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직업, 트라우마
전쟁을 다녀온 군인들이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총성,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고,
한동안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진정시키는 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전쟁터는 얼마나 끔찍할까.
하지만… 그건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겠지.
그런데 요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나도 전쟁을 다녀온 걸까?
두바이에서의 6년.
나는 매일 하늘을 나는 항공기들과 함께 있었다.
하루에도 여러 대의 항공기.
각기 다른 출발 시간, 연료, 결함 상황.
그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담고 항공기마다 실시간으로 반응해야 했다.
항공기에 Fault 메시지가 켜지면
동료들과 함께 조종석으로 올랐고,
실수를 허락하지 않는 세계에서
초 단위로 판단하고, 움직였다.
잠깐 눈을 감으려 해도
머릿속은 잠시도 멈추질 않았다.
“저 항공기는 몇 시에 출발하고,
이 항공기는 타이어 교체가 필요하고,
연료 체크는 했나?”
잠드는 담밤에도
나는 깨어 있었다.
그렇게 6년을 보내고,
나는 호주로 돌아왔다.
평화로운 동네.
매연 없는 하늘.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여전히 공항 안에서 헤매고 있었다.
매일 밤,
나는 항공기들과 씨름하는 꿈을 꾼다.
고장 난 엔진,
터진 타이어,
새어 나오는 연료.
현실에서는 다 사라진 상황인데,
꿈속에서는 아직도 바쁘다.
심지어 그 꿈은 너무나도 생생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축 처진다.
마치 진짜 밤새 일하고 나온 사람처럼.
처음엔 그냥,
직업병이려니 했다.
그럴 수도 있지.
수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반복되는 이 꿈.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이건 트라우마다.
주변에 이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처음에는 놀라고,
이내 진심으로 위로해 준다.
하지만 그 어떤 위로보다
내가 필요했던 건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줘야 했다.
"그래, 너는 진짜 열심히 살았어.
그 치열함이 아직도 너를 붙잡고 있는 거야."
우리는 종종
'전쟁'이라는 단어를 너무 멀게 생각한다.
전쟁은 총을 든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병원에서,
회사에서,
항공기가 있는 공항에서,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밤이면 모래 바람이 휘날리는 공항을 뛰어다닌다.
엔진 소리 없는 하늘을,
결함 등이 켜지지 않는 밤을,
마음 놓고 잠들 수 있는 새벽을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