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ce: 프리미엄 가격 전략
식족세평(食足世平), 먹을 것을 충분하게 하여 세상을 평화로이 한다.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해 세계 식량난 해소에 지대한 공헌을 한 대만계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의 창업이념이자 일생의 목표였던 네 글자입니다. ‘저렴한 가격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영양식’을 개발하여 전쟁 직후 기아에 허덕이던 일본은 물론, 전후 한국을 포함해 수없이 많은 개발도상국의 기아 해소에 기여하였으니, 자신이 뜻한 삶을 그대로 살다 간 우리 시대의 위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 덕분에 굶주리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는 안도 씨의 ‘저렴한 먹거리’가 손을 움찔할 정도의 고급 간식이 되어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니, 과연 먹을 것이 충분하여 평화로운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도 씨는 하늘에서 자신의 후배들이 만드는 고급 라면을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슈퍼에 진열된 2,200원짜리 라면을 올려다보는 우리의 심기는 영 불편한 것이 사실이지요. 라면의 본질인 ‘저렴한 영양식’을 완전히 망각한 이렇게 비싼 라면을 대체 누가 사 먹는다는 것인지, 같은 곳에 살지만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주머니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품은 2,200원짜리 라면뿐만은 아닙니다. 가방 하나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들이야 둘째 치더라도, 보통 헤어 드라이기보다 열 배는 비싼 다이슨 헤어 드라이기 역시 소비자들의 심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었지요. 지금까지 계속 비쌌기 때문에 이제는 그냥 원래 그렇게 비싼가 보다 싶은 포르셰나 페라리 같은 명차 브랜드들도 있습니다. 선뜻 손이 가기 힘든 가격의 록시땅이나 SK-II 같은 화장품, 허먼 밀러 같은 의자나 르크루제 같은 주방용품, 심지어는 고디바나 폴 바셋 같은 초콜릿이나 커피까지, 사실 프리미엄 상품이란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지요. 어차피 굴러가는 것은 똑같은 자동차, 억 소리가 나는 가격 차이를 보고 있자면 기껏해야 천 원 약간 더 비싼 라면은 귀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사는 사람이 있긴 있으니 팔겠지’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대체 이 회사들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붙이고 상품을 파는 것인지 한 번쯤 물어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요.
타겟 소비자의 규모를 줄여라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프리미엄 혹은 럭셔리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들은 규모가 매우 큰 기업일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높은 가격의 상품들을 팔고 있으니 돈을 많이 버는 큰 회사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이지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품을 팔고 있는 회사들이니 동네 구멍가게 같은 작은회사 일리는 없지만, 같은 상품군에 있는 다른 회사들과 비교하면 이런 프리미엄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다이슨만큼 성공한 회사도 LG전자와 매출 규모를 비교하면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지요. 브랜드의 가치를 포함해 회사 전체의 가치를 알려주는 지표인 시가 총액을 살펴보아도 도요타는 페라리보다 6배도 넘게 비싼 회사입니다. 이렇듯 프리미엄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들의 규모가 작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격이 높아지면 판매수량은 가파르게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페라리의 가격은 도요타의 10배이지만 도요타의 판매량은 페라리의 100배입니다. 즉, 이러한 회사들은 가격이 높은 대신 판매 수량이 적기 때문에 매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것입니다. 어떤 상품을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가격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고객이란 대단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비싸더라도 누구나 원할 만한, 정말 세기에 남을 대히트 상품이라도 만들지 않는 한, 이러한 회사들은 태생적으로 규모가 큰 회사가 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대체 이 회사들은 왜 적절한 가격으로 적절한 규모의 판매를 하여 최상의 매출을 올리는 전략을 버리고 고가 전략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요?
높은 이익률이나 적은 운영비 등, 작은 규모로 고가 정책을 유지하는 이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마케팅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프리미엄 가격 전략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이점은 바로 ‘작은 타겟 고객층’입니다. 시장은 넓고 고객의 요구는 매우 다양합니다. 아무리 전략적으로 세그먼트를 나누고 타겟을 설정한다고 하여도 그 세그먼트 안에 있는 고객의 취향을 모두 반영하는 상품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지요. 게다가 타겟 고객들의 다양한 소득, 교육 수준, 거주지, 관심사 등을 생각하면 더더욱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 타협하며 상품을 기획한다 해도 다양성을 커버할 상품 포트폴리오 개발이나, 타겟 고객에게 상품을 알릴 커뮤니케이션 채널, 상품을 유통시킬 물류 네트워크 등, 시장에 진출하기까지는 많은 투자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고가 전략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적으로 타개해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높은 가격을 흔쾌히 지불할 부유한 고객이란 나라 전체를 따져도 얼마 되지 않지요. 사는 곳이나 교육 수준도 비슷하다보니 물리적으로 커버해야 하는 판매 영역이나 커뮤니케이션에서 고려해야 할 복잡한 소비자의 특성도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타겟 고객이 정말로 원하는 방식으로 완성된 우리회사의 가치제안을 흠결없이 전달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 완성 되는 것이지요. 우리 회사가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릴 만큼의 생산력이나 유통력이 모자를 경우, 적은 판매량으로도 상당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가치를 완벽하게 전달하라
간단히 얘기하면 천 원짜리 상품을 천 개 팔아 백만 원을 만드는 것보다 백만 원짜리 상품을 하나만 파는 것이 훨씬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백 명이나 되는 고객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좋아할 상품을 만들고, 게다가 그 고객들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판매 하는 것보다 백만 원 정도를 쓸 수 있는 고객을 특정하고 그 고객이 좋아할 상품을 만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물리적으로 넓은 시장을 커버하기 위한 네트워크가 없어도, 수많은 고객에게 상품을 홍보할 자금이 없어도 훌륭한 상품만 있다면 고액의 매출을 비교적 적은 투자를 통해 편안하게(?)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프리미엄 가격 전략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큰 규모의 회사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고급 상품에 특화된 기업, 혹은 새로운 상품을 가지고 시장에 처음 침투하는 기업들이 자주 사용하곤 하지요.
이렇게만 말하면 프리미엄 가격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대단히 쉽고 간단한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되기를 꿈꾸느니, 투자금도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고 매출도 쏠쏠해 보이는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하는 쪽으로 우리 사업의 방향을 트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지요. 하지만 프리미엄 가격이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고객의 관점에서 높은 가격은 관여도를 높이는, 즉 상품의 구매에 관여되는 여러 가지 요소를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가격이 비싸지면 평범한 상품을 구매할 때는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을 요소까지 까탈스럽게 따지며 구매하게 되지요. 평범한 자동차였다면 그런 게 있는지 알지도 못했을 시트 가죽의 종류와 원산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합니다. 다이슨이 몇 번째로 개발한 모터가 청소기에 사용됐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이 라면에 들어간 스프가 소고기 스프인지 닭고기 스프인지, 파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버섯은 들어 있는지, 건강에는 좋은지, 대체 어떤 명인이 무슨 철학을 가지고 이 라면을 개발한 것인지가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2,200원짜리 라면이 보통 라면보다 더 맛있다 하더라도 ‘과연 가격에 합당한 맛인가?’ 같은, 미슐랭 레스토랑 심사에서나 적용될 엄격하고 냉철한 기준이 라면을 구매하는 데 동원되지요. 따라서 프리미엄 상품을 개발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좋은 상품’만 가지고는 소비자를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시장에 일반적으로 나와 있는 상품의 구매 기준을 압도하는, 프리미엄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이 원하는 유무형의 모든 가치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야만 높은 가격에 대한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시장은 넓고 고객은 다양합니다. 천 원을 아끼기 위해 발품을 파는 99%의 고객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지 고민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상품이라면 얼마든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1%의 고객을 상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좋은 전략을 선택하는 것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 전략을 통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가 중요할 뿐이지요. 사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상품을 구매하며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가격 사이에서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마케터의 일은 바로 그러한 타협점을 찾아내어 개선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지요. 만약 우리가 타협할 필요 없이 훌륭한 가치를 지닌 상품을 고객에게 제안할 수 있다면, 우리의 상품은 값비싼 가격으로도 시장에서 가장 까탈스러운 고객을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