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어제에 대한 이야기
어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어제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날이었다. 2시에 인턴 면접, 4시 반에 전공시험이 있었다.
우선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당분간 취준을 쉬겠다고 블로그에 선전포고하다시피 했던 내가 왜 인턴 면접을 봤는지를 설명하자면... 먼저, 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에게 쉼이란 '부담을 가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꼭 어떤 활동을 한다/안한다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내 심적인 부담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그게 나한테는 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반기 취준을 아예 접고 채용공고를 보지도 않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쉼이라기보다는 쉬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온 일종의 억지, 혹은 오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터득한 나에게 잘 맞는 휴식 방법,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할 때 에너지를 안배하는 방법, 나의 우선순위 등을 잘 고려해서 취준의 끈을 아예 놓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또 다른 이유는 취업지원팀 상담이었다. 진로 설정에 대해 푸념하려고 신청한 상담에서 "직무 관련 인턴을 하나 더 해 보세요"라는 구체적인 조언을 듣고 나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직무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두 곳에 지원했다. 한 곳은 서류에서 떨어졌고, 다른 한 곳은 서류와 AI역검을 거쳐 어제의 면접까지 간 것이다. (서로이웃 공개인 저번 포스팅에서 역검 못 봤다고 징징거렸는데 그 역검 맞다. 왜 붙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는 그 역검... 응시 리포트 보니 Very Good 찍혀 있어서 더욱 의문스러웠던. 끝까지 마인드컨트롤하며 최대한 열심히 본 것이 AI한테 좋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서류 쓰는 건 언제나 그렇듯 귀찮았지만, 정규직 서류를 이미 열몇번 써 본 짬바가 발휘되었는지 이번에는 그런 대로 술술 써졌다. 재미있기까지 했다.
여하튼 이러한 연유로 휴식 선포를 철회(?)하고 취준생의 나날을 이어가던 와중, 기말고사와 채용전형이 스무스하게 겹쳐버렸다. 어제 면접 본 곳의 경우 서류합격할 때부터 미리 면접일정까지 알려줬기 때문에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심히 고민스러웠다. 면접 준비를 언제부터 해야 할지부터가 고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턴 면접을 위해서 시험공부를 놔버리는 건 무모했다. 그래서 면접 준비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면접 당일 오전에 집중적으로 하기로 했다. 자기소개, 직무역량, about 회사, about 부서, 인재상 관련 역량 등 준비해야 할 항목을 몇 가지 짜 놓고 부담없이 생각해보았다. 특히 자기소개는 샤워할 때 제일 잘 나오더라...? 평소에 샤워할 때 혼잣말로 내 인생 나레이션 읊는 습관이 있는데 요 며칠은 "안녕하세요, ~본부 ~팀 지원자 김민지입니다. 저는 ~"으로 샤워를 시작했다. 시험공부는 샤워할 때 절대 못하는데 면접 준비는 아주 가능. 이번 학기에 내가 터득한 꿀팁이다... 아이디어가 필요한 준비 사항은 샤워 시간, 청소 시간, 이동 시간 활용하기.
면접 보는 회사가 마침 학교에서 도보 15분 거리였다. 그것도 경의선숲길 맨 끝쪽, 내가 평소에 산책하기 좋아하는 코스의 끝자락에 있었다. 거기다 눈이 많이 왔다. 낭만은 있었다만 추운 건 싫었다. 핫팩 하나 주머니에 찔러넣고 면접을 보러 갔다. 눈으로 소복히 덮힌 길을 구두 신고 걸어가자니 힘겨웠지만 힘듦을 뚫는 낭만도 있었다.
면접은 다대다였다(면접관4, 지원자3).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 차라리 다대일이나 일대일이 조아요. 내가 다른 지원자를 의식하게 되는 게 싫다. 하지만 다대다의 장점은 다른 지원자가 말할 때 내가 쉴 수 있다는 점이지.
처음에 엄청 긴장했는데 면접관님들이 분위기를 잘 풀어주셔서 금방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면접관님들도 나를 더 잘 파악하실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무서운 면접, 압박면접에 대해 모든 회사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권고하는 바이다... 편안한 상황에서 지원자의 진짜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면접자를 막 대하는 회사에는 결코 다시 지원하고 싶지 않다. 면접장의 분위기가 그 회사에 대한 인상을 결정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가 있었는데 면접 한 번 보고 내년에 지원할 생각이 아예 없어졌다.
어쨌든 그렇게 면접을 마무리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는데..? 면접자는 우리 조 3명뿐인 줄 알았는데 다른 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지원자가 많았구나... 하긴 좋은 회사인데 당연하겠지.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눈 덮인 길을 다시 걸어 학교로 돌아왔다.
기말고사는 손에 모터 달린 듯이 답을 쓰고 나왔다. 족보에서 그대로 나와서 땡큐였을 뿐만 아니라 시험이고 뭐고 빨리 끝내고 그냥 쉬고 싶었다. 보통 시험시간 꽉 채우는 편인데 어제는 20분인가 25분인가 남겨놓고 제출함.
그렇게 어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하루였지만 그런 대로 잘 마무리되었다. 면접도 시험도 그럭저럭 무난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칭찬 - 시간/에너지 안배 전략을 잘 짜서 두 가지 모두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는 것.
시험은 아직 많이 남았다. 무려 4개. 레포트도 하나 남았다. 거기에다 이번주 일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정규직 자소서가 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는데, 대환장 파트는 뭐냐면 일요일에 내는 이 서류의 경우 지금까지 준비했던 직무와 아예 다른 직무라는 것. 그리고 더 대환장 파트는 이 직무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직무임을 깨달았다는 것. 잠깐이나마 취준을 쉬면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하다가 너무 빨리 완성되어 버린 답이다. 내 성향, 이력, 무엇으로 보나 쏙 들어맞는 직무. 그러니 직무 분석을 전부 다시 해야한다. 시험기간에 참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서류를 안 쓸까도 생각해봤지만, 이렇게까지 특정 직무에 마음에 갔던 적은 처음이기에 놓치기 너무 아깝다. 그래서 공들여 써 보기로 했다. 시험공부를 조금 유보하고 브런치와 유튜브를 검색하며 직무 역량을 뽑아내고 있다. 보면 볼수록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느껴진다. 그래도 도전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여러 마음이 공존한다. 기말고사를 최대한 잘 보고 싶은 마음, 인턴 붙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내가 폴인럽해버린 새로운 직무 쪽에서 잘되고 싶은 마음. 그러다 보니 자꾸 부담이 생긴다. 하지만 부담 가져봐야 좋을 것 하나 없다. 그냥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자. 아무리 부담스럽더라도 결국엔 내가 하기로 선택한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잖아.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해 보자. 나 자신에게 이 말을 해 주고 싶어서 글쓰기 창을 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