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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Mar 12. 2022

치매환자에게 거짓말하기

내가 가진 거짓말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다. 



착한 거짓말은 없다.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다. 내가 좋은 의도로 거짓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한다. 그래서 되도록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무던히 노력해 왔다. 그리고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굳이 필요가 없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는 대신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상황을 회피하거나 하더라도 곧 사실대로 말하고 사과하려고 했다. 그랬는데... 


치매 어르신을 돌보면서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 


요즘에는 아주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집에 간다고 하는 어르신에게 방금 아들에게 전화가 왔어요라고 거짓말을 하거나 서로 싸운 어르신들에게 저쪽에서 아주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더라고 거짓말을 한다. 어르신이 사장을 찾을 때에는 내가 대표이지만 사장님은 어디 나가셨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배고프다고 밥을 달라시는 경우에는 식사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지금 밥을 하고 있다고, 밥하는 사람에게 야단을 쳐주고 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나름의 착한 거짓말은 없다는 신념이 허무하리만치 매일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죄책감은 없다. 치매어르신들과 생활하다 보면 일단 그 순간만을 넘기는 것이 중요할 때가 많다.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보면 거짓말은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어쩔 수 없다고 핑계 대며 나는 지금까지 계속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고 치매어르신을 돌보는 것은 불가능할까?



매일 거짓말을 하며 살고는 있지만, 아직도 나는 착한 거짓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나 편하자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대화하면서 공감해주고 화제를 전환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돌보는 것도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에너지도 많이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노력을 해서 어르신을 돌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르신을 속이는 것은 물론 잘못된 일이지만, 그 거짓말이 어르신에게 크게 의미가 없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어르신을 속여도 괜찮지 않을까? 방금 대화한 것도 잊는 다면 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용서되지 않을까? 


게다가 돌보는 사람이 편해야 오랫동안 잘 돌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돌보는 사람의 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거짓말은 나쁜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잘 돌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변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누군가는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그 정도 거짓말은 해도 되지 뭘 그런 것을 가지고 고민씩이나 하는 것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본인이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니냐,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 위선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변명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행동이 올바른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행동이 해도 되는 행동이 되는 순간 올바른 행동의 기준이 흔들리게 된다. 만일 납득할 만한 변명을 가지고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어쩔 수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기준은 흐려지고 그동안 내가 그 기준을 지키려 노력해왔던 것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어르신께 거짓말을 해도 된다면, 자연스럽게 어르신께는 어떤 말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르신께 말조심을 하지 않으면 함부로 말을 하게 된다. 말을 함부로 하게 되면 당연히 행동도 함부로 하게 된다. 거짓말을 해도 되는 어르신과 하면 안 되는 어르신을 구분하게 되어 어르신을 차별하게 될 수도 있다. 경력이 오래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실수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 거짓말을 해도 돼. 이 정도 말은 해도 돼. 이 정도 행동은 해도 돼. 이 어르신한테는 그래도 돼.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생기면 어르신에게 실수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정말 성심성의껏 어르신을 모셨다고 하더라도 한 순간에 학대행위를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오랫동안 봐왔던, 그렇게 헌신적으로 어르신을 모셨던 선생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었다. 나중에 대화해 보면 너무 익숙해져서 섬세함을 잃고 습관적으로 일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말 한마디의 잘못이지만 그 말 한마디조차 조심해야 하는 일이 사람을 돌보는 일이다. 


익숙하고 능숙하다고 자만하면 실수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을 돌보는 일에서 실수하게 되면 누군가가 다친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고민을 하며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그래서 사람을 돌보는 일은 그래서 어렵고 답답하고 귀찮고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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