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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22. 2023

글을 쓰는 이유

블로그에 글을 안 쓴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브런치에 안 쓴 지는 다섯 달이 넘었고. 좋은 싸인이다. 요즘 큰 고민이 없이 무난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 나는 힘들 때만 글을 쓴다는 건가? 이래도 글쓰기가 내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괜히 스스로를 꾸짖게도 된다.


나 좋자고 하는 글쓰기인데 왜 이렇게 강박을 가지냐고 할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진짜로 좋아하면 어느 정도의 강박은 뒤따라오기 마련이더라. 그래서 이러한 강박 또한 좋은 싸인으로 치련다. 어쨌든 나는 스스로를 작가로 생각하고 있는 거니까, 그 정체성이 죽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대외적인 의무는 아니겠지만, 나다움에 보다 충실하기 위한 의무라고 보는게 맞겠다.



이러한 경향은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2020년부터 일관되게 나타났다. 마음이 힘들 때는 일주일 중 글쓰는 날을 따로 정해놓고 그 날에만 쓴다는 룰을 정할 정도로 글을 많이 썼다. 그때는 쓰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시간이었다. 눈물, 분노, 욕, 헛웃음, 이런 것들을 모두 정제된 문장으로 깎아넣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 당시의 문장들은 처절했다. 제법 담담하면서도 예술적인 문장이었다. 그러나 좀 살만해지면 그런 문장을 쓸 자신이 없어진다. 문장을 토해내는 것이 아닌, 의식적으로 주제를 고민하고 글의 구조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 노력들이 귀찮아서 글을 안 쓰게 되는 것도 같다.



그래도 이 글을 쓰며 느끼는 건, 이제는 힘들지 않아도 진실된 문장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꼭 죽을 듯이 힘들지 않아도, 오히려 지금 새롭게 맞이한 편안함에서 색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가 지금의 안정감을 더 공고히 해 줄 수 있는 건 덤이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뿐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긴 문장 내지는 완결된 글을 써 보는 연습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도 있다. 짤막한 컨텐츠에 익숙해지면서 사고의 폭도 점점 짧아지는 것 같다. 의사결정은 어느 정도 복합적으로 내려야 하는데, 이런저런 근거들을 펼쳐두고 정리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다 결국 비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나의 사안이 주어지면 이에 몰입해서 일련의 논리적 흐름을 거쳐 결론까지 가야 하는데 이게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일할 때 정말 많이 느낀 부분이다. 길고 넓게 생각하는 연습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주제를 정해서라도 글을 쓰려 한다.


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글 말고도 많다. 요즘은 인스타 피드, 스토리, 쓰레드를 많이들 활용하는데, 여기에 올리는 텍스트는 길이나 깊이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더 임팩트 있고 직관적인 표현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사고의 폭을 마음껏 확장하기 위하여 조금은 고리타분한 장문 글을 주된 취미로 삼고 연습해보려고 한다. 그 김에 브런치도 좀더 자주 올리고, 내 글의 색깔도 보다 뚜렷하게 갖춰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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