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엔지니어, 공항
어릴 적 동네 병원에 가면 항상 나이 든 따뜻한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감기든, 배탈이든, 팔을 다쳐도 늘 그분이 진료해 주셨다.
처방전에는 언제나 손글씨가 가득했고, 약을 건네며 "밥 든든이 먹고, 푹 쉬면 나아요." 하던 말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는 지금 항공 엔지니어로 일한다.
어릴 적 그 병원처럼, 낯선 시드니 공항의 램프에서 하루를 보낸다.
본사에서는 B1, B2, Structure, 엔진… 분야마다 수백 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팀을 이루지만, 이곳에선 단 세 명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기체에 문제는 없는지, 전자 장비는 제 역할을 하는지, 기내 엔터테인먼트가 잘 작동하는지까지—모두 나의 몫이다.
마치 동네 병원의 의사처럼.
나는 이 항공기의 감기와 골절과 근육통을 동시에 돌보고 있다.
비행기는 매일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다. 피로가 쌓이고, 어디선가 조용히 틀어지는 부분도 생긴다.
정비 매뉴얼은 약 처방전 같고, 경고등은 환자의 열과 같다.
작은 결함이라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기내 갤리에 타는 냄새가 난다는 보고 하나에도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예전 그 의사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분도 어깨너머로 이웃들의 삶을 지켜보며, 조용히 책임을 다했겠지.
아마도 내가 이곳에서 비행기를 돌보는 것처럼.
두바이의 항공사에서는 매일 수백 명이 함께 일했었다.
각자 맡은 분야가 있었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벽 6시, 어둠 속 활주로 끝에서 나 홀로 서 있다.
등 뒤의 조용한 기체가 다시 하늘로 떠오르기 전까지, 나는 오늘도 이 비행기의 ‘의사’다.
사람들이 잘 모른다.
비행기를 돌보는 일이, 마음을 돌보는 일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어디가 아픈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대상에게 귀 기울이고, 눈빛으로 상태를 읽어내야 하는 일.
가끔은 묻는다. 왜 이 일을 계속하냐고.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하늘을 무사히 나는 그 순간, 내가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드는 기분이 드니까요.”
언제나 조용하고, 늘 바쁘고, 종종 외로운 이 일.
그래도 이 일이, 내가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가장 분명한 방식이라는 걸 안다.
비행기를 고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일처럼 그렇게 섬세하고 따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