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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당 Apr 10. 2023

노화성 공능제

무서록

* (거의) 완벽한 비전문가의 글임을 미리 밝힌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병 이름이 꽤나 많은데- 물론 이름이 재미있다는 거지 병 자체가 재미있다는 말은 아니다- SAD도 아마 그중 하나다. Seasonal Affective Disorder, 번역하자면 계절성 정동(情動) 장애. 한국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계절에 따라 감정이 널을 뛰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름부터 우울한 이 SAD에서는 보통 가을 무렵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자라나 겨우내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증상이 봄에 생겨나 초여름까지 지속되기도 한단다. 바로 나처럼. 


이런 SAD에 빠져있던 어느 봄날, 마음의 환기를 위해 SNS에  예쁜 꽃 사진과 함께 감정의 상태를 토로하는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에 달린 댓글 하나가 제법 흥미로웠다. 


"멋지네요" 


글 내용과는 무관하게 꽃 사진을 보고 쓴 건가 싶기는 했지만 "공능제(공감능력제로)"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런 댓글은 어딜 가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얼마 전에는 "마음이 어색하다는" 타인의 글에 "멋집니다"와  "예쁩니다"와 같은 댓글이 잔뜩 들러붙는 현장을 목도하기도 했다. 


이쯤 되니 공능제가 세상에 너무 만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SAD나 고혈압처럼 이것도 병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검색엔진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는데, 역시 빙고. 좋은 세상답게 그럴싸한 논문이 몇 편씩이나 그물에 걸려든다. 


복잡한 내용은 각설하고 필요한 내용만 추려보자면, 감정적 공감 능력은 나이를 먹어도 유지되지만, 인지적 공감 능력은 저하된다는 것. 그러니까 슬픔 자체를 느끼는 능력은 그다지 감소하지 않는 반면 타인의 고통에 이입해 진지한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은  떨어지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아 그러니까 이 사람들 마음이 나쁜 게 아니라 그냥 노환이었던 거구나. 아픈 사람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할망정 괜히 나 혼자 마음 상했네. 세상에 노화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늘어가는 주름살로도 모자라 공능제까지 생겨난다니. 계절성 정동 장애에는 따스한  햇빛과 비타민 디, 때로는 항우울제 같은 게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이놈의 노화성 공능제에는 뭐가 잘 듣는지도 모르니 정말 큰일이네.' 


나 역시 예외 없이 늙어버릴 예정이기에 대체 어떻게 해야 공능제에 걸리지 않을까 곰곰이 고민해 보았다. 어쩌면 공을 많이 던지는 팔이 길어지는 것처럼, 유산소 운동을 열심히 하면 심장이 튼튼해지는 것처럼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좋은 문학작품을 즐겁게 읽고, 마음을 다해 아름다운 음악을 즐기고, 멋진 그림과 공예품을 예쁘게 바라보고, 그리고 물론 타인의 글과 말을 꼼꼼히 읽고 들어 버릇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경미한 SAD 증상을 앓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어느 봄날 오후를 흥미진진하게 보낸다. 


여름의 제주(2017), Pentax MX/Kodak Proimage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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