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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Jan 28. 2022

K5는 왜 매년 모델 연식을 변경하나?

Product: 상품 수명 주기


연말쯤 되면 자동차를 바꾸려고 마음먹고 있던 사람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연식변경 모델 할인이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21년식 모델을 할인받고 구매할 것인지, 아니면 어차피 나갈 큰돈, 조금 더 투자해서 22년식 신형 차량을 구매할 것인지 고민이 시작됩니다. 여러 딜러들에게 연락하여 조금이라도 더 할인을 받으려고 경쟁을 붙이기도 하지요. 심지어 몇 년 전부터는 이런 고객들의 마음을 알아차린 자동차 회사들이 경쟁사보다 조금이라도 차를 먼저 팔기 위해 내년도 신식 모델을 여름이나 가을 즈음에 발매하는 경우도 늘어났습니다. 2021년이 아직 절반이나 남았는데 벌써 2022년식 모델을 타고 다니는, 시대를 앞서 나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지요.


하지만 사실 자동차를 잘 모르는 사람, 혹은 심지어 자동차를 좋아하더라도 그 모델에 애착을 가지고 꾸준히 지켜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떤 모델이 21년식인지 22년식인지 알아차리기는 힘듭니다. 지나가는 차량의 외관을 보고 보통 사람들이 ‘아, 저것은 K5 2022년 모델인데 2021년에 이미 저것을 타고 있다니 시대를 앞서는 사람이군!’이라고 감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지요. 보통 같은 차량의 연식변경 모델이라는 것은 휠의 모양이 바뀐다든가, 전면에 붙은 제조사 로고가 바뀐가든가, 혹은 인테리어에 사용된 가죽의 색깔이 바뀐다든가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일명 ‘마이너 체인지’라고 하여 외관의 모습이 약간 바뀌거나 인테리어 및 전장이 살짝 업그레이드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 역시 타고 다니는 사람이나 겨우 알아차릴 정도이지요. 물론 자동차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사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미미한 변화 때문에 할인을 해주거나 혹은 굳이 정가에 신형 모델을 구매하는 것도 희한한 것은 사실입니다. 애초에 자동차 제조사가 그런 시시한 '부품 변경'에 연식 변경 같은 말을 붙이지 않는다면, 구 모델이라는 이유로 할인을 해가며 재고를 처리할 필요도 없겠지요. 대체 자동차 회사들은 무슨 생각으로 모델에 연식을 붙이는 것일까요?


K5 하이브리드의 21년식과 22년식 모델을 비교하다 보면, 그 옛날 유행하던 '틀린 그림 찾기' 게임이 생각납니다.


상품의 수명 주기를 최대한 연장하라

새롭게 신차를 만들어내기 위한 자동차 제조사의 노력이란 정말 눈물겹기 그지없습니다. 한 장의 스케치에서 시작한 차가 소비자의 손에 건네지기까지는 최소 5년, 많게는 7년도 더 걸리는 개발기간이 필요하지요. 수만 개에 달하는 부품을 조달하는 수많은 협력사와의 협업도 필수입니다. 몇몇 부품은 기술적으로 특별한 사양을 충족하기 위해 해외의 특정 협력업체를 통해서만 도입해야  때도 있지요결국 이러한 시간과 노력은 어마어마한 개발비로 연결됩니다소비자가 일반적으로 3천만 원 정도에 구매하는 차량의 경우, 프로토타입 시제차량  대의 제작비가 수억 원을 왔다 갔다 한다고 하니전체 개발에 드는 돈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자동차 모델 하나의 성공 혹은 실패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합니다투자한 비용을 충분히 회수하고 또 다른 신모델들을 개발할 여력이 생길 정도의 자금을 확보할  있다면 더없이 좋은 결과이겠지요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개발이 끝난 모델이 상당기간 호조의 판매를 이어가야  필요가 있습니다작은 변화만으로 상품의 이미지를 최신으로 유지할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연식 변경, 마이너 체인지, 혹은 차량의 겉 껍데기를 모두 바꿔 버리는 페이스 리프트 등은 추가 투자를 최소화하며 이미 개발한 상품의 판매 기간, 즉 상품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노력의 산물입니다. 기존에 개발한 차량이 완연히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완전히 새로운 차량을 개발해야 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상품 수명 주기를 연장시켜 다른 모델 개발에 들어갈 투자비용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실 이렇게 상품의 수명 주기 연장을 위해 노력하는 곳은 자동차 업계뿐만은 아닙니다. TV 가전제품을 만드는 전자제품 제조회사 역시 마찬가지이지요새로운 모델을 도입하면서 구형 모델의 가격을 내린다든가 또는 약간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구형 제품들을 새로운 라인업으로 재탄생시키는 활동 역시 수명주기를 최대한 연장시켜 상품을 시장에서 계속 판매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이렇게 상품 수명 주기를 적극적으로 연장하려 하는 업계는 대부분의 경우 상품을 개발하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그렇기 때문에 상품의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이러한 상품들은 마케팅 용어로 ‘고관여 상품이라고 부르지요. 고관여 상품을 구매할  소비자들은 많은 고민을 합니다. 세탁기의 물 온도가 몇 도까지 올라가는지, 몇 시간을 연속으로 틀어 놓아야 TV 액정의 번인 현상이 일어나는지 같은, 구매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없는 작은 차이도 샅샅이 찾아보고 검토하지요반드시 신상품만을 선호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상품의 새로운 기능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철저히 검토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굳이 필요하지 않은 기능이라면 차라리 저렴한 가격의 구형 모델을 선택하기도 하지요또는 아직 불안정한 신기술이 적용된 상품보다는 검증된 기존 기술의 상품 선호하기도 합니다그렇기 때문에 고관여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들은 구형 모델이라 하여도 약간의 업그레이드만으로 새롭게 소비자들의 주목을 불러일으키며 상품 수명 주기를 연장할 수 있는 것이지요.


상품의 수명 주기를 자르고 침투하라

하지만 이렇게 마음껏 우리 상품의 수명 주기를 늘리도록 가만히 둘 경쟁사가 아닙니다. 시장이라는 곳은 무시무시한 전쟁터나 다름없지요. 쥐도 새도 모르게 새로운 기술을 장착한 경쟁사가 어느 순간 갑자기 시장에 뛰어들어서 우리의 상품이 졸지에 시대에 뒤떨어진 상품으로 취급당할 수도 있습니다. 멀쩡히 성숙기에 있던 상품이 최첨단 기술을 탑재한 경쟁 상품의 등장에 밀려 급작스럽게 쇠퇴기로 밀려나는 것이지요. 애플이 아이폰을 발매하면서 휴대전화 업계에 벌어진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가로본능 폰', '프라다 폰' 등 다양한 피쳐폰들이 저마다의 상품성을 가지고 경쟁하던 시장이 갑자기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재편되며 성숙기에 있던 피쳐폰들은 급격히 쇠퇴기로 접어들게 되었지요. 안타깝게도 노키아와 같은 대규모 회사들마저도 이러한 시장의 지각변동을 견디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상품 개발의 리드타임이 짧고 상대적으로 개발에 드는 투자금이 적은 저관여 상품 시장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더욱 빈번합니다.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인기상품들을 노리고 새로운 형태의 경쟁 상품을 출시하는 것은 거의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지요. 단숨에 인기상품의 수명을 끊어버리는 일까지야 벌어지지 않더라도, 기존 상품들이 갖고 있던 시장의 지위를 조금씩 빼앗으며 수명을 갉아먹어 갑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이면 결국 ‘새로운 유행’이라는 형태로 기존과는 다른 시장이 형성되거나 혹은 새로운 상품으로 기존 시장이 대체되는 것이지요. 한때 커피 시장을 지배하던 맥심 같은 인스턴트커피가 차츰 캔커피나 원두커피 혹은 액상 커피 등의 제품에 자리를 내어준 것이 좋은 예입니다. 세탁 세제의 대명사였던 하이타이를 필두로 한 분말 세제시장이 액상 세제들로 대체되고, 다시 그 자리를 노리며 캡슐형 세제나 시트형 세제가 출시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때문에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려 하는 도전자의 입장이라도, 혹은 지금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수비자의 입장이라도 시장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새롭게 성장기로 접어드는 상품군을 포착하고 이를 대비할 상품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 회사의 상품 포트폴리오가 다음 성장기에 접어들 상품을 충분히 커버하고 있는지, 또는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로 접어드는 상품을 대체하기 위한 좋은 시장의 기회는 어떤 것인지를 고려하는 전략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요. 상대적으로 ‘기술’이라고 하는, 시장의 방향성이 확실한 고관여 상품 시장과는 달리 저관여 상품 시장은 ‘대중의 유행’이라는 불확실성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상품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며 개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전략적 고려사항입니다.


캡슐과 시트로 끝장낸 줄 알았던 액상 세제가 세탁기의 '자동 세제 투입' 기능을 등에 업고 좀비처럼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상품의 수명 주기라는 것은 업계에 따라, 심지어 상품 하나하나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상품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대대손손 소비자에게 사랑을 받는가 하면, 어떤 상품은 광풍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다가도 몇 년만 지나면 그런 상품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상품이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업계가 그리고 나의 상품이 일반적으로 어떠한 상품 수명 주기를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매서운 시장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적절한 선택지를 마련해 두는 것이겠지요. 모든 상품을 개발하고 상용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지라도, 머릿속으로 수많은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몇 가지의 상품들은 프로토 타입을 만들거나 한정판으로 발매하여 시험을 해 볼 수도 있겠지요. 결국 시장의 변화를 미리 읽고 제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니즈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경쟁사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대비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케터의 서랍 속이 끝내 발매되지 못한 신상품 기획서로 가득 차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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