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록
소위 '두목치기' 된 가로수들,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흔히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다. 전선의 높이와 같은 주변 환경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이게 좋대, 저게 좋대" 하면서 여러 나무를 잔뜩 심어놓고는, 가지치기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후일 숭덩숭덩 잘라버린다- 전정 작업 비용이 비싸다는 이유로 최대한 저렴한 업체를 고용하고, 해당 업체는 일한 티를 내기 위해 또 최대한 잔뜩 잘라내는. 이런 식의 전정 작업은 나무의 생존에도 악영향을 끼치지만, 나중에 바람에 약한 잔가지들이 과도하게 생겨나게 되어 인간의 안전에도 좋지 않다. 보기에 전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다.
아파트에 살던 시절, 발코니 창밖을 포근하게 가려주던 벚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봄이면 창밖 가득 피는 꽃이 예뻤고, 여름이면 짙은 햇살에 집안에 그려지는 잎 그늘이 좋았다. 어느 봄, 단지 여기저기서 가지치기를 하길래, 뭐 알아서 잘하겠거니 했더니만 아뿔싸, 아주 깔끔하게 두목치기를 해놨다. 그냥 지키고 서서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원칙 없이 행한 전정 작업 덕분에 그 나무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아름다움 중 일부를 영구적으로 잃어버렸고, 나는 잘려나간 나무를 바라보며 허탈한 봄을 보내야 했다.
건축과 조경은 분명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충분한 고민 없이 끊임없이 짓고-부수고, 심고-자르고 하는 행위가 정말 인간'이라도' 위하기는 하는 걸까.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우리의 본성 중 하나라면, 모두가 깊게 생각해 볼 문제 아닐까 한다.
봄꽃이 아름답게 흐드러진 계절이지만, 이미 잘려나가 버린 나무와, 앞으로 잘려나갈 나무를 바라보자면 내 마음은 돌연 슬퍼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