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비행, 항공엔지니어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왼손 손끝이 묘하게 시렸다.
마치 아직도 그 비행기의 이끼가 낀 금속 표면에 손을 대고 있었던 것처럼.
어젯밤 꿈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지금도 그 기내의 공기, 승객들의 표정, 갑자기 날아오르던 항공기의 진동이 마음속에 또렷했다.
커튼을 걷었다.
햇살은 무심하게 바닥을 덮었고, 세상은 여전히 평온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엔 어딘가 조용히 흔들리는 파문이 남아 있었다.
그 항공기는 정말 꿈이었을까.
아니면 언젠가 실제로 보낸 적이 있었던, 내가 잊고 지낸 누군가의 마지막 비행이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자주 그 꿈을 떠올렸다.
특히 하루의 시작이 조금 서늘하거나,
게이트로 향하는 발걸음이 괜히 무거운 날이면.
그 유령 비행기의 풍경은 나를 다시 삶의 가장 깊은 질문 앞에 데려다 놓았다.
"나는 누구의 출발을 돕고 있는가."
"나는 과연 그들의 여행을, 마지막까지 제대로 점검하고 있는가."
정비사의 일은 보통 사람들의 시야에서 비껴 있다.
그늘진 격납고, 소음 가득한 활주로,
우리는 묵묵히, 그러나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많은 출발을 준비한다.
조용한 뒷모습으로 누군가의 여행을 시작하게 만든다.
어느 날은, 이륙 직전 조종사가 무전으로 말했다.
“탑승객 중에 한 분이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때 나는 기내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눈물을 닦고 있는 중년의 여인을 봤다.
그녀는 얼마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고
이 비행은, 그의 생전 마지막으로 예약해 둔 여행이었다고 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비행에는 언제나 삶과 죽음, 기대와 이별이 함께 타고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점검을 할 때마다 나는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게 되었다.
조금 더 오래 타이어의 마모를 들여다보고,
조금 더 자세히 시트벨트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저 물리적인 안전을 넘어서,
내가 돌보는 이 항공기에 실릴 마음들까지 함께 떠올리며.
꿈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 있다.
“얘야, 이 베개 좀 바꿔줄래? 불편해서 그래.”
그 부탁은 어쩌면, 이 세상의 수많은 목소리를 대신해 내게 전해진 마지막 요청이었을지도 모른다.
작고 사소한 배려 하나가, 그 사람의 마지막 기억을 바꿨을 수도 있었다.
이제 나는 다시, 게이트로 향한다.
여전히 수많은 출발이 기다리고 있다.
보딩 브리지의 끝, 탑승자의 눈빛, 활주로의 엔진음.
모든 것이 어제와 같지만,
나는 어제와 다르다.
이륙 전 체크리스트를 넘기며 나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항목을 더 추가했다.
“당신의 손끝은, 지금 이 비행을 사랑으로 점검하고 있습니까?”
그 질문이, 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