사·작곡가, 가수, 프로듀싱, 패션 디자이너 Griff (그리프) 

글라스고의 금요일 밤거리는 우리가 사는 마을과 확연하게 달랐다. 강 사이를 두고 반짝이는 집들의 불빛이 화려했고 늦게까지 문을 연 펍에서는 라이브 뮤직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술 마시고 비틀거리거나 욕하며 고함치는 소리까지 몇 배나 사나웠다. 두 딸을 데리고 이곳을 나온 이상 나는 도시의 밤 주정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했다.   

"엄마 옆에 바짝 붙어서 걸어!"

버스 정류장에는 한 다섯 명의 젊은 아이들이 어슬렁거렸고 내가 지나가자 '칭챙총창' 중국말을 흉내 내면서 비웃기 시작했다. 겨우 여섯 시 반이었지만 짙은 어둠이 깊게 내려와 싸늘한 바람이 소매사이로 파고들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가로 불빛 밑으로 뱀처럼 길게 늘어진 줄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했다. O2 아카데미 공연장.


내 생에 유명한 가수의 공연장을 찾았던 때가 국민학교 적 김건모와 대학교 적 유승준이 전부였다.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일 테다. 그리프는 영국의 싱어송 라이터이자 프로듀서, 디자이너다. 그녀는 2021년 영국 시상식에서 라이징 스타로 선정되었고 2024년 'Vertigo'라는 앨범을 냈다. ''현기증'이라는 곡으로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내가 무너지기보다는 무한한 변화로 바꾸며 소망을  노래하는 곡이다. 올해 6월에는 테일러 스위프트 투어에서 오프닝 무대를 열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40분 정도 기다린 긴 줄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드디어 콘서트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스탠딩석이라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이 앞으로 달려갔다. 앞에서 여섯 줄쯤 되다 보니 무대와 제법 가까웠다. 마흔여섯 살인 나는 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두 명의 십 대 아이들을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공연은 8시에 아지아(Aziya)라는 가수가 삼십 분동안 열어주었고 오프닝이 끝난 후 콩나물시루가 된 사람들은 지루하게 또 다음을 어떻게 기다리나 싶었지만 흘러나오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에 몸이 절로 움직였다. 거대한 물결이 일어나듯 팬들의 일렁거림이 스타만큼 멋있었다. 오랫동안 서서 기다리는 나로서는 흥도 나지만 벌써부터 허리가 찌릿찌릿 아파왔다. 그 좁은 공간에서도 입고 있는 예쁜 드레스 자락을 잡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허리를 풀어야 했다. 어째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9시가 조금 넘자 드디어 기다리던 그리프가 등장했다.  


그리프는 노래 말고도 직접 옷을 디자인하기로 유명하다. 이번 공연에는 어떤 옷을 만들었을까가 팬들의 또 다른 관심사였다. 비단처럼 부드럽고 윤기 나는 초록색 드레스에 빅토리안 파티 때 입을만한 볼륨 있는 검은색 레이스가 양 옆으로 달려 있었다. 'Vertigo'라는 첫 곡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놀랍게도 그리프의 목소리가 어마어마한 함성을 뚫고 내 귀에 선명하게 닿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연한 청록색의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떠오르게 한다. 민트색상이지만 민트맛이 아니다. 독특한 피스타치오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오드득 씹히는 견과가 정말 감칠맛 난다. 무엇보다도 부드럽고 달콤해서 한 입 더 먹고 싶게 되는 그런 노래였다. 


공연 중간쯤에 그리프가 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우리가 서 있는 곳보다 더 뒤로 걸어가서 기타를 메고 'So Fast'를 불렀다. 이 곡은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아이들이 적어도 한 곡은 따라 불러야 되지 않겠냐며 가르쳐 준 곡이었다. "You don't have to go so fast, so fast" (너무 빨리 갈 필요는 없어.) 나도 머리를 살랑거리며 후렴부를 따라 불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I miss me too'라는 곡인데 '예전의 내가 그립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마지막 구절에서 그리프가 하이 노트를 찍는데 어떻게 이런 고음이 조그마한 몸집에서 흘러나올 수 있을까 믿겨지지 않았다. 그리프는 마치 삼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려는 듯 노래하면서 시선을 한 곳에 멈추고 또 멈추었다. 모든 곡이 끝나고 아이처럼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더니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코가 땅에 박히도록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23살의 청년 그리프. 참으로 빛났다. 


그리프의 아빠 마크 그리피스(Mark Griffiths)는 *윈드러시 세대(Windrush Generation)에 속했던 자메이카 이민자의 아들이고, 그녀의 어머니 킴(Kim)은 베트남계 중국사람이다. 내 남편의 할아버지도 윈드러시 세대로 그 쯤에 자메이카에서 낯선 런던 땅을 처음으로 밟게 되었다. 그리프를 보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절로 마음이 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혼란스러운 자신의 정체성을 노래에 담아 그녀만의 독특함과 고유함으로 불꽃처럼 자신을 발산시키는 그녀가 자랑스럽다. 


밤 11시가 다 될 무렵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또 다른 기차를 타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우리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실실 웃고 있었다.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그리프의 노래에 어깨까지 흔들렸다. 다른 사람들이 모를 우리만의 흥분된 이야기가 오래갈 거라 생각하니 아픈 허리가 다 낫는 기분이었다. 


*윈드러시 세대 (위키백과 참조)

영국시민자에서 출생하였거나 당대 영국 식민지의 국적을 지닌 이들이라면 영국 본토에서의 거주권을 부여했다. 이로 인해 1948-1970년간 약 50만 명이 이민 왔고 이는 영국 정부에서 장려한 것이었다. 영국은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갓 헤어 나온 상황으로 심각한 인력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시 영국으로 이민온 이들을 '윈드러시 세대'라 부르는데, 윈드러시 세대 이민자들이 타고 온 배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리프의 공연



'I miss me too'  하이노트 찍는 부분


'Head on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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